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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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라스베가스 4시즌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리썸 반장은 사르트르의 유명한 희곡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이 윤리적인 발언을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는 [단순한 기쁨]이라는 저서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 말로 지옥이다. 영생은 죽음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들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공감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자신에 만족한 채 매일매일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 바로 현재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라고 썼다.
이것이 무식함의 소산인지 아니면 러셀이 혐오하는 궤변인지 판단하기는 뭣하지만 그럴 가치도 없다.
무식함이든 궤변이든 지도자적 입장에 있는 크리스찬이라는 지위에선 비난받는건 마찬가지일테니까 말이다.
인간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가장 졸렬한 방법중 하나는 공포심을 이용한 것이다. 
도덕과 사랑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하는 종교에서 기독교는 특히 교인들의 공포심을 많이 이용해먹는다.
(사르트르의 그 말은 그것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이 보니까..." -> 주님의 심판에 이르러...)
인간의 여러 기본 권리의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유이다.  또 그 자유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자율의 기반은 강한 독립심이다.  기독교는 인간다움의 이 중요한 개성을 거세해버렸다.  절대자에게 의지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내 수준에서 알 수 있는 이 두가지 면 -공포심 조장, 독립의 거세-에서라도 절대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게 어릴때부터의 내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특히 결정적인 것은 역사에 씌어진 기독교도인들에 의해 자행된 잔인하고 부정의한 사실들이었다.  이런저런 변명을 해봤자 그들은 저 증거들을 결코 없던 일로 돌릴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논리적 싸움에서 늘 질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판명된 사실들을 인정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승리의 가능성이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정당함"으로 억지로 바꾸려하기 때문인데 이런건 뒤로 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한꺼풀 한꺼풀 뒤집어 쓰거나 가면을 바꿀 것이다.  절대 진보하지 않고 말이다.
책 뒷면에 종교외의 것들을 다룬 다른 부분들에선 잘못 읽으면 독자가 러셀의 의도와 많이 빗나가는 느낌이나 결론을 얻을 요지가 많으므로 행간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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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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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보면서 난 엉뚱한데에 호기심을 가졌다.  웨이트리스인 아멜리에는 영화속에서 아무런 경제적 고통을 받지않고 살고 있었다. 그녀의 관심과 호기심은 연인들의 문제와 자기가 이루어가는 사랑에 온통 쏠려 있었다. 생활고가 없다면 조각조각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삶은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가. 물론 영화라서 그렇겠지.

2.
뭐하나 부족한 것 없는 환경...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스웨덴의 자살률이 세계 1위였던 게 화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높은 자살률의 원인은 무기력함(아니면 공허함?)이라고 세간에 알려졌다.  그리고 당연히 수긍이 가기도 한다.

3.
[소립자]는 아주 지루한 사람들의 얘기로 시작된다.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진진할 것 같은 삶도 따분하게 묘사되는데 그러면서도 다음 내용을 탐독하도록 재촉하게 만드는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의 그 묘한 대조는 작가 우엘벡과 번역가 이세욱의 무서운 힘이다. (번역에 매료되어 서핑해보니 이세욱씨가 무수한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갖가지 사상과 사물, 철학이 더 이상 그 다양함을 확산시킬 수 없을정도로 풍부해진 것 같은 문화속에서 사람들은 사랑,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보다는 슬픔, 고독, 절망등 부정적 정서를 많이 느끼고 살아간다.  혹은 별로 느끼지도 않고 살아간다.  껍질만 남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문제는 정치 경제 예술등의 각 분야에서 남발되어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모든 사람을 골치아프게 하지만 단언컨데 인류 종말까지 숙제로 남아 아무도 풀지 못하리라.  그럼 인류는 어디에 써먹지...  가 질문이다.
  원자, 분자등의 소립자들은 그 자체는 생성 소멸하지 않지만 구성과 배열이 달라지면 물질이 달라진다. 이렇듯,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제르진스키같은 소수가 앞줄에서 인도하면서 인류는 자신 스스로를 분해, 재조립하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또 어떤 소수에 의해 다수는 그 변화를 납득하고 인정한다.  소설은 "그래도 될까"를 물으면서 "예스" 나 "노" 어느쪽으로도 독자를 유도하고 있지는 않다.
문학-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소립자]역시 21세기인 이제는 진부해진 문제를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포커스는 그 문제보다는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파헤치는 방법과 작품의 독창성에 집중조명되어야 한다.  그러니 책 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된 문학계의 논쟁이 지금쯤은 어느정도 정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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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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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에 이 책을 또 다시 읽게 된 동기는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서 네 번이나 읽었다는 회원의 게시판 글이었다.
그러나 2004년 현재의 나는
이 괴로운 책을 또 읽는 것은 게걸스런 매저키스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는 날카롭게 심장을 베어 온다.
글의 직접적인 소재가 아니더라도 그 주제는
어쩌면 인류의 종말까지 일부 인류의 양심을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억측일까.
지금 책을 덮으며 감히 또 읽지는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지금의 이런 개인적 감정에 가까운 불편한 심기를 넘어
보다 큰 무언가를 위해 용기있게 문제와 마주할 수 있는
좀 더 성숙한 자세로 이 책을 대할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때가 내가 바로 설 수 있는 때일 것이다.
독자들이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루어지는 소재로 인해
이 소설의 문학적 아름다움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는 독서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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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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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읽고 난 결과 제목은 나에겐 이런 뜻이 되었다. ;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너희의 말이 아닌 우리의 말이 필요하다.


작년 <녹색평론>에서 다룬 사파티스타에 대한 글에 의하면 ;

마르코스가 정글에 도착하여

“봉기하라!”고 말했을때 원주민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물러가라.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우리의 땅은 당신들이 말하는 생산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트랙터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 달라는 것이며,

당신들 같은 대도시의 배운 사람들이 우리더러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당신들의 변증법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좋다. 언제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니까.“

젊은 혁명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예를 들면,

민중 민주주의, 전통, 토지 경작, 자연과의 친연성, 오래된 토착적 세계관에 대해 배웠고

이런 것들은 현대세계의 경직된 정치적 용어로는 분류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명징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의 저 주장은 무척이나 독특하고 자신감넘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러니 마르코스도 그들에게 홀딱 반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웃음)


자주 하는 얘기지만 대부분의 논픽션에 흥미를 잃은지 꽤 되었고 그건 논픽션이 어떤 기술적인 면외에는 이제 내게 그다지 많은 감동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픽션을 대하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것은 kbs1 tv에서 방송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였다. 당시까지 내가 접해왔던 무엇에서도 나는 그같은 감정을 경험해본적이 없었다. 안타깝고 모골이 송연한 느낌과 감동, 불타오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굳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지를 느꼈다.

이후 나는 나를 포함하여 한 개체의 내면에 관한 것들환희, 불안, 고독, 우울, 근면, 성실,..., 당시 나는 그게-내면을 들여다 보고 분석하는게 매우 지루해져있었다. 지칠정도로 끝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었고 또 자신이 특별하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주체적인 것들과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이 30, 40세가 넘어도 자신의 내면에 과도하게 침잠해 있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보다는 원래 불완전하고 끝까지 불완전할)내자신이 어떻게 생긴 환경에서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계기가 그 다큐멘터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외부의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나는 많은 놀라움과 분노와 사라질것 처럼 너무 적은 희망과 그럼에도 식을줄 모르는 순수하고 꼿꼿한 열정이 세상에 널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대부분 고통스러웠지만 고통 때문에 등돌려 버리는 경우가 생기지 않게 하는 강력한 힘이 나를 잡아 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중부아메리카에서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해오고 있는 사파티스타 운동이었다.

배달되어온 제법 두꺼운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한국이 아닌 타국의 비극을 전하고 있지만, 글자 그대로만 보고서 사파티스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 정도로 그치는 것은 곤란하다. 멕시코 사회에서 일어난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봐서는 언뜻 달라보이지만 저변에 깔린 부정의한 기운은 보편적으로 바로 여기에서도 스물스물 세력을 뻗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객체의 내면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올바른 태도와 생각정직, 신뢰, 친절, 용기, 관용, 사랑,...)이 악한것들을 치료하고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려는 고민은 당장은 숭고하다고 생각되어질지 모르나 잊으면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문제는 그런 고민과 실천이 사회에서 존중받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냐는 것이다.

지금같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10억 만들기등 돈버는 법에 관한 책들이 불티나게 출판되고 팔리는 분위기라면 과연 그 숭고한 생각과 실천들이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만일 이 사회가 속물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한다면 그런 숭고한 정신과 실천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부정적인 사회에 굴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낱 생산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사람의 가치, 파괴되어 자본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신세로 몰린 생태계, 기득권층이 다루기 편리하게 통합되고 단일화되어 가는 문화....

사파티스타는 단지 땅의 소유권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만이 아님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투쟁이 다른 투쟁들과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세계의 경직된 정치적 용어로는 분류가 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명징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투쟁의 목적이다. 우주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지구는 그러나 매우 크고 다양하다. 이런 세계에서 어떤 문제의 해결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함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법, 즉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그 효과를 인정받은 방법은 이미 과거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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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천우학 범우 사르비아 총서 505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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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유수처럼 흘러간다.

아름다운 풍경(근데 정말 아름다웠나), 평범한 행동들과 평범한 대사들,

그러나 뭔가 개운치 않게 걷히지 않는 안개...

나는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 풍경과 그 행동과 그 말과 그 묘사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보여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라는

책하고는 전혀 관련없는 고민만을 [설국]은 나에게 던져주었을 뿐이다.

리뷰도 별점도 나는 결정할 수가 없다.

슬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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