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보면서 난 엉뚱한데에 호기심을 가졌다.  웨이트리스인 아멜리에는 영화속에서 아무런 경제적 고통을 받지않고 살고 있었다. 그녀의 관심과 호기심은 연인들의 문제와 자기가 이루어가는 사랑에 온통 쏠려 있었다. 생활고가 없다면 조각조각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삶은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가. 물론 영화라서 그렇겠지.

2.
뭐하나 부족한 것 없는 환경...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스웨덴의 자살률이 세계 1위였던 게 화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높은 자살률의 원인은 무기력함(아니면 공허함?)이라고 세간에 알려졌다.  그리고 당연히 수긍이 가기도 한다.

3.
[소립자]는 아주 지루한 사람들의 얘기로 시작된다.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진진할 것 같은 삶도 따분하게 묘사되는데 그러면서도 다음 내용을 탐독하도록 재촉하게 만드는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의 그 묘한 대조는 작가 우엘벡과 번역가 이세욱의 무서운 힘이다. (번역에 매료되어 서핑해보니 이세욱씨가 무수한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갖가지 사상과 사물, 철학이 더 이상 그 다양함을 확산시킬 수 없을정도로 풍부해진 것 같은 문화속에서 사람들은 사랑,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보다는 슬픔, 고독, 절망등 부정적 정서를 많이 느끼고 살아간다.  혹은 별로 느끼지도 않고 살아간다.  껍질만 남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문제는 정치 경제 예술등의 각 분야에서 남발되어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모든 사람을 골치아프게 하지만 단언컨데 인류 종말까지 숙제로 남아 아무도 풀지 못하리라.  그럼 인류는 어디에 써먹지...  가 질문이다.
  원자, 분자등의 소립자들은 그 자체는 생성 소멸하지 않지만 구성과 배열이 달라지면 물질이 달라진다. 이렇듯,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제르진스키같은 소수가 앞줄에서 인도하면서 인류는 자신 스스로를 분해, 재조립하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또 어떤 소수에 의해 다수는 그 변화를 납득하고 인정한다.  소설은 "그래도 될까"를 물으면서 "예스" 나 "노" 어느쪽으로도 독자를 유도하고 있지는 않다.
문학-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소립자]역시 21세기인 이제는 진부해진 문제를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포커스는 그 문제보다는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파헤치는 방법과 작품의 독창성에 집중조명되어야 한다.  그러니 책 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된 문학계의 논쟁이 지금쯤은 어느정도 정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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