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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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트위터로 설문을 했었다. 

"여러분이 국가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했을테지만 그 응답들은 예상되는 범위안에 있을 터였고 나의 답변 또한 그러했다.  당시 나는 무상교육과 학벌타파에 대한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했었다. 그러면서 대충 유시민 대표가 '국가'를 주제로 책을 준비중인가보다 짐작만 했었는데 드디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유시민 대표의 책들은 비교적 쉽게 읽혀서 좋았는데, 이번 책은 주제가 거대 개념이라서 그런지 조금 더디 읽혔다. 국가론 또는 정치론을 논한 철학자들의 주장과 이야기들이 교과서처럼으로 소개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초없이 높은 탑을 쌓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렇게 약식으로라도 짚어 알고 넘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일듯 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정치적 사상적 위치와 상관없이 (그래도 편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국가론 개론서로써의 역할도 하는 것 같아 국가의 역할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과 역사를 나열하고 가르치는 책이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반감될수 밖에 없다. 저자가 왕성한 활동중에 있는 현역 정치인이기에 그렇고 야권의 이단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 껄끄러운 자리 가운데 있는 저자가 바라보는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은 역사속의 국가론들에 대한 소개와 평가 속에 조금씩 드러나면서 책 마지막에 정리가 되기는 하는데  단순하게 정리하면 오히려 오해하기 쉬우니 직접 읽고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략적인 방향은 읽기 전에 예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 말미에 살짝 시원했던 부분은 최근의 진보대연합 운동(?)에 대하여 국가론을 적용한 부분이다. 대연합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야 굳이 말할 것 없고,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득력있게 이야기한다. 김규항씨나 일부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에게서 양비론(다 똑같아!)과 연합 불가(무용?)론이 나오기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연합이 진행되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그 불가론들에 대한 답글처럼 정돈된 글을 보게 되어 반갑다. 

 

이 책의 저작 동기는 '용산 참사'였다고 한다. 생계때문에 망루에 올라가야만 했던 철거민들이 경찰의 무리한 진입작전으로 일부는 불타 죽고 살아남은 일부는 수감된 바로 그 사건. 그건 차라리 국가라는 것이 없는게 나았을 사건이었다.  구성원을 사지로 모는 국가란 존재해서는 안되는 국가, 혁명따위로 교체되어야하는 국가다.(정확히는 정부 또는 정권)
사실 국가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국가란 존재하는 것이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국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램을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고.  

지금 국가에게 바라는게 무었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용산 철거민을 기억하여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의 제목으로 대신하고 싶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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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귀를기울이면 님, 처음 서재 구경 왔습니다.

유시민 대표에 대해서는 묘한 양가 감정이 듭니다. 아쉽달까요. 하지만 페이퍼를 읽다 보니, 유시민 대표가 표방하는 바를 제대로 모르고 편견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옛날 옛적 다들 읽었던 그 책에서 엄청난 감탄을 했었는데도 말이죠.
책 소개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요즘 바빠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요. ㅠㅠ

귀를기울이면 2011-04-27 13:52   좋아요 0 | URL
첫 방문 환영합니다~^^ 유시민 대표 이미지가 쫌 거시기하긴 하죠. 근데 책 보시게 되면 제 글은 싹 잊으시고 보세요. 욕먹을까 두렵습니다. ㄷㄷㄷ;

참, 먼저 답글 달았던 마고님 글 관련해서, 전 카드부문 일을 했었어요. 마고님은 은행쪽이셨을 듯. 서버 삭제 사고라 하니 데이터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더군요. 백업본 없는 source도 있었다는... 눈물 나더군요.
 

TED 영상.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널리 알려진 비행기사고 생존자가 TED연사로 나와 단 5분뿐이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Ric Elias: 3 things I learned while my plane crashed

 

 

벌써 2년이나 됐나 싶은 사건인데, 허드슨 강 위에 여객기가 비상착륙을 한 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일이다. 강물에 떠 있는 비행기는 자주 볼 수 있는게 아니니..     


  

 

1. 무엇이든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다,
2. 행복해지기를 선택한다("I don't try to be right, I choose to be happy"),
3. 좋은 아빠가 된다. 
 

 

마지막 부분을 설명할때는 나도 찔끔 했다.
닥쳐보니 죽음이란 무섭지 않구나, 그런데 슬프구나 생각했단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볼수 없다는 것이.
그래서 사고 이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되었다고. 


과연 내가 추락하는 비행기에 있게 된다면 뒤로 미루었던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무엇이 슬퍼지게 될까? 
짧지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는 이야기다. 실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라 더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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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 - 신의 입자를 찾는 사람들
이강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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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물질의 근원과 우주와 별들에게 매료되는 것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하실 겁니까?"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이성 혹은 지성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가 있습니다. 지성이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생략하고) 본의아니게 본 책의 저자에게 질문하고 저자의 답을 받게되었었는데 그 내용이 위에 있는 내용이다. 칼 세이건의 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극단적인 합리성과 감정배제가 필요한 첨단과학이 결국은 너무나도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이유때문에 추진된다는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LHC(Large Hadron Collider)는 우리말로 '대형 하드론 충돌기'라고하는데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있는 지름 8km, 길이 27km의 입자가속 및 충돌 장치이다. 평균 지하 100m 깊이로 건설되어 있다고 한다. (그동안 통상 입자가속기라는 말만 들어왔었는데 좀 더 정확한 이름을 알게된것 같다.)  CERN의 과학자들이 여기서 입자들을 광속의 99.999999%에 달하도록 가속시켜 서로 충돌시킨후 결과를 관측 분석해서 물질을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LHC가 사람들 입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린건 2008년이었다. 이때가 첫 가동시점이기도 했고 마침 실험중에 블랙홀이 생기면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더 그랬던 측면이 있다. 순간적으로 블랙홀이 생기는 것은 맞지만 지구 멸망은 황당한 이야기였고, 또 예상치 못한 고장으로 1년여 수리기간을 거쳐야했기에  잠시 잊혀졌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연구하는 물리학에 매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깊숙이 이해하고 있는것은 절대 아니고,  '우리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주의 바깥도 있을까'따위의 유치하지만 버릴수 없는 궁금증에 해답을 줄만한 가장 유력한 사람들이 바로 여기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답을 알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막막한 질문에 평생을 걸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킹 목사가 암울한 시기에도 '나는 꿈이 있다'고 외친 그런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더더욱. 

사실, 제목에 있는것처럼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 이야기이기에 비전공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띄엄띄엄 읽으면 앞에서 한 이야기나 용어 개념이 흐릿해져서 뒤에서 하는 이야기 진도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굳이 연연하지 않고 읽어도 좋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연구에 헌신했고 또 헌신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있고  저자의 말처럼 우주를 이해하고 싶은 인간 지성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첨단 입자물리학이지만 우주의 탄생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며 우주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미래학인 이 작업은 어색한 조합이지만 미래고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멀리서나마 이 인류의 공동작업을 응원하며, 힘든작업일텐데도 과학과 일반인의 중계자 역할을 해준 저자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오래지 않아 놀라운 소식으로 새로운 버전의 LHC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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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 제1권력 1
히로세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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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너무 영화같아서 믿어지지 않는, 그런데 진실인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예를 들면 9.11사건 같은것. 세계무역센터 두 동이 나란히 비행기 정면 충돌로 무너지는 그런 장면.  개인적인 느낌으로 하나만 더 들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절벽에 몸을 던진 사건.  뭐 이런 일들 말이다. 

여기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장장 500페이지에 걸쳐 씌여진 책이 있다. 

제1권력
책 제목이 주는 함의는 없다.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제1권력. 세계를 움직이는 세계 최고, 최강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록펠러 가문과 모건 가문이 19세기 이후 200여년간 세계 패권을 음지에서 쥐고 흔들었다는 내용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쉽게 이해가 가도록 이 두 가문이 추악한 돈벌이를 위해 관여하거나 배후에서 조종하고 저지른 일들을 몇가지 나열하자면,

   남북전쟁
   세계 제1,2차대전
   히틀러의 집권 및 유태인 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1929년 대공황
   미국 대통령 임명 및 케네디를 포함한 5명의 미대통령 암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핵무기제조 및 냉전체제유지 
   이란이라크 전쟁
   등등.....

엄청나지 않은가? 

우리는 왜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왜냐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일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기업들에겐 또 엄청난 자회사들과 관련회사들이 있고, 친인척과  지분 소유관계로 조종이 가능한 더 많은 회사들이 있다. 그 안에는 재리에 밝은 수많은 인물들이 또한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할수 있게 대기중이었다.  석유, 전기, 철강, 철도, 영화, 군수산업 등이 모두 그러하다.

전쟁을 이용해서 자본을 증식하는 방법은 정말 교활하면서 인정사정없는 저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945년 8월, 일본은 이미 항복을 준비중이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전에서 보여줌으로써 무기산업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더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없을 지경이다.  수 십만명의 시민이 실험실 쥐처럼 죽어간 것이다.  
이 책이 1986년에 씌여졌기에 포함되지 않았을뿐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도 동일한 사례다. 거짓증거를 가지고 석유자원 탈취와 무기상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전쟁을 도발했으니...


너무나 방대한 이야기이기에 리뷰에는 살짝 이정도 밖에는 드러내기 힘들다. 500페이지의 책 전체가 요약본같아서 더 줄여서 소개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내용이 촘촘하다. 정말 이러한 내용을 추적하고 정리한 저자의 의지가 존경스럽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책이 씌여진지 25년이나 지났는데 세상은 오히려 더 제1권력에 대한 예속이 심해진듯 보인다는 점이다. 미래 세대가 우리를 본다면 아마도 우리가 중세시대의 농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보게되지 않을까 두렵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작은 오류이긴 한데 계속 반복되니 눈에 거슬린다. '내로라하는'을 '내노라하는'이라고 쓴 오류가 대충 기억나는 것만 4번 이상 있었다. 고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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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11-05-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나올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의 나이를 알게되면 그 한가지로 많은 것들을 알수가 있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이기는 하지만 자랄때 어떤 TV프로그램을 보고 자랐으며 어떤 큰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있을지 없을지 어떤 입시제도에서 공부했는지 취업할때 상황은 어떠했을 것이며 군대에선 어떤 일을 겪었을지, 결혼은 했을지, 결혼 했다면 아이들은 어느정도 나이이고 어떤 걱정꺼리를 가지고 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안다면 그 일에 대한 지식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지 등등을 말이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 매우 대략적이며 상당히 부정확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대화의 단초로써 기능을 할수 있고 부정확한 정보는 이때 교정이 되고는 한다. 무엇보다 단지 숫자 하나로 상대방과 어떤 대화까지 가능하고 어떤 대화는 부적절한지를 가늠할수 있기때문에 상대방의 나이에 대한 궁금증은 항상 주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너, 몇 살이야?" 라고 질문하는 태도.
나이로 상대방을 재단해버리겠다는 마음을 먹고 묻는 것은 분명 저질스러운 태도가 아닐수 없다. 가끔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모두의 비웃음만 살뿐이다. 백 년도 못사는 주제에 나이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게 우습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70,80 노인이나 10대 청소년이나 상식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10대 청소년이 노인보다 훌륭해 보일때도 많다. 사려깊은 청소년과 철부지 노인이며 이때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을터이니 더더욱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나 저질에 교양없고 실력없고 나이값 못하는 사람이오!"라고 고백하는 셈이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이를 묻게 되었을까?
아마 도시화가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농경사회로 지내던 오랜시간동안 인간은 태어난 곳에서 자라나 평생 한 곳에서 살다가 같은 곳에 죽어 묻히는 것이 일반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서로 나이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다른 위계질서가 공고히 자리잡고 있어서 나이를 물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먼 옛날을 상상할 것도 없다. 내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사신지 40여년 되어가시지만 지금도 명절때 고향에 가서 '누구네집 아들 누구'라고 하면 눈 침침한 노인분들도 다 아는 척을 하신다. 이런 분위기에서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건 딱 아버지 세대까지만의 이야기이다.
2008년 통계인데, 내집 마련까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이사횟수는 4.5회라고 한다. 이건 내집마련(평균8년)까지의 횟수니까 평생을 놓고 보면 누구말대로 우리는 유목민같은 삶을 살고 있는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 새로운 이웃,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료, 새로운 파트너, 새로운 고객, 새로운 커뮤니티... 우리는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또 그렇게 흘려보내야만 하도록 강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나이'는 내가 판단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한 부담을 상당히 덜어줄수 있다.  
(한편 판단기준이 변형이 되기도 하는데 주로 고향이나 학번, 학교, 직장 등이 될때가 있다. 이런 것들은 나이로 갖는 편견과 조금 다른 방식의 편견을 주는데 그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는 자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공평하고 배타적이지 않지만 사는 곳과 학벌과 직장 등은 매우 배타적이며 환경까지 싸잡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와 함께 이야기할 꺼리가 못된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 VS. '나이를 그냥 먹은게 아니다'  
단순한 숫자인 나이는, 그러나 참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때론 부정적으로, 때론 긍정적으로 어떤 사건의 책임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잘하던 일이 힘에 부칠때는 나이탓, 별 생각없이 해도 잘될때는 나이덕을 말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나쁜 일인줄 알았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뭐, 그런게 인생이지 싶다. (쓰다보니 나이답지 않게 노인네 소리를 하는 것 같다...^^;; )  
아무튼 남의 나이를 물어보는 일은 항상 그 사람에 대해 좋은 쪽으로 놀라기 위해서였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누군가 나의 나이를 알아볼때는 속으로나마 '나이는 속일 수 없지만 그냥 먹은건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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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1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보기에 자기보다 어려보이면, 곧바로 반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죠.
따져보면 몇 살 차이도 안날텐데, 나이가 무슨 지위나 권력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

저도 가끔 나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는데,
이 글에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리를 참 잘 하셨네요.
멋진 글입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4-18 17: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칭찬이 후하신편인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