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드러움이 증발해 버린 목소리로 할머니가 말한다.
"내가 그냥 포기해? ㅣ아니야! 나 안 가고 싶어. 너 두고 가기 싫어. 준비 안 됐어. 그래도 그거 내가 결정하는 거 아니야. 내가 결정하는 거 ‘지금‘ 어떻게 사느냐뿐이야. 그러니까 너 그거 뺏지마."

- P120

"엄마는 내가 운전 안 한다고 화내는데, 나는 차에 타기만 하면 아빠 생각이 나."
우리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언니는 운전을 멈추었고 나는 언니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들리는 작은 소리로, 언니가 말한다.
"이걸 또 겪어야 하는 게 너무 싫어. 떠난 사람은 기억 속에 산다고 하는데, 전부 기억할 순 없고, 기억을 지키지 못하면 그걸로 영영 끝인 거야. 사랑했던 사람이 없어지는 거야."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 무엇이 남을까? 그래도 할머니가, 아빠가 우리 마음속에 살까?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들을 잊은 후에도? 그리고, 원래 알지 못했어도?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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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EBS에서 만든 <한 컷의 과학>이란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함께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천문학 분야에서 심채경이라는 젊은 교수님이 종종 인터뷰를 해주셨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그 교수님을 보고

교수님이 젊고, 똑똑하고, 에쁘기까지 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불만아닌 불만을 했더랬다.

 

그러다 그 교수님이 '네이처'가 아폴로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달탐사를 좌우할 세계 젊은 과학자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웠고, 

최근 에세이까지 냈다니 얼른 대출해다가 보았다.

 

별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보다는

이공계 연구자이며 교육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어서

오히려 더 공감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이과인 여자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아이가 무슨 전공을 하게될지는 몰라도

대학에서의 삶은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아이에게 꼭 읽어보라고, 손에 들려주고 싶었다.

그 길이 지루하고 별볼일 없어 보여도

그녀의 말대로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과 오로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을 고민하며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라고.

또한 워킹맘으로서의 고군분투한 이야기 등을 읽고서 훗날 일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순간이 올 때나

자신의 일을 지켜낸 이전 세대의 선배들을 기억하며 그 힘든 고비들을 지켜가야 할 때,

그녀를 기억하고 힘이 되기를 바라면ㅓ.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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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친구들은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무색무미무취무형의 벽을 느꼈다. (...)
그건 아마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면서 감정의 진폭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감정의 진폭이 큰 쪽이 우월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이 더 의미가 깊고 가치가 높은 삶이냐 하면 그것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 천국 같다던데 하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천상의 기쁨과 동시에 그만큼 깊은 지옥도 만나게 된다고 답해주었다.

<감정의 진폭 中>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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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의 파란만장 영웅적인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밥벌어 먹고 사는 일에 사명감을 더한 몫으로 삶이 비루해지는 직업인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내가 알고 있고, 그 안에 들어와있다고 생각한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저 허울뿐인 것일수 있음도 알게해주었다.


지방 행정 기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나 같은 하찮은 공무원이

그가 말하는 중앙정부 국책사업의 방향성과 그 절차의 불합리함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공감한다는 게 더 놀라웠다.

내가 느끼는 불합리한 일들이 작은 우리 조직의 일일 뿐만이 아니라니.

나리의 모든 일이 정말 그렇게 돌아가고 있단말인가. 


이 책을 의료인뿐 아니라 공무원들도 읽었으면 한다.


그가 책 말미에 적어 둔 인물지에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읽고나면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혐오는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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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몇몇사람의 힘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며 누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리이나 이것만큼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특히 특정한 오너가 없는 대부분의 공조직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추진하거나 정책 방향을 밀어붙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추진력은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열정‘에서부터 나온다. 모든 정챛ㄱ 추진에 있어 완성도는 담당자 개개인의 업무 능력에 좌우되고,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책 결정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완성된다. 모두가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야만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골든아워1. 나비효과 中)

- P132

문제는 누가 그 사업의 핵심을 거머쥐는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 지원이 결정되고 나면 사업 추진 기관과 사업 수행기관들 간의 관계가 180도 역전된다. 이때부터는 사업 수행 기관들의 목소리가 커져, 아무리 엉망이 되어 막가더라도 막아설 수 없다. 제재에 대한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긴 하나, 실제 집행의 근거인 사업지정 취소와 지원금 환수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골든아워2. 침몰 中)

- P204

나는 보건복지부 전체에 사무관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했다. 어림짐작해보아도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것 같았다. 그 인원으로 국가 전체 보건의료뿐 아니라 복지 체계에 이르는 일들을 물 샐 틈없이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예산도 없을뿐더러,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겨룩 업무의 실행은 꼭대기에 위치한 몇 개의 명령 체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빈틈없이 진행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애초에 조직의 전체 크기와 정책의 광범위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골든아워2. 남겨진 파편 中)

- P226

의사라면 말술을 먹고 정신을 놓아도 다른 의사에게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거짓과 비방으로 가득 찬 글을 공개적으로 뿌려대는 짓 또한 하지 않는다. 의료계 바닥은 신문지 한 장 펼쳐놓은 것마냥 좁아서 그 같은 짓을 아무에게나 잘못하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술기운은 술기운을 발휘할 만할 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기 좋은 상황에서 발휘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욕설을 들으며 내 비루한 위치를 생각했다.

(골든아워2. 의료와 정치 中)

- P239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좠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 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송방학옹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 가치를 알 수 없었다.

(골든아워2. 무의미한 대안 中)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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