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을 다 읽었다. 예술가의 인생과 그의 작품에 대한 철학을 훔쳐보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경외감 충만한 여행 같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제목처럼 작가들의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다는 것.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알고있지만, 제목 그대로였으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아니면 작업실의 사진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걸. 일본책이라 일본작가들만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번 주에 읽을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로 위안이 될 것 같다.

 

<스밀리의 눈에 대한 감각>. 이 책은 왜 이렇게 안 읽히는지 모르겠다. 다음주에는 내내 이 책만 붙들고 있을수도.

 

해운대에서의 휴가 중 '추리문학관' 방문을 계획해보았다. 일명 '셜록 홈즈의 집'이라고도 하는 1층 카페도 이용할 예정이다. 좋은 책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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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 중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2020일을 복역하면서 가족(주로 부모님, 형수, 제수)에게 보낸 지성인의 옥중 서간문.

 

진정한 고뇌와 이웃과의 진지한 삶, 가족을 향한 애틋한 애정을 숨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전달하고 있어 읽는 동안 동기간과 주고받는 편지글 느낌을 받았다.

 

현재 성공회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많은 저서를 남긴 저자로부터 심심치 않게 정신적 자양분을 얻고 있던 차에 노무현 대통령의 내각 개편시 교육부 장관의 후보에 올라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그의 이력란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는 신문 기사에는 호감을 넘어 그의 팬으로써 그가 쓴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방대한 독서량, 무한한 지식, 따뜻한 가슴의 젊은이가 옥중에서 세월을 보내며 좌절과 절망감보다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관리하는 아름다움이 무척 감동을 주었다.

 

가족들의 묵묵한 뒷바라지와 조카들이 태어나 커가는 과정까지 샅샅이 느낄 수 있을 만큼 저자가 보여준 가족 간의 애정이 가슴 뭉클하게 깔려있다.

젊고 똑똑했던 혈기왕성한 아들이 초로의 노신사가 되어 출소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의 심정을 감히 헤아려, 편지에 담아내고 있다.

 

근래에 옥중 서간을 두 편을 읽은 셈이다. 자연을 아름답고 친밀하게 느끼게 해준 <야생초 편지>, 나를 가슴 깊이 잠수케 할 정도의 사색력을 키워주고 현실을 고맙고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훈을 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떄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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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책,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에서 아카바 수에키치 편에서 그가 <삿갓 지장보살>을 그릴 때 장면마다 눈 내리는 방식, 질감을 구분해서 그렸다.’는 부분을 읽었다.

눈 내리는 방식과 눈의 질감을 구분해내는 관찰력과 감성은 어떤 것일까. 일순간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 것은 나와는 관계없을 예술가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겠지.

그가 그린 눈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수호의 하얀말>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임금님과 아홉 형제>도 있고.

<수호의 하얀말>은 몽골의 민화고 <임금님과 아홉 형제>는 중국의 민화이니, (헌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이와 비슷한 오형제 이야기가 있다.) 일본 작가인 그의 대표작이 공교롭게도 일본의 것은 아닌 셈이다. 여하튼 아카바 수에키치는 옛이야기의 달인이다. 일본과 대륙의 옛이야기들을 그 전통과 분위기를 잘 살려 그렸다.

 

그의 주인공들은 둥근 얼굴에 찢어진 눈, 영락없는 동양인의 모습이다. 복스러운 듯도 하고, 귀여운 듯도 하고, 순수해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꼭 다문 입에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수호의 하얀말><임금님과 아홉 형제> 모두 수탈자로부터 고통 받는 민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해학보다는 꿋꿋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이다.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수호는 결국 하얀 말을 잃었고, 아홉 형제는 임금님의 강짜로부터 벗어나 승리했다는 점. 그래서 수호의 하얀 말은 끝까지 처연하고, 아홉 형제의 임금님은 우습다.

 

앞서 눈의 질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내가 <수호의 하얀말>에서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그림은, 바로 몽골의 하늘 그림이다. 그가 그린 드넓은 초원의 하늘은 다 다른 색깔이고 다 다른 모양인데,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볼수록 가슴 먹먹하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첫 페이지의 드넓은 초원 가득 걸린 쌍무지개 장면과 수호가 말을 빼앗기고 친구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의 검은 먹구름 덮인 하늘의 모습이다. 그것은 그가 몽골에서 찍었다는 사진 속의 하늘과 똑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자연을 인간의 눈을 통해 그린 다는 것은 역시나, 예술가의 영역이겠지.

가끔 이렇게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운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또 이런 책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 약이다. 감동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니까 말이다. 내 몫은 그것이라고 위안해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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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후 남편과 함께 떠나려 했던 은혼식 해외 기념 여행의 꿈을 조용히 접었다.

 

우리 산, 우리 강을 쓰다듬으며 우리 음식을 맛나게 먹고 우리 말로 담소를 나누고픈 잔잔한 기쁨을 맛봄이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김병종 화가에 의해 묻혀져 있던 예인, 광대들의 예술이 세상에 드러나고 그들의 발길이 머물던, 그들의 광기에 불을 붙였던 산천이 다시 살아나 그들의 혼이 담기는 것을 느꼈다.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마음과 눈이 머무는 그곳의 정감 어린 글들과 가볍고 상쾌한 터치의 스케치가 나도 떠나고 싶다는 흥분을 일게 한다.

 

너무나 순수하고 단순해서 마냥 넘치는 광기를 주체할 수 없어 이 어지러운 세상을 끝까지 더불어 살아낼 수 없었던 그들.

 

묘비 없이 스러져간 그들의 영혼이 떠돈 그 곳을, 단아 김병종이 찾아가 잠시나마 머물며 어루만져주어 그들은 위안받고 평안한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50세의 작가는 이 작업(2권의 책에 40명의 예술가와 그들을 키워온 50여 곳의 우리 당을 소개했다.)으로 사랑스런 조국과 멋들어진 조상들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문득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이들.

 

이난영의 목포는 울지 않는다.

이효석 - 봉평에는 하마 메밀꽃이 피었을까

김명순 - 서울의 허공에 펄럭이는 찢겨진 시

김동리 - 저문 하동 화개장터에 역마는 매여있고

전혜린 - 서울, 뮌헨

우수와 광기로 지핀 생의 불꽃

박인환 서울, 사랑은 목마를 타고 하늘을 떠나는가.

천상병 인사동, 귀천이 노래 부르며 떠나간 새

한용운 백담사에서 심우장(성북동)까지, 만해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허날설헌 강릉, 내 시린 가슴 의 못을 빼주오.

이월화 서울, 사랑아, 영화야 나는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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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읽은 책 중.

나는 오르한 파묵은 잘 안 읽혀서, 이유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서는 그의 책은 평생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 책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두껍기도 하지.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책은 그런 것이다. 지루한 듯 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되는. 특히 이 책은 이스탄불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데, 빈부격차, 극심한 도시화, 좌우의 대립, 쿠데타 등 그냥 이름을 서울로 바꾸어 놓아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서, 재미있게도, 신기하게도, 낯설지 않게 읽었다. 마지막 문장이 내게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달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고 나서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구나 싶었다.

 

드디어 8월이다. 추리소설만 실컷 읽기로 약속한 달. 일년 중 오로지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기로 한 달!

첫 스타트로 <우부메의 여름>을 골랐다. 이제 뭘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누가 추리소설 좀 추천 해줬으면. 8월이 이제 시작인데, 좋은 추리소설을 많이 구해놔야한다.

여하튼 <우부메의 여름>은 처음에 주인공 교고쿠도가 장황하게 본인 잘난 척을 하는 부분이 지루하다는 평들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와 세키구치와의 대화가 홈즈와 왓슨의 대화 같아서 홈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뒷부분에 대한 기대를 하게하는 장치로 작동하여 지루하지 않게 무난하게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홈즈>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오히려 <Y의 비극>으로 끝나는 느낌이다. 하늘아래 완전히 새로운 창조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겠지만은, 읽으면서 자꾸 다른 책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은 좀 김빠지는 일이랄까. 그래도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꽤 흡입력이 있었다.

 

이번주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으려한다. 이 책을 내가 읽었던가. 아니던가. 어쩌면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일 수도. 이제는 엊그제 읽은 책의 내용도 기억이 잘 안난다. 그러니 또 읽은 들 어떠하리. 그저 그 시간이 시원하고 재미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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