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에의 동경, 제대로 된 고해에의 옥구를 나는 자주 타는 듯 느꼈다. 그러면서 또한 내가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모든 것을 바로 말하고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먼저 느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일을 다정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몹시 아껴주며 실로 유감스러워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는데, 사람들은 일종의 궤도 이탈로나 보리라는 것을.(48p.)

빛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차츰차츰 이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며 나라는 느낌이 왔다. 그 그림은 나를 닮지 않았으며 그럴리도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내 속에 내재하는 수호신이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다시 한 친구를 찾아낸다면, 내 친구의 모습이 저러리라. 언제 하나를 얻게 된다면 내 애인의 모습이 저러리라. 나의 삶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이 저럴 것이다. 이것은 내 울림이자 리듬이었다.(112p.)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는 말의 여운이 귀에 남아 있었다. (...) 데미안은 당시에 말했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악마이기도 한 신 하나를 갖든지,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125~126p.)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결코 잊지 말게. 하지만 자네가 언젠가 나무랄 데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 때, 그때는 압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그떄는, 자신의 사상을 담아 끓일 새로운 냄비를 찾아 그가 자네를 떠나는 거라네.(147~148p.)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152p.)

"연대란" 데미안이 말했다.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전혀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떄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백년 그리고 그 이상을 유럽은 그저 연구만 하고 공장이나 지었지. 사람들은 정확히 알아. 사람 하나 죽이는 데 화약이 몇 그램 필요한지. 그러나 어떻게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모르지. 어떻게 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걸. (182P.)

그는 푸른 하늘도 초록 숲도 더는 보지 않았다. 개울물도 그에게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하프도 그에게는 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가라앉았으며 그는 가엾고 비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커갔다.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여인을 소유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 썩어버렸으면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사랑이 그의 마음속의 다른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음을 감지했다. 사랑은 힘차게 되어 당기고 당겼으며 그 아름다운 여인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왔다.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서 그녀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겼다. (...) 자기가 잃어버린 모든 세게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겨 놓았음을 그는 전율하며 느꼈고 보았다. (...)하늘과 숲 그리고 개울, 모든 것이 새로운 색깔로 신선하고 찬란하게 그를 마주해 오고 있었다. 그의 것이었고 그의 언어로 말했다. 그리고 그저 여자 하나를 얻는 대신 그는 마음속에 온 세계를 소유했다. 하늘의 별 하나하나가 그의 안에서 불타고 그의 영혼을 통해 기쁨의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201p.)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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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헤세를 좋아해서 집에 그의 책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나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아래서>는 읽지 않았고,

<크눌프. 크눌프 삶의 세가지 이야기>와 <게르트루트>를 고교시절 몇번씩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데미안이 손에 들어왔기에

마음먹고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내 기억속의 헤세는 어렵기도 하고, 혹은 그렇지 않기도 했다. 

<데미안>을 읽고 보니, 그 기억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가슴을 울리지만,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그때처럼 파릇파릇하지 않은 나이라 그런지

읽다가 자꾸 졸았다. 그래도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고, 두고두고 펼쳐 읽고 싶었다.

헤세의 시절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많은 청년들이 싱클레어에 자신을 대입하고 위로받았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그런데, 사는 것은 지금이 더 복잡해져서 이제는 구도자의 길을 걷는 이들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나는 겪어보지 못한 그 시절이 그립다. 소위 낭만의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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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한 단계 나아가길 기대할 때,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이 아니라 오른쪽 혹은 왼쪽의 어딘가여도 괜찮지 않을따. 여기엔 전진도 후퇴도 없다. 높고 먼 방향으로 점프하는 것만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주지는 않을 것이다. (용기라니 그럴리가요 中, 18p.)

자신이 애정해 마지않던 책이 처치 곤란한 짐으로 뒤바뀔지 모를 언젠가를 나는 늘 상상해왔다.
서점의 모든 책은 재고가 된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한다는 마음의 부담보다 더욱 무거운 건 실재하는 책의 무게였다. 이는 애서가가 누리는 장서의 즐거움과는 전혀 다르다. 책방 주인이라면 쌓여가는 책들에 모종의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충고 中, 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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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읽은 책 역시 <밀실살인게임>시리즈.

이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인 2.0 은 첫번째보다는 못하지만, 역시 재미있었다. 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마치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 같은 느낌이라는 것. 잘 읽었다. 이제 추리소설은 내년 여름까지 안녕~

 

영화 <예수는 역사다>를 보았다. 어느 매체인가에서 추천하는 것을 보고 예전부터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고나니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안타깝다. 결국 믿음은 오로지 믿음 하나로밖에는 지킬 수 없는 것인가.

 

다음 주는 더 바빠질 듯.

9월 '독서의 달'은 사서에겐 독서 할 수 없는 달이다.

하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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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재미있었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있다더니만, 과연 그렇기는 했다. 다만 흔치 않은 반전이긴 한데, 그 반전이 그냥 마음에 안든달까.

가끔 책을 읽다보면 뭐지? 이런 막장드라마 같은 전개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싫다는 것이 아니고, 막장드라마여서 오히려 좋기는 하다. 뭔가 밑도 끝도 아무 개연성 없이 그냥 내가 네 엄마였어 하는 그런 전개 말이다. 그런게 가끔 막장드라마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면 참 신선한데, 예를 들면 그림책 <코끼리 왕 바바> 시리즈를 읽었을 때 느끼던 흥미진진함! 이런 것.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 주인공 미치오가 거미로 환생한 S를 죽였을 때, 물론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서도, 너무 급작스런 전개에 이게 뭐야, 그랬다고 죽이면 어떡해? 피해자가 간신히 환생했는데, 또 살해하면 어쩌자는 거야?’라고 소리지를 뻔 했다는... 여하튼 무척이지 재미있는 전개였다.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르달까. 오히려 살인의 동기나 이런 측면에서는 더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뒤로 추리소설만 내내 읽어서 그런지,  <모래의 여자>의 첫부분을 읽는 동안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어쩌다 주인공은 함정에 빠진 것일까, 이제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 뭐, 한참을 몰입해 읽고 나서는 그런 생각도 없어졌지만.

 

<밀실살인게임>도 흥미진진했다. 마지막 주인공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충격적이기도 했고. 다만,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의 저자의 작품이라는 것을 몰랐더라면 그 반전이 한층 더 놀라웠을텐데 싶기도 하고. 여하튼 우타노 쇼고 라는 작가의 작품은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이번주는 <밀실살인게임2.0>을 보고있다. <밀실살인게임-마니악스>도 읽을 예정이고. 2.0은 아직까지는 좀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통쾌하게 날려 줄 반전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제 9월이니... 추리소설은 이걸로 안녕.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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