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용택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잠시나마 삶을 같이했던 지인들을 아름다움으로 회상하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수필.

 

흔하게 쓰이는 농촌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자신 곁의 이웃, 나무, 하늘, , 바위 등에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김용택 시인은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며 섬진강과 고향에 진한 애착을 그려내는 작가이다.

 

이 글을 읽은 시각은 200512월이었으나 노트에 정리하는 현재 시각은 2009529. 노 전태통령의 영결식이 30분 후에 경복궁 안뜰에서 거행될 예정에 있다.

그리고 나는 4년 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어딘가에 터를 잡아 살 꿈을 꾸고 있다

쥐똥나무, 탱자나무 인동덩굴, 목단, 매발톱, 백일홍, 천일홍 등이 내 머리와 가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도 작가처럼 내 집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랑하며 내 뜰을 바라보며 가슴이 ᄄᆞ뜻한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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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우슈비츠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은 읽고 싶지 않아서, 계속 미루다가 겨우 읽었다.

 

읽으면서 엄마를 많이 생각했다. 병고와 싸우면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끝까지 지켰던 엄마. 엄마는 정말이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죽도록 싸웠다. 죽음과 아픔과 외로움과, 그리고 두려움과. 힘들다는 내색도, 짜증도 않고 마지막까지 남편에게 자식에게 고마워하며 뒷마무리까지 깨끗하게 마무리짓고 갔던 그녀.

마지막 몇년이 아니라 엄마의 생 내내, 그 수많은 어려움을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오로지 인내만으로 품격을 잃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엄마는 마지막 순간, 당신 스스로 인간으로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숨을 놓아버렸나보다. 엄마다운 죽음이다. 신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녀의 바람을 들어준게 그 신이라면, 야속하다 해야할지, 은총이라 해야할지.

 

<우리, 독립 출판2>

어쩌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는데, 읽다보니 2권이었다. 보통은 1권을 읽지 않고서는 2권을 먼저 읽지않는데. 이건 얇기도 하고 1권마저 찾아읽기는 귀찮아서 그냥 읽어버렸다.

 

6명의 독립출판물 저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이다. 

용기있는 사람들, 창의적인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은 늘 언제나 힘이 되고 설렌다.

이렇게 인터뷰를 엮은 책들을 읽다보면 유난히 '이 사람 꼭 나 같네.'하는 인터뷰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서귤 작가가 나에겐 그랬다. 한마디 한마디가 꼭 내가 하는 말 같고. 맞아, 나도 이런 느낌 아는데, 싶었다.

 

독립출판물을 한 동안 열심히 읽다가 가볍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구하기 어렵기도 해서 좀 시큰둥해졌는데, 이 책에서 재밌어보이는 책들을 꽤 소개받았다. 기억해뒀다가 기회가 되면 만나봐야지.

 

늙어가는지, 책을 들면 자꾸 존다. 일주일에 한 권, 겨우 읽고 두 권은 벅차다.

더 우스운 건 읽고 나서도 좀 지나면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뭐하러 읽는가, 잘 모르겠다.

 

하긴 엄마가 그랬지. 그 순간의 즐거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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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9-05-2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몇 년간 병고를 겪으시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으셨다니...아마 큰 병을 앓으셨거나 간병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어머님처럼 의연하고 지혜롭게 견디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오랫동안 습작을 해왔는데요.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는 창작물을 계속 만들다보니 지겹고 지쳤어요. 어떻게든 결과물이 보이는 작업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물리적 실체가 손에 잡히는 ‘책‘을 선택했어요. 그럼 왜 기성 출판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독립 출판을 시작했느냐면..... 빨리 내고 싶었어요. 출판사에 투고하고,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내고, 피드백을 받는 그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는 게 싫었어요. 피드백 없는 외로운 작업에 지쳐 있었거든요.
각종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탈락했던 경험도 영향을 주었어요. 내 창작물이 독자를 만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소수 의견에 연달아 부정당하는 경험이 힘들었어요. 어떻게든 저 자신의 창조적 자존감을 지킬 결과물이 필요했습니다. (서귤,「매일 책을 만들면 작가인 겁니다」中) - P110

마지막으로는, 아무래도 이게 근본적인 것 같은데, 표현 욕구예요. 저는 알아요. 제가 생각이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살기 위해 책을 통해서 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서귤,「매일 책을 만들면 작가인 겁니다」中) - P112

목표를 좀 낮게 잡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저는 목표를 낮게 잡고 그것을 달성하면 저 자신에게 보상을 줘요. 가령 하루에 30분 꾸준히 작업하기. 일단 퇴근하고 책상 앞에 앉기만 해도 성공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렵잖아요. 그렇게 목표를 어마무시하게 두 시간 작업으로 잡지 말고 30분만 잡고 저를 어르고 달래는 거죠. (...) 막상 책상에 앉으면 한 시간은 글을 쓰게 되거든요. 그렇게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나를 속이고 달래면서 작업하는 거예요. (서귤,「매일 책을 만들면 작가인 겁니다」中)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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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감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가 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 P52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이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 P122

언젠가 병에 건린 한 젊은이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편지에서 젊은이는 친구에게 방금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수술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언젠가 자기가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주 용감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그렇게 의연하게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참 위대한 성취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그와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고. - P123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38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한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 P148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의 최종적인 의미 역시 임종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최종적인 의미는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의미가 각 개인의 지식과 믿음에 최선의 상태로 실현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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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잘 안 읽혀서 손에 들지 않는데 이 작품은 술술 잘 읽혔다.

그들의 삶과 가족에 대한 노력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한 가족이 무너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소스라치게 무섭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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