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그녀는 그 상황을 잘 견디는 척했다. 폴에게마저도 자신이 얼마만큼 수치심을 느끼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우스운 말이나 슈퍼에서 주워들은 사람들의 대화 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미칠듯 괴로운지.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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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그것을 보관해 둔다. 자식들이 그 얼굴들을 쓰고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 얼굴을 쓰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을 거다. 어째서 안 된단 말인가? 얼굴은 얼굴인데. (...)
그런데 그 여자는 어땠을까? 노트르담 드 샹 거리의 모퉁이에서 완전히 자기 몸속으로 폭삭 가라앉은 듯한 그 여자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소리를 죽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는 방해해서는 안된다. (...) 여가자 그 소리에 놀라 너무 갑작스럽게 빨리 몸을 일으켰기 떄문에 얼굴이 두 손 안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손 안에 비어 있는 얼굴의 틀을 보았다. 시선이 손에 머물러 있는데 손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얼굴을 안쪽에서 보는 일도 소름 끼쳤지만, 얼굴 없는 적나라한 상처받은 머리통을 보는 일은 훨씬 더 무서웠다.(13~14p.)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려는 소원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좀더 지나면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삶처럼 흔치 않을 것이다. (15p.)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가졌다. (...)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흔해 빠진 그 어떤 죽음을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지금껏 살아온 것과 앞로 있게 될 것을 합쳐서 죽었다. (23p.)

할머니는 언제나 전혀 정해져 있지 않은 때에 죽을거라고 생각하셨다. 또 죽어야만 한다고 종종 생각하였으나, 재촉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것이다. 틀림없이, 할머니의 마음에 드는 때에. 그때가 되면 할머니도 아주 조용히 돌아가실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당신께서 정말 급하시면. (138p.)

그러나 이미 죽음은 개의 몸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불안해서 개의 눈빛을 보았고 개도 내 눈빛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별하려는 눈빛은 아니었다. 개는 나를 딱딱하고 낯설게 바라보았다. 개의 눈은 내가 죽음을 집안에 들여놓았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개는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개가 나를 언제나 과신하고 있었음이 이제야 나타났다. 개에게 그것을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개는 죽기 전까지 나를 외롭고 낯선 눈빛으로 응시하였다.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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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회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 그리고 죽는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내 삶을 새롭고도 동일하게 반복한다.
어떤가? 끔찍한가? 아니면 기쁜가? 영원회귀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순간‘이라는 두 종류의 시간의 가치를 뒤집어놓는다. (...) 영원한 순간에 비해볼 때 80년의 유한한 삶의 길이는 0에 수렴한다. 영원회귀를 깨달은 존재는 이제 삶의 방식이 바뀐다. 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존재는 지금까지의 삶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간다. (철학, 115~116p.)

의자는 본질로서 존재한다. 의자의 본질은 단적으로 ‘앉는 것‘으로, 의자의 본질은 개별적 의자보다 중요하다. 만약 특정 의자가 다리가 부러져서 ‘앉는 것‘이라는 본질을 상실했다면, 그 의자는 폐기될 것이다.(...)
말하지 못해도 인간은 가치가 있고,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인간은 가치가 잇다. 즉 인간은 의자나 돼지처럼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철학, 132p.)

즉 소립자는 마치 우리가 관측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관측하고 있지 않을 때는 자신의 위치를 확정하지 않고 확률로만 존재한 채 두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해서 파동처럼 행동하지만, 관측을 시작하면 자신의 위치를 확정해서 입자처럼 행동한다. 다시말해 관측이라는 행위가 확률로 존재하고 있던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확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학, 182p.)

야훼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는데, 남성인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 만들고 여성인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만들었다. 다만 유대 신화에서는 이브 이전에 릴리트라는 여성이 아담과 동시에 창조된 것으로 나온다. 릴리트는 성관계를 중심으로 한 여성 평등을 주장하다가 아담과 갈등을 겪고 결국 홍해로 가서 악마가 된다. (...) 릴리트의 이야기는 이후 바빌로니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전파되었는데, 성경에서는 사라졌다.(종교, 276p.)

신체와 독립된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정신이라는 현상은 다만 뇌의 물질적 조건이 충족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것이다. 유물론적 관점은 물질적 기반이 충조될 때 나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는 사후 세계나 윤회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견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물론적 관점은 실제로는 반대로 윤회나 영원회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나의 정신이 물질적 조건이 충족될 때 발생하는 무엇이라면, 내가 죽은 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특정한 물질적 조건이 충족된다면 그때에는 나의 정신이 반복해서 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비, 336p.)

이러한 윤회의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신체와 독립된 정신을 인정하는 물심이원론의 관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독립된 정신를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의 입장에서도 윤회를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영혼이 있든 영혼이 없든 관계없이 윤회는 발생할 수 있다. (...)
영적인 존재가 없이 변화하는 물질세계만 있다고 하더라도 윤회는 발생할 수 있다. (...)
불교에서는 ‘무아‘를 말하는데, 여기서의 무아는 아트만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모순되지 않는가?(...)
답부터 말하면 윤회는 나의 의식이 반복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물질과 독립된 영혼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영혼이 없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세계를 보고 있는 나의 의식이다. 내가 세계를 보는 구심점으로서 의식적 존재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 순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신비, 337~339p.)

내가 죽은 이후, 즉 물질의 소멸과 함께 의식적 능력을 상실한 다음에, 우주가 존재하는 동안의 이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다시 우연적으로 물질적 조건이 대략적으로 충족된다면 나의 의식능력이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뇌 구조는 일반적으로 유사하므로, 과거 전체와 미래 전체의 인류의 뇌 구족의 다양성 안에서 지금 나의 뇌 구조가 유사하게 반복될 확률은 매우 높다. 즉 과거에도 미래에도 나의 의식능력은 반복적으로 출현했고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능력의 반복을 윤회라고 이름 붙인다면 윤회는 독특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의 일반적 사건일 것이다.(신비, 341p.)

그렇다면 내 눈앞의 세계가 나의 머릿속의 세계, 즉 의식세계라고 할 때 나의 외부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앞서 말했듯 칸트가 ‘몰자체‘라고 이름 붙였다. 실재 그 자체의 세계로서 물자체의 세계는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더듬어 볼 수 있을 뿐, 결코 인지할 수 없다. (...) 의식적 존재 전체를 통틀어서 의식 너머의 세계를 직접 접한 존재는 없었을 것이므로 물자체는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있다. 다만 상상해 볼수 는 있겠다. 우선 물자체의 세게에 빛은 없을 것이다. (...) 실제 세계는 빛이 아니라 광입자들의 물리적 운동만이 있다. 광입자들은 빛나지 않는다. 광입자들을 빛나는 무엇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 따라서 의식 너머의 세계에는 빛이 없으므로 색깔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색깔이 머무는 표면이라는 현상도 없다.(...) 그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광입자, 운동, 인력, 척력, 상상할 수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들만 존재한고 있다. 내 눈앞의 세계가 실제의 세게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심적 위안을 주는 믿음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신비, 365~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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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드디어 <지.대.넓.얕>을 다 읽었다. 영원 회귀와 양자역학에 대한 부분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다른 부분들은 다 어디선가 배웠던 것을 정리하는 기분이었는데, 이 두 부분은 처음 들어본다. 죽음과 시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란 짐작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도 못할 정도의 상식 밖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손보미의 소설<디어 랄프 로렌> 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번 주는 두권의 책과 영화<조선명탐정2>가 준비되어있다. <조선명탐정1>에서 여주인공의 역할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실망스러웠는데, 2편에서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점점 성평등주의자가 되고 있나보다.

그래서 좀더 공부해보고 싶다. 정말 진정한 성평등이란 무엇인지.<모두에게 페미니즘>은 그냥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길래 빌려와봤다. 부디 나에게 좋은 만남이길...

<지연된 정의>는 그만 아끼고 이번주에는 정말 읽기 시작해야지.

 

피곤한 주말이 될 것 같다. 그건 곧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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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 아저씨는 자기가 아이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고 했어. 그런데 슬슬 본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촌스러운 데다가 엄격하기까지 하고 거기다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잔소리쟁이 노인네더라고.
침실을, 세상에, 그것도 이 작은 침실을 함께 쓰는 그 특별한 ‘행운‘을 가진데다가 세 아이중 가장 버릇이 없다고 여겨지는 덕에 난 진짜 많이 참아야 해. 또 계속 반복되는 늙은이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머거리인 체해야 하고 말이야. 그래도 뒤셀 아저씨가 매번 엄마에게 끔찍한 고자질을 하는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아저씨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들었는데 엄마가 다시 시작하면 앞뒤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맞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거든. 그리고 반 단 아줌마에게 불려가 설명을 해야하기라도 하면 정말 그건 제대로 된 허리케인이고! (1942년 11월 28일 토요일, 58p.)

매일 아침, 누군가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오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가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봐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엄마를 따뜻하게 맞았지. 하지만 엄마는 퉁명스럽게 몇 마디 던질 뿐이고 그러면 난 찢어질 것 같은 마음로 학교에 가곤 했지.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어.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 그랬을 거라고 말이야. 그렇게 즐거운 마음이 되어 집으로 와 쉴새없이 또 재잘거지지만 다시 슬픈 표정이 되곤 했어. 가끔 토라진 채로 있어 볼까도 했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내 결심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엄마에게 수다를 떨었고 엄마는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기게 되는 거야. 그러다가 다시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순간이면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밤을 지새우는 거지.(1944년 1월 12일 수요일, 124p.)

하지만 아빠가 놓친 게 하나 있어. 나에게는 최고가 되기 위한 싸움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아빠는 몰랐던 거야. 난 ‘네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다른 여자 아이들‘, ‘저절로 사라질 거야‘란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다른 여자 아이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아. ‘나만의 개성을 가진 안네‘로서 대접을 받고 싶은 거라고.(1944년 7월 15일 토요일, 225p.)

어느 날 오후에 내가 광대처럼 까불어 대고 나면 사람들은 한 달 동안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 (...) 나의 가볍고 피상적인 면은 깊은 내면에 비해 언제나 약삭빨라서 항상 우세하지. 이런 안네를 밀어내고 억누르고 감추려고 얼마나 내가 노력했는지 넌 모를 거야. 그런 모습은 ‘안네‘라고 불리는 사람의 일부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노력도 소용 없었고, 왜 소용없는지도 난 알아.(1944년 8월 1일 화요일, 231p.)

이미 말한 대로 난 내 감정을 절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둥, 잘난 체한다는 둥, 연애 소설만 읽는다는 둥 하는 소릴 들어 왔어. 유쾌한 안네는 그런 말을 듣고도 웃어넘기고 건방진 대답을 하고 무관심한 척 어깨를 으쓱하고 상관 없다는 듯 행동하지. 하지만 조용한 안네의 반응은 반대야. 솔직히 말하면 상처를 받고 있었어. 그렇기 떄문에 내 자신을 바꿔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은 항상 더 강해.(1944년 8월 1일 화요일,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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