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 아저씨는 자기가 아이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고 했어. 그런데 슬슬 본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촌스러운 데다가 엄격하기까지 하고 거기다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잔소리쟁이 노인네더라고. 침실을, 세상에, 그것도 이 작은 침실을 함께 쓰는 그 특별한 ‘행운‘을 가진데다가 세 아이중 가장 버릇이 없다고 여겨지는 덕에 난 진짜 많이 참아야 해. 또 계속 반복되는 늙은이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머거리인 체해야 하고 말이야. 그래도 뒤셀 아저씨가 매번 엄마에게 끔찍한 고자질을 하는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아저씨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들었는데 엄마가 다시 시작하면 앞뒤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맞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거든. 그리고 반 단 아줌마에게 불려가 설명을 해야하기라도 하면 정말 그건 제대로 된 허리케인이고! (1942년 11월 28일 토요일, 58p.)
매일 아침, 누군가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오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가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봐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엄마를 따뜻하게 맞았지. 하지만 엄마는 퉁명스럽게 몇 마디 던질 뿐이고 그러면 난 찢어질 것 같은 마음로 학교에 가곤 했지.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어.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 그랬을 거라고 말이야. 그렇게 즐거운 마음이 되어 집으로 와 쉴새없이 또 재잘거지지만 다시 슬픈 표정이 되곤 했어. 가끔 토라진 채로 있어 볼까도 했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내 결심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엄마에게 수다를 떨었고 엄마는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기게 되는 거야. 그러다가 다시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순간이면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밤을 지새우는 거지.(1944년 1월 12일 수요일, 124p.)
하지만 아빠가 놓친 게 하나 있어. 나에게는 최고가 되기 위한 싸움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아빠는 몰랐던 거야. 난 ‘네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다른 여자 아이들‘, ‘저절로 사라질 거야‘란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다른 여자 아이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아. ‘나만의 개성을 가진 안네‘로서 대접을 받고 싶은 거라고.(1944년 7월 15일 토요일, 225p.)
어느 날 오후에 내가 광대처럼 까불어 대고 나면 사람들은 한 달 동안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 (...) 나의 가볍고 피상적인 면은 깊은 내면에 비해 언제나 약삭빨라서 항상 우세하지. 이런 안네를 밀어내고 억누르고 감추려고 얼마나 내가 노력했는지 넌 모를 거야. 그런 모습은 ‘안네‘라고 불리는 사람의 일부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노력도 소용 없었고, 왜 소용없는지도 난 알아.(1944년 8월 1일 화요일, 231p.)
이미 말한 대로 난 내 감정을 절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둥, 잘난 체한다는 둥, 연애 소설만 읽는다는 둥 하는 소릴 들어 왔어. 유쾌한 안네는 그런 말을 듣고도 웃어넘기고 건방진 대답을 하고 무관심한 척 어깨를 으쓱하고 상관 없다는 듯 행동하지. 하지만 조용한 안네의 반응은 반대야. 솔직히 말하면 상처를 받고 있었어. 그렇기 떄문에 내 자신을 바꿔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은 항상 더 강해.(1944년 8월 1일 화요일, 23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