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그것을 보관해 둔다. 자식들이 그 얼굴들을 쓰고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 얼굴을 쓰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을 거다. 어째서 안 된단 말인가? 얼굴은 얼굴인데. (...) 그런데 그 여자는 어땠을까? 노트르담 드 샹 거리의 모퉁이에서 완전히 자기 몸속으로 폭삭 가라앉은 듯한 그 여자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소리를 죽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는 방해해서는 안된다. (...) 여가자 그 소리에 놀라 너무 갑작스럽게 빨리 몸을 일으켰기 떄문에 얼굴이 두 손 안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손 안에 비어 있는 얼굴의 틀을 보았다. 시선이 손에 머물러 있는데 손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얼굴을 안쪽에서 보는 일도 소름 끼쳤지만, 얼굴 없는 적나라한 상처받은 머리통을 보는 일은 훨씬 더 무서웠다.(13~14p.)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려는 소원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좀더 지나면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삶처럼 흔치 않을 것이다. (15p.)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가졌다. (...)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흔해 빠진 그 어떤 죽음을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지금껏 살아온 것과 앞로 있게 될 것을 합쳐서 죽었다. (23p.)
할머니는 언제나 전혀 정해져 있지 않은 때에 죽을거라고 생각하셨다. 또 죽어야만 한다고 종종 생각하였으나, 재촉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것이다. 틀림없이, 할머니의 마음에 드는 때에. 그때가 되면 할머니도 아주 조용히 돌아가실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당신께서 정말 급하시면. (138p.)
그러나 이미 죽음은 개의 몸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불안해서 개의 눈빛을 보았고 개도 내 눈빛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별하려는 눈빛은 아니었다. 개는 나를 딱딱하고 낯설게 바라보았다. 개의 눈은 내가 죽음을 집안에 들여놓았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개는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개가 나를 언제나 과신하고 있었음이 이제야 나타났다. 개에게 그것을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개는 죽기 전까지 나를 외롭고 낯선 눈빛으로 응시하였다.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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