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집에서 (장석남)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진 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