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 줄 몰랐는데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집에 오니까 왠 생뚱맞은 병원 고지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기진료 한 번 받았는데 사백오십불 보험회사에서 육십불 낸다고 나보구 삼백구십불 내랜다. 지금 장난하나? 매달 팔십불씩 내는 의료보험료는 뭐에 쓰냐? 정기검진이라구 의사랑 한 방에 십 분 앉아 있던 거 말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이냐. 그렇지 않아두 이빨 때문에 머리 아픈데, 이건 또 뭐하자는 수작이란 말이냐, 썩을... 10월 중순에 받은 정기검진에 청구서는 왜 11월 말에 날라오고, 12월 9일까지 무조건 돈 내라는 건 또 누가 정한 법이냐고, 엉???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건 억울하지 않다. 못 벌면 가난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분명히 보험 설명서를 읽구 정기검진 일년 일회는 15불만 내면 보험 안에 커버된다는 말에 병원 갔는데 이제 와서 이런 딴 소릴 하면, '나'라는 인간의 가치가 더럽도록 하잘것 없게 느껴진다. 내 딴엔 나 잘난 인간이지만 드러븐 보험회사랑 싸워서 이길 자신 따위는 애초에 없다. 잠자는 시간 뺀 인생의 삼분의 이를 내다팔며 살았는데도 한 번 병원 가는 일이 연옥가는 일보다 더 무서우면 그 인간의 가치는 거지 발싸개만도 못한 것이다. 제 밑도 못 가리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자괴감에 xx 울 뻔했다.
* *
개들이 꼬리치는 건 사람이 웃음짓는 것과 같다고 한다. 개들은 아무리 기쁘고 신나는 일이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개들은 그런 의미에서 부처다.
* * *
뒤집힌 속을 달랜다고, 참이슬을 한 팩 따고 새우깡 봉지를 열구, <취화선>을 봤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늙어서 흰 머리 난 오원 장승업이 자기 가마 앞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그 불가마로 기어들어가는 마지막 씬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그리스의 옛철학자 엠페도클레스를 떠올렸다. 화산을 몸을 날려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참말로 영웅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칸트의 숭고미의 전신이랄까 화신이랄까. 하지만 진정한 인간은 불가마에 두 팔꿈치 두 무릎을 대고 기어들어가 죽는 인간이다. 인간 하나가 타죽어도 가마는 끄떡도 안 한다. 불은, "누가 왔다 갔냐?" 한다.
(아무리 찾아도 불가마에 장승업이가 기어들어가는 장면 사진은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