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나를 배반해온 것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해도 인생은 나아지지 않았다. 직종에 따라 약간의 희미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나는 적성이 없거나 노동 자체를 혐오하는 비정직한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무얼 하건 언제나 뒤에 길다랗고 거대한 그림자로 바싹 붙어 나를 위협하는 건 일이 아니었다. 삶이란 참을 수 없이 고되고 무의미한 노동이다. 그에 비하면 일은 유희에 다름 아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일을 바꾼다고 인생의 성격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애매모호하고 이해되지 않는 할당량을 채워넣듯이 그냥 살아야 한다는 거다.
序詩 (이성복 )
간이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