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멋지다고 생각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대학 초년병 때에는 왜 남자애들이 술만 벌컥벌컥 마시고 말은 잘 안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 남자애들이 분위기 있다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몇 년 후에 깨달았는데 분위기 있다는 남자애들이 술만 마시고 말은 잘 안 하는 이유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였다. 심오한 생각에 빠져 있거나 심각한 걱정이 있거나뭐 그런 게 아니었다. 그리고 또 궁금했던 건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술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문사의 예를 들자면 천상병 시인이라거나. 동네 막노동하는 아저씨들이라거나. 술은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데 맛있는 걸 사먹지 왜 소주 같은 걸 아침부터 들이키고 있을까나?
근데 요즘에 내가 이런다. 위염이라 자나깨나 속이 쓰린데도 일어나서 담배를 물고 소주는 못 구해서 맥주병나발을 부는 신세가 됐다. 역시 경험만이 이유를 알려주는 행동들이 있다. 그럼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현실 도피? 도피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하라고? 현실이 대처가 안 되니까 도피를 하지! 아, 그래서 한 대 더 피우고 한 병 더 마시고... 그냥 잊으려고. 기억 속 생텍쥐페리의 술주정뱅이의 묘사가 아주 가슴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