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년 반 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가 어렸을 적 을지로 사는 고모집에 갔다가 "얘야, 이제 내가 서울 구경을 시켜주마"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변두리 중의 상 변두리다.  서울에 머무는 마지막 날도 나는 어두운 집구석을 견디지 못하고 시내로 나와 종로통과 조계사 께를 부산스레 돌아다니며 초점도 구도도 맞지 않는 사진을 해가 저물도록 찍었다.  그렇게 내게만 특별하고 내게는 정작 특별대우 하나 해준 것 없는 서울을 포장해가지고 돌아왔다.

얼핏 보기엔 부산스럽기 그지없어도 한 구석은 늘 휑하니 빈 서울엔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허수경의 시가 잘 어울렸다.



불우한 악기/허수경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혼자 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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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0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 오랜만이세요. 서울 뿐 아니라, 알라딘도.

검둥개 2008-01-0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잘 지내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그동안 리뷰 많이 쓰셨네요. 조만간 구경하러 들를께요.

비로그인 2008-01-11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 오셨었군요. 저는 돌아와서 일년넘게 살았는데도 아직 서울과는 서먹서먹합니다 그려.

검둥개 2008-01-1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일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했답니다.
분주하고 서먹하고 안쓰럽고 좀 휑하고 그런 도시 같아요, 서울은.

2008-01-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3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