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노마드의 역사
노마드의 정착
첫번째 세계화 17세기 최초의 상업적 노마디즘
  상업적 노마디즘이 정착민보다 우세해질 때 세계화에 대한 거부가 발생 18세기
두번째 세계화 19세기 산업적 세계화 빈곤한 노마드 대 부유한 노무드로 양극화
  전체주의에 의해 거부된다.
세번째 세계화 20세기 2차대전후 : 상업적 세계화 :
 세계화 실패의 징후 - 빈곤
  하이퍼노마드, 정착민, 인프라노마드

세개의 노마드 제국 : 시장, 종교, 민주주의

트랜스 휴먼

이 책은 노마드의 세계사 또는 인류사로 말해도 될 듯
인간은 노마드로서 태어나고 노마드로서 문명을 일구어 내며 전 지구적으로 족적을 남긴다
유목을 멈춘 곳에서 정주민의 역사가 시작된다.
정착과 유목은 단계적인 역사발전이 아닌 동시적이고 교착적으로 진행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주민의 마지막 거점 - 국가

정착민의 안정성과 유목민의 자유 등의 두 속성을 모두 갖춘 트랜스 휴먼이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래의 유토피아에 살아갈 유토피아적 인간을 그려내기 위해 이 방대한 노마드의 역사서를 집필한 것이다.

그는 낙관적이지만 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초극대제국 시장이 과연 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을까
인프라노마드만 트랜스휴먼이 되고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식 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책의 저자 자크 아탈리가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에 왔다. 미래학자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빈민은행을 프랑스에서 구현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그린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 - 9.11 테러와 이슬람 이해하기
이희수.이원삼 외 12인 지음 / 청아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처용이 아랍인이라는 등 우리나라가 오랜 옛날 부터 아랍 및 이슬람 문화와 많은 접촉이 있어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조선 시대 세종 때에는 무슬림들이 신년 하례 참석해서 이슬람식으로 축하기도까지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역사에서 이슬람과 단절된 것은 불과 몇 백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다가 개화 이후에 다시 간헐적으로 이슬람과 교류가 있어왔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은 먼나라의 일처럼 여겨져 왔다. 7,80년대 아랍권으로 많이 진출하면서 그들 나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왔지만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이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일 것이다.

십여년 전에 코란을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두고 나서 종교관련 서적에서 이슬람에 관한 부분을 읽어본 것 말고는 별도의 책을 통해 이슬람을 접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직접 대면 방식이 아니라 서구적인 관점으로 해석된 이슬람관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왜곡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이다.

한손에는 칼을 한손에는 코란을 이라는 말로 호전성을, 일부다처제라는 비윤리성 등등으로 가려져서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근대 이후 이슬람권은 제1세계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기 때문에 1세계에 대항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아랍의 역사와 이슬람 문화의 복권을 통해서 또 한번 인류사적 르네상스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는 만큼 본다..

당연한 이 말을 이책을 읽으면서 또 절감한다. 그동안 무심결에 지나쳤던 우리 옛 건축물들의 구성 요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또 보인다. 옛 사찰이나 서원에 가서 본 것들은 무엇이었던가. 건물. 편액을 따라 어떤 이름의 건물에만 시각이 고정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보아야 할 것은 독립된 전체로서의 건물들 뿐만 아니라 그 건물들의 구성 방식, 건물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 건물에 도달하기까지 무심결에 지나다녔던 길들, 길 주위의 세세한 손길들.. 사찰이나 서원, 한옥을 구성하는 공간 전체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 장인들이 손 때가 묻어 있는 그 하나하나의 부조물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양 건축이 수천년간의 진화와 발전 끝에 한계점이 도달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자 할 때 마침내 추구하는 것들이 우리 옛 건축에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건축의 기본 원리로 녹아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집은 사람이 깃드는 곳일 텐데. 현대의 한국인들은 과연 집에 깃들어 사는가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터를 잡고 집이 지어지고, 수 대에 걸쳐서 살던 그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역사를 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치부의 수단이 되고, 평수를 늘려가며 또는 가격을 올려가며 이리 저리 옮기는 것을 수완으로 삼는 이 시대.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주거 문화일 수 밖에 없을까.

얼마전에 새 중앙박물관이 개관했다. 성벽의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역사를 상징하고 안에 있는 것들을 견고하게 지켜내는 의미로 그랬다는 것 같은데. 우리의 수 천년의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그렇게 경직된 모습의 외관을 가진 건축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나도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데, 시류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집에 깃들듯이 집도 또한 자연에 깃들거나 마을에 깃들어야 할 터인데, 우리의 살림집의 전통을 잘 간직하면서도 또한 시대에 어울리는 그런 멋진 집을 과연 가질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와 의학의 만남 -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명화 속 삶과 죽음 명화 속 이야기 3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을 보다.

그림은 보는 것이다. 물론 화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자명해 보이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보는가라고 질문해보면 다른 문제이다.
화가가 아무리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림을 구상하고 그리게 되지만, 화가가 생각한 것 이상이 그려져 있게 된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보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보게 되는 것은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일 것이다. 나 같이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이 볼 때는 단지 그림 속에 나타나는 인물이나 배경 등등, 자연에서 사회에서 보던 것들만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림을 한 번이라도 그려본 사람이라면, 구도는 어떻고 색감을 어떻고, 붓을 어떻게 놀렸고, 어느 유파이고, 어떤 기법이고, 등등 많을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책은 법의학자가 법의학적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림 속의 인물, 그림을 그린 화가가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였을지,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였을지 등등을 법의학적 지식으로 날카롭게 지적해 낸다.

중학교 들어갔을 때 미술부에 들어오라는 미술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미술하게 되었을까. 재능 없음을 알고 중도에 그만 두었을까. 계속 했다면 어떤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리얼리즘 화가가 되었을까. 추상화가가 되었을까.

그저 그림을 보는 안목있는 교양인이라도 되어 볼까. 인간의 표현 행위는 어쨌든 대화 행위 일텐데, 그림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읽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교양을 지녀야 할 터인데. 저자가 법의학자로서 그림을 읽고 있듯이 나는 내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그림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럴려면 내 나름대로의 시각도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터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현대의 지성 120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현대 철학의 두 거장이 테러시대를 진단하는 책...

현 시대를 테러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잉된 것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 혹은 지식기반사회라는 명명이 친숙하게 들어오던 것이다. 테러 시대라는 명명은 이 시대에 대한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이 시대의 한 측면을 기술하기 위한 하나의 수식어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테러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논쟁점이고 어떻든 다른 시대와 다른 폭력적 행위 또는 상황으로서의 테러가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테러 행위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는데 굳이 왜 지금 이 시대를 테러시대라고 명명하고 분석하고, 철학석 해석을 시도하게 되는가.

이 책은 9.11을 계기로 기획되고 쓰여졌다. 데리다는 이 '9.11'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많은 테러가 있어왔는데, 오직 '9.11'만 '9.11'이라는 날짜로서 명명되었는가. 촘스키의 [해적과제왕]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이 자행한 수많은 테러행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명을 살상하거나 나라를 전복시키는 수 많은 공작과 테러행위들. 그런데, 9.11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어떤 사건에 대해서만, 그 사건과 유사한 또는 동일한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행위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9.11'만 '9.11'이다.

미국이라는 이 초국가적이고 초법적인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저항과 테러가 있어왔는데, 이제 9.11이라 이름하고, 이 시대를 테러 시대라 하게 되었는가. 테러 행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역시 아니었다. 9.11을 9.11로 만들 수 있는 이 시대가 다른 시대와 다른 것이다. 미국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이를 전세계적, 세계사적 사건으로 만들 수 있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자본질서, 미디어 질서가 어느 날 일어난 어느 사건을 9.11로 만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비판적이다. 지역성, 민족성, 국가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전의 테러 유형과 성격이 다른 무국적의 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아이러니다. 자본은 초국가적인데, 이 국제 테러리즘은 그것과 양립할 수 없다니. 특히나 데리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란다. 인간을 위한 어떠한 희망적인 프로젝트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마땅치 않지만, 명분상으로나마 선언적으로나마 희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반해 국제 테러리즘은 어떠한 희망적 메시지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존재는 얻어맞아도 싼 존재지만, 그 때리는 존재에게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유럽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버마스가 쓰고 데리다가 서명한 '우리의 혁신 : 전쟁 이후, 유럽의 재탄생'에서.  미완의 계몽은 계속되어야 한다. 계몽은 진행중이다. 계몽의 출현은 몇 백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계몽을 시작한 유럽이 근대의 정신을 추구한다면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고.

우리나라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소리 2005-11-1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 : 하버마스, 데리다 익히 들어온 인물이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이 9.11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을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나온 책이라니. 어떻게 말했길래 미국에서 기획되고 출판될 수 있었을까. 역시나 두 사람 모두 국제 테러리즘에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리고 데리다 마저 계몽에 아주 긍정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중에서도 아주 파괴적인 사람으로 데리다를 알고 있었는데, 음. 역시 미국에서 저자가 밝힌 대로 호의적으로 출판될 만한 책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비판적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데리다 마저 그래도 거기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촘스키의 [해적과제왕]이라는 책의 효과와 비슷한 것이라고 봐야 할 수도. 미국이 저지를 각종 만행, 그들이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테러'를 아주 모범적(?)으로 자행해온 미국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책의 효과란 무엇인가. 그 책이 반미의식을 고취할 수 있을까? 그런 무지막지한 나라하고는 상종을 말자? 그런 효과만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헉, 미국이 그런 조폭, 마피아, 살인마 두목이었단 말여? 그렇다면 얻어맞기 전에 찍소리말고 시다바리를 해야겠군.. 이런 반응이 지배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 논란이 한창일 때 티비토론에서 어떤 뭔 경제전문가였던 것 같은데, 미국이 지배하는 이 세계질서에 편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미국에 밉보여서 좋을 거 하나없다. 이런 식의 발언..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이 책에서의 발언. 9.11에 대한 입장이란 것이 바로 독일과 프랑스가 9.11 이후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침략 행위에 대해 보여주었던 바로 그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공교롭게도 바로 독일인과 프랑스인이군요. 이 두나라가 파병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침략하지 못하도록 어떤 일을 했던가. 그저 미국이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최악일까. 맘엔 안들지만, 그렇다고 뭐 까지꺼 냅두지 뭐.. 거의 이런 반응 아니었던가.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 사태. 흠.. 이슬람을 왕따 시키려는 국제 음모로부터 프랑스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