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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얼마전 동네 서점에 갔다가 눈에 익은 책이 있어 구입했다. 논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책소개하기를 하도록 했는데 이 책을 소개한 학생이 몇 있었다.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것도 맘에 들었다. 꿈을 찾고 있는 중고등학생, 꿈을 잃어버린 어른이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책을 소개한 학생들이 중학생 때나, 고1때 읽은 것이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대표작 중에 [용의자 X의 헌신]이 있다. 영화로 봤었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리메이크 영화도 봤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은 후 다시 '용의자 X의 헌신' 영화를 보니 작가의 일관된 관점이 느껴진다. 추리소설이지만 사건이 중심이 아니고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주인공 세 명이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다가 문을 닫은지 오래 되어 지금은 비어 있는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과 기적적으로 엮이게 되는 네 명의 사연이 소개된다.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잡화점에서 일어나는 타임슬립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뒤섞이며 인연을 더욱 얽히기 만든다. 추리소설 작가답게 독자들에게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를 맞춰가게 한다.
인생의 낙오자나 다름 없는 세 명의 주인공이 잡화점에 숨어들어 뜻하지 않게 편지 상담을 하게 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이고 진솔한 답변으로 등장 인물들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조언자의 충고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는 걸까?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힘든 선택의 갈림길에서 용기가 부족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회피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헤쳐 나갈 방법을 찾기보다 오히려 회피할 구실을 찾는 데 골몰하기도 한다.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할 백만 가지 이유를 찾고 어쩔 수 없었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정말 그것을 원하는 것이다. 꿈을 향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다른 이유들은 그저 꿈을 향한 길에 놓여 있는 조건들일 뿐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그 조건들을 활용하고 바꾸어 나가면 된다.
요새 어른들이 말하길 젊은이들은 꿈이 없고,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배부르고 등따신 것들이 투정만 늘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젊은 시절에 물불 안가리고 자기 길을 찾아서 떠났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러지 못한 것일까? 진로교육이 점점 아래 학년으로 내려가고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의 진로교육이 역설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도 나오듯이 예전에는 무모하게 대책없이 무슨 일이든 시작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실패해도 더 나빠질 것도 없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적었을까? 그럼 요즘 젊은이들은 가진 것이 있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것일까?
진로교육이 강화되면서 아이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꿈을 꾸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많은 직업들을 알게 될까? 아니면 자신이 할 수 없는 많은 직업들을 알게 될까?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하게되는 상황과 수 많은 직업들을 알게 되었는데 막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것이 당사자에게 더 힘든 상황일까?
역설적으로 진로교육을 대폭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예전 생기부에 진로 희망에는 직업명 단 한단어만 적혀 있었다. 지금은 그 직업을 희망하는 이유를 적어야 하고, 수시전형에 응시한다면 그 진로를 왜 원하는지 그래서 이 학과를 왜 지원하는지에 대해 대학측에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향후 10년 후에 어떤 직업이 살아남고 사라질지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 10대 아이들에게 그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냥요'라는 답변은 용납되지 않는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서 많은 아이들이 입학사정관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두려워 한다. 물론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에서 길러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 자체가 불평등하게 길러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꿈을 가져라. 두려워 하지 마라. 누군가 하고 있는 일이라면 너도 할 수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면 너가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 마음이 내려 앉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닌데.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인데....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 시그널의 박해영 경위의 독백도 떠올랐다. '혼자인줄 알았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는데' 이재한 형사가 지켜봐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홀로 세상에 맞서야 하는 것 같지만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나를 위해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 책에서도 그 염려와 배려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과의 고리를 이룬다.
그리고 저자는 행운의 사례를 하나 넣어 두었다. 노력한 대로 댓가를 얻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행운이 주어진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억세게도 운이 좋아 고비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도움을 주고 염려해 주고 행운까지 찾아와 주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더 미안하다.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각각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대동(大同)사회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