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징 레인스

예고편만을 보았을 때는 왕짜증을 유발하게 충분할 만큼 보는 이의 심리를 자극하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지만 본 후의 느낌은 의외로 깊숙한 폐부를 콕~ 찌른 꽤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투쟁의 역사라고 했던가? 제목처럼 인생은 끝없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고 그 갈림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는 짧은 순간 동안 두 주인공의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절묘하게 빗나가는 선택으로 인해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됩니다. 헐리우드 영화에 비극이 드문 만큼 이 영화도 궁극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합니다.

흑과 백, 부와 빈, 늙은이와 젊은이 등 대립된 인간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나름대로의 표현양식인 듯 합니다. 사회에 대한 극한 분노 인하여 가진 것 모두를 잃어버린 도일과 인생의 성공가도에 놓여있는 변호사 개빈은 두 사회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미국의 유머의 단골 등장인물인 변호사라는 직업 처럼 비난받는 인물도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개빈의 변호사 사무실에 온 신입직원 면접자의 얘기처럼 법을 전공한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들은 법과 정의을 수호와 실천을 위한 부푼 꿈을 갖고 사회로 첨벙 뛰어들지만 그 물은 보기와 달리 진흙탕이었음을 알게 되는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 듯 합니다.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요?

사회정의는 모종의 암시와 주문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 최면에 빠진 후에는 헤어나기 힘든 것이죠? 도일이 참가하고 있는 금연학교도 그런 최면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죠. 개빈이 상류층의 더러운 치부에 허우적 거릴 때, 도일은 사회를 향한 분노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 입니다. 사회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동전의 양면이면서 동시에 같은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정의를 수호하고 실천하는 것은 의외로 힘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란 그런거야 라고 아무런 꺼리낌없이 잊어버릴쯤 그로 인해 누군가가 어디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그 고통을 감싸안을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쉬운 때인 듯 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벤츠를 긁어버리고 고급 변호사 사무실에 물세례를 받친 탓인지 고예산을 들여 찍은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오히려 심리 드라마에 가까운 듯 합니다. 주인공의 사건 전개를 통해 그 짜증이 관중에게 전달될만큼 다소 불쾌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 또한 연출자가 의도한 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흥행을 넘어서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보아야 할 좋은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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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를 켜라

끊임없는 먹이사슬 관계가 인간의 사회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듯 하다. 봉구의 라이터와 철곤의 뒷돈 간의 묘한 대비 속에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외면해 버린 타인의 자존심이 극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영화이다.

남자는 사회로 부터 외면 당하는 순간 생존의 의지 조차 끊어지는 묘한 생물이다. 무리로부터 따돌림 받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가족관계 마저 힘겹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동물과 다른게 있다면 기다려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봉구의 어머니나 철곤의 아내처럼.......

인간의 잔인성은 생존과 관계없이 나타나게 된다. 그냥 줘버려도 되는 하찮은 것이지만 남에게 던져주기에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생각을 하고, 그걸 즐기려는 묘한 성질을 갖게 한다. 철곤은 중얼되는 어리버리 봉구를 외면하고 나왔는데 화장실 밖까지 쫒아온 봉구가 귀찮아져 돌려 주려던 라이터가 다시 철곤의 주머니로 들어가 버린 이후로 그 라이터는 자신의 자존심과 맞바꿔버린 것이 되고 만다. 박 의원도 선거에서 주먹질한 대가를 받으러 온 철곤의 돈이 비록 몇 푼 되지 않지만 자신의 현재 지위와 체면을 생각하고 쉽게 주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극한상황을 만들게 되고 자멸하게 되고 만다.

라스트씬에서 철준이 라이터를 켜서 다시 얻어 피우는 담배 한가치 맛을 느낄 쯤 나오는 윤종신의 배경음악 '담배 한 모금'은 모든 것을 초월한 철준의 인생을 대신할 만한 주제곡인 듯 하다. 끈적한 블루스 풍의 이 곡은 다른 주제곡들 보다 한층 더 주인공의 심적 표현을 잘 묘사한 수작인 듯 하다.

우리도 이런 영화를 좀 많이 찍어봤으면 하는 소망(?)이 들었다. 영화에나 나옴직한 달리는 기차 위의 액션씬, 다이하드 같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지만 왠지 뒷마무리가 들 된 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그런 장면을 찍어본 경험이 적었기 때문일게다. 이걸 보며 제작자들이 박수를 쳤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더 잘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해야 할 듯 하다.

몇 년 뒤 잊혀진 영화가 될 쯤 다시 한 번 제작하면 괜찮은 영화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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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감독의 부활을 꿈꾸며...

 
얼마 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에 관한 얘기를 누군가와 했었다. 그 분 얘기의 요지는 무삭제판과 극장판을 봤는데 적절하게 편집된 극장판이 괜찮았다는 것과 능력있는 감독이지만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자에는 나도 인지하는 바였지만, 전자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로 장선우 감독은 본의 아니게 한동안 잠수를 타야만 할 것 같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바리공주'는 꽤 오랫동안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 그런데 '성냥팔이...' 얘기를 하면서 대부분 장선우 감독의 전작인 '거짓말'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대박은 아니었지만, 대중적으로 장선우 감독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면서(비록 악명일런지도 모르지만) 작품성에도 좋은 평을 얻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거짓말'은 좋은 영화인가? 감독은 "나쁜 영화"라고 얘기한다. 좀 의미는 다르겠지만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장선우 감독의 코드라고 불려지는 종교, 섹스, 정치, 예술 요소를 고루 갖춘 작품이라 생각된다. 결코 대중적일 수 없는 요소들만 갖추고 찍고 싶은대로 찍은 작품이었을게다. 그런데 유일한 대중적 요소로 보여지는 하나의 코드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렸기에 그는 "나쁜 영화"라고 얘기한 것은 아닐까? 그 이외에도 일상적인 영화가 아니고 일반적 영화찍기에서도 벗어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나치게 한 요소가 부각된 것을 걱정한 볼멘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성냥팔이...'는 감독 자신 조차 대중적이라고 얘기했지만 무참히 짓밟혔다. 너무 대중적이다 못해 너무 상투적인 탓이었을까? 아니면 관객들이 장선우 감독의 코드를 이해하기엔 아직 이른 탓일까? 이미 기존 작품에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예술성은 인정받았다고 하여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가 대중적인 감독인가에 대해 모두들 의문부호를 들이밀었던게 사실일게다. 그런데 제작사를 비롯하여 감독 스스로 자기최면에 빠졌던 것은 아닐런지........의문스럽다.

예전에 거짓말 개봉 전에 무삭제를 구해서 보았었다. 두 번 보고 싶지 않아 그냥 돌려줬는데.......(크크...후회스럽다) 결국 비디오 빌려보고 지금은 Divx로 구해뒀다.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원판이 감독의 느낌이 더 와 닿았다. 소설과 다르게 얘기하고자 한 부분이 명확했던 것 같다. 편집의 묘미와는 다른 부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뒤로 가면서 의례적인 행위에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결말로 치닿는 부분이 또 하나의 행위를 남겨두는 듯 했었다. 두 번 보고 싶지 않았는데 3번이나 봤으면 많이 본게 아닌가? 그런데 감독의 생각처럼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나쁜 영화"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장선우 감독의 부활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배우들이 흔히 그렇듯이 또 하나의 "거짓말"로 부활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일한 대중적 코드에 맞추어 부활하고 '바리공주' 찍으러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봤다.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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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공부 진짜 하기 싫다.

얼마 전에 신문에 중고등학생들이 일본 헨타이물을 번역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일본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헨타이가 뭐냐면........일본 포르노 만화라고 얘기하면 좀 순화된 말이고 가학성 변태적 성행위가 주 내용인 만화라는게 정확한 표현일 듯 싶다. 그런데 이걸 중고등학생들이 보고 있단 얘기다. 그리고 그 유명한 딴지일보의 사업내용 중에도 섹시 잉글리쉬라는게 있다. 코소리 나는 여자가 나와서 에로비디오를 내용으로 영어공부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작년 연말에 동생 남자친구가 우리나라로 온 적이 있었다. 영국국적의 홍콩친구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영어를 잘 못한다. 동생이 일본에서 만난 친구인데 광동어와 일본어는 무척 잘 하는 편이다. 물론 어설픈 한국어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기에 나와의 의사소통은 영어로 해야 했다. 서로 죽을 맛이었다. 결국 발짓, 손짓 하다가 동생이 중간에 일본어로 통역하곤 했다. 나중에 이 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MSN으로 몇 번 다시 영어로 할 기회가 생겼다. 여전했다. 좀 차이가 있었다면 넷미팅을 시도 하려던 그 친구에게 컴퓨터 용어로 짧은 대화를 했는데 그건 오히려 쉬웠다. 컴퓨터 용어가 전부 영어인지라 쉽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출근 길에 키가 2미터쯤 되는 외국인이 버스에 올라탔던 적이 있다.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내 앞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가 '그 총각 키 크네. 천장에 닿겠네' 하시더니 한참을 그 외국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좀 민망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웨어 아유 프롬'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 외국인은 '도이치'라고 얘기했는데 아주머니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던지 계속 물어보셨다. 그러자 외국인이 한국어로 '독일'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다시 아주머니가 '웨어 아유 고잉'이라고 얘기를 건넸다. 외국인은 '서울역'이라고 한국어로 얘기를 했고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떡였다. 아는게 바닥 나신게다. 한참 뒤 서울역이 가까워져 오자. 맨 뒤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쫄래쫄래 앞쪽으로 오시며 '그 외국인 서울역에 내려야 하는데' 라며 중얼거리지 않는가. 다행히 외국인이 서울역에서 내리는 걸 보신 후에야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으셨다.

요즘은 지하철을 타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4호선인가에 영어로 중얼중얼 거리는 유명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외국인을 만나면 물 만난 고기마냥 대화를 나누셨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무나 보고 영어로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다음 칸으로 옮겨가시는 분이셨다.

외국어를 배우는게 아니라 얘기 할려면 그냥 그 나라로 무작정 가서 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그냥 무작정 가서 그 곳에서 외국어 배웠다는 사람들도 제법 보았다. 우리 동생도 한국에서 JPT같은 걸 치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일본 2년 갔다 오니 정말 잘하더만....... 외국어는 공부가 아니라 생활이며 문화라고 생각해야 하는게 옳지 않나 싶다.

영어 공부 진짜 하기 싫다.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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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브라이드 - '줄행랑 신부'

케이블 티비의 등장, 영화 제작비의 상승 등의 이유로 최근 텔레비젼에서 하는 영화의 질적 수준이 많이 저하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KBS <명화극장>의 경우 예전에는 명화 다운 명화를 방송했지만, 요즘은 무슨 영화인지 모를 영화를 방송한다.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뿔테 안경 끼고 주말이 다가오면 '이 영화 놓치시면 후회하실겁니다.' 라고 마지막 멘트를 날리며 일요일 밤 <명화극장> 시간을 기다리게 했던 그 아저씨.......故 정영일 영화평론가. 그 시절 명화가 그리울 따름이다.

주말에 보았던 영화를 추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운 여인'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 그냥 그런 영화일 뿐이다. 사실 줄리아 로버츠나 리처드 기어, 두 사람은 결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키만 멀대같이 큰 별 볼 일 없는 여배우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괜찮은 이미지로 다가온 건 '에린 브린코비치'라는 영화에서 부터 였다. 헐리우드 여배우 중 가장 대접받고 있는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런어웨이 브라이드'의 적절한 우리식 제목은 영화 대사에도 나온 것이지만 "줄행랑 신부"가 적당한 듯 하다. 어감이 좀 가볍긴 하지만 영화 전체를 설명하기에 딱이지 싶다.

영화 속의 주인공 '매기'는 이미 3번의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남겨두고 줄행랑을 놓은 경력이 있다. 그래서 작은 시골마을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도 아름다운 그녀를 보는 이들은 어김없이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녀의 전력을 잊어버린 채........어느 날 일간지 칼럼리스트인 '아이크'가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칼럼에 실으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남자들은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 무척 망설인다. 그러나 막상 청혼을 한 이후에는 무사태평이다. "드디어 나도 결혼한다~" 라는 생각으로 전후의 모든 일은 잊어버린다. 그러나 여자는 결혼을 승락 이후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해서 여러 번 갓 결혼한 여자분들에게 위 내용을 물었다. 공통적인 답변은 "남자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 든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도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역시 감독조차 남자였던 탓인지 결국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상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결혼식장의 분위기 부터 식장에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남자에게 결혼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고, 여자에게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깨몽의 한순간이기 때문일까?

여자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는 꿈을 갖고 산다. 때마침 그런 사람이 나타나 준다면 원없이 기쁘겠지만 그런게 있을리 만무하다. 대개 비스무레한 당나귀(흰색 당나귀가 있으려나?) 탄 왕자나 백마 탄 사기꾼인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 눈에 콩깍지 하나를 살포시 얹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자는 얘기에 갑자기 그 콩깍지가 덜썩거리며 떨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붙어있으면 괜찮은데 그게......그것도 두 개 모두 떨어져 버리면 '줄행랑 신부'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게다.

유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줄행랑 신부'는 몰상식한 여성의 태도이며,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당당한 자신의 의사표시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하는 남자들이야 비참하겠지만, 실제 영화의 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사랑한 것이 자신이 아니였다는 것은 충격이기도 했다. 실은 여자도 누굴 사랑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이 남자를 만날 때 계란 반숙을, 저 남자와는 수란을,....... 자신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주변인을 의식한 결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사회적 결혼에 안식처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당신은 '줄행랑 신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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