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브라이드 - '줄행랑 신부'
케이블 티비의 등장, 영화 제작비의 상승 등의 이유로 최근 텔레비젼에서 하는 영화의 질적 수준이 많이 저하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KBS <명화극장>의 경우 예전에는 명화 다운 명화를 방송했지만, 요즘은 무슨 영화인지 모를 영화를 방송한다.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뿔테 안경 끼고 주말이 다가오면 '이 영화 놓치시면 후회하실겁니다.' 라고 마지막 멘트를 날리며 일요일 밤 <명화극장> 시간을 기다리게 했던 그 아저씨.......故 정영일 영화평론가. 그 시절 명화가 그리울 따름이다.
주말에 보았던 영화를 추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운 여인'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 그냥 그런 영화일 뿐이다. 사실 줄리아 로버츠나 리처드 기어, 두 사람은 결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키만 멀대같이 큰 별 볼 일 없는 여배우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괜찮은 이미지로 다가온 건 '에린 브린코비치'라는 영화에서 부터 였다. 헐리우드 여배우 중 가장 대접받고 있는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런어웨이 브라이드'의 적절한 우리식 제목은 영화 대사에도 나온 것이지만 "줄행랑 신부"가 적당한 듯 하다. 어감이 좀 가볍긴 하지만 영화 전체를 설명하기에 딱이지 싶다.
영화 속의 주인공 '매기'는 이미 3번의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남겨두고 줄행랑을 놓은 경력이 있다. 그래서 작은 시골마을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도 아름다운 그녀를 보는 이들은 어김없이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녀의 전력을 잊어버린 채........어느 날 일간지 칼럼리스트인 '아이크'가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칼럼에 실으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남자들은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 무척 망설인다. 그러나 막상 청혼을 한 이후에는 무사태평이다. "드디어 나도 결혼한다~" 라는 생각으로 전후의 모든 일은 잊어버린다. 그러나 여자는 결혼을 승락 이후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해서 여러 번 갓 결혼한 여자분들에게 위 내용을 물었다. 공통적인 답변은 "남자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 든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도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역시 감독조차 남자였던 탓인지 결국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상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결혼식장의 분위기 부터 식장에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남자에게 결혼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고, 여자에게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깨몽의 한순간이기 때문일까?
여자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는 꿈을 갖고 산다. 때마침 그런 사람이 나타나 준다면 원없이 기쁘겠지만 그런게 있을리 만무하다. 대개 비스무레한 당나귀(흰색 당나귀가 있으려나?) 탄 왕자나 백마 탄 사기꾼인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 눈에 콩깍지 하나를 살포시 얹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자는 얘기에 갑자기 그 콩깍지가 덜썩거리며 떨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붙어있으면 괜찮은데 그게......그것도 두 개 모두 떨어져 버리면 '줄행랑 신부'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게다.
유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줄행랑 신부'는 몰상식한 여성의 태도이며,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당당한 자신의 의사표시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하는 남자들이야 비참하겠지만, 실제 영화의 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사랑한 것이 자신이 아니였다는 것은 충격이기도 했다. 실은 여자도 누굴 사랑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이 남자를 만날 때 계란 반숙을, 저 남자와는 수란을,....... 자신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주변인을 의식한 결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사회적 결혼에 안식처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당신은 '줄행랑 신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