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직자가 될 수 있다.
학벌도 좋고 경력도 15년 이상 되는 사람이 어느날 실직자가 되고 2년이 넘게 재취업을 못하는 현실, 이게 어디 별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경력이 10년 이상이 되고 보면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는게 쉽지 않다. 싼 임금으로 여기저기서 찾는, 수요가 넘치는1~3년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직장을 잃게 되면 스스로 사업을 하지 않는 한은 재기하기 힘들다. 한데 사업은 아무나 하나? 섣불리 했다가는 그나마 모아둔 돈도 날리기 쉽고 자금을 마련하기엔 제약이 많다.(아이들의 학비가 바로 그것!)
게다가 한 직종에서 그렇게 오래 일을 하고 나면 다른 직종으로 옮기기도 힘들다. 임시직으로 레스토랑 서빙이나 아니면 파트타임 판매직을 구하는게 더 빠른데 그나마도 나이가 많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쉽다. 집을 사느라 받았던 대출금은 아직도 상환 기간이 10년이나 남았고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집안일만 10년 넘게 해온 아내가 어떻게는 돈을 벌려고 애를 쓰지만 극장 매표소 아르바이트, 병원 수납창구 아르바이트를 몇시간 할 수 있는게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실직 상태의 가장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살인을 한다고 해도, 게다가 그 살인이 자신의 경쟁자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입에 거품물고 놀랄 일이 아니라는게 슬프게 느껴지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살인할 수 있다.
이 슬픈 블랙 코미디는 <뻔뻔한 딕 앤 제인>과 태생은 같아 보이나 성장한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이 영화는 내가 올해들어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라 할만큼 대단하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70세를 넘겨 만든 영화라서인지 통찰과 이해가 빚어낸 이 시대의 슬픈 뒷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정신병자, 난폭한 사람만이 살인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다. 우발적인 사고로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만도 아니다. 평범한 가장이 어떻게 연쇄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인지 그것을 적당한 무게감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더불어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인간들을 변화 시키는지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직자의 분노는 고용주를 향해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쟁자인 똑같은 실직자이며 구직자들에게 표출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심장하다. 이것은 마치 항의 집회를 하며 그 분노를 눈 앞의 전투 경찰에게 모두 다 쏟아 붓는 격이다. 본질은 저 너머에 있는데 눈앞의 전경과 집회 참가자들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죽어간다. 그 잘나빠진 고용주들께서는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저 높고도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불행하게 살거야, 불행하게 살고 싶어 미치겠어. ' 라고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행복의 기준이 각자에게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학습된 결과에 따라 행복의 기준치가 정해진다.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은 철저히 학습된 결과다. 나이에 맞는 경제력 - 어디에서 사는가(강남이냐 강북이냐, 아파트냐 주택이냐, 평형은?), 어떤 차를 몰고 다니냐, 누구와 결혼했느냐,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시키느냐.. 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그것이 아닌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것 조차도 자본주의 사회 아래서 온갖 매스미디어를 통해 길들여지고 학습된 기준에 철저하게 자신을 대입시켜 끊임없이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고 그에 못미치면 좌절하며 그것을 넘어서면 우월감을 느낀다.
도대체 그 '남들'도 결국 모두 '남들'일 뿐인데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게 만드는 세상에 태어난 이상 결코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다. 부모님 친구 자녀가 자신의 경쟁상대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세상.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뚝 혼자 올라서고 나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