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광일기자]
>> 야콥 아르주니 ‘바보들’
소원 있으세요? 로또 1등 당첨요? 단편적 몽상가시군요. 독도까지 깨끗하게 포함시키는 ‘조국 통일’요? 그건 ‘우리의 소원’이잖아요. ‘조국’은 젊은 탈(脫)민족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단어도 아니구요. 얼짱·몸짱(34-24-35)에 170㎝·48㎏, 그리고 조지 클루니 같은 애인과 평당 3000만원한다는 60평짜리 아파트의 주인이 되는 것요?…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 ‘연금술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전경린은 여행에세이집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간절할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그들만큼 간절하지 못한 탓인지 소원 성취가 쉽지 않네요. 이번주 독일작가 야콥 아르주니(Jakob Arjouni)의 소설책 ‘바보들’(Idioten)을 권해드리는 것도 같은 이윱니다. 모두 다섯 연작으로 엮인 이 책에는 인생의 벼랑에 내몰린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앞에 마치 알라딘 램프의 지니처럼, 짜잔, 하고 요정이 나타납니다.
이 책은 절대 동화책은 아닙니다. 주인공들 면면부터 그렇습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막스는 창업 동지인 회사 사장이 달라지기를 원하고, 촉망 받는 영화감독 파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좌파 성향의 음반 가게를 하지만 아들과 화해하고 싶은 라덴 부인, 위대한 소설을 쓰고 싶은 늙은 통속작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도 나옵니다.
먼저 저자는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가 정말 힘들다는 암시를 줍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사실은 ‘50% 성취’는 되는 셈일 테지요. 또 막상 소원이 이루어지고 보면 그 결과가 전혀 엉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 제목처럼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소설 속 막스가 요정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비는 소원이 무엇인가요? 요정은 ‘영생, 금전, 건강, 사랑’ 네 가지는 소원 풀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최다 빈도의 소원이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귀띔해 줍니다. 그 소원을 들어주다 보니 오늘날 TV 토크쇼 프로그램이 넘쳐나게 됐다는 해석도 곁들입니다. 그러면서 막스를 구슬립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 마세요. 위대하고 유일하며 완벽한 소원이란 있을 수 없어요.”(28쪽)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막스가 마침내 내뱉은 소원은 이렇습니다. “바보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게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31쪽) 네, 바로 그날 저녁 막스의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그의 친구이자 회사의 공동대표인 로니가 어리석은 계획들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술집에서 만난 회사 동료 소피가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막스에게 퍼붓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지닌, 기쁨으로 가득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로 했다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아, 진짜 바보는 누구입니까. 막스는 로니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소피는 막스를 멍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사로 뒤덮인 각박한 이 사회에서 바보들의 꼬리를 무는 간절한 소원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게 될런지요? 시인 박형준은 작년에 낸 시집 ‘춤’에서 이렇게 썼더군요. “구도의 길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것들, 그것 앞에 문득 무릎을 꿇고 간절함을 배우고 싶다.”
(김광일기자 [ k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