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자들
샨사 장편소설|이상해 옮김|현대문학|314쪽|9000원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프랑스어로 창작활동 하는 중국 작가 ‘샨사’
스파이 소설 통해 인간관계의 진실게임 추적
1989년 중국 천안문에서 학생 시위대를 이끌었다가 홍콩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한 37세 여성 아야메이는 현재 중국 정부를 위해 비밀 공작을 펼치는 에이전트다. 무술의 고수이기도 한 아야메이는 프랑스 총리의 보좌관인 유부남 마틀로를 유혹해서 애인관계로 만든다. 아야메이·마틀로의 루트를 통해 중국은 극비리에 프랑스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그 대금은 프랑스 정계에 검은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느 날 파리의 룩상부르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아야메이의 아파트에 미국 CIA의 요원인 조나단이 접근한다. 바로 이 대목이 소설의 시작이다.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초대한 조나단이 다시 아야메이를 유혹하면서, 소설 속에 인물 삼각형이 꼭지점을 형성한다.
이 소설에서 세 인물의 삼각 관계는 21세기 지구촌의 강대국인 미·중·불 3국이 벌이는 국제 정치 게임의 축소판이 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미래의 적으로 보지만 현재의 이익을 위해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 프랑스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겉으로 비난하는 척 하면서 뒤로 무기를 판매해 중국을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호랑이로 키운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챙긴다.
샨사는 스파이 소설 형식을 빌려 인간 관계의 진실 게임을 그리려고 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각 개인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지난해 프랑스 추리 소설계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 “사랑이 지나치게 중요한 주제 중 하나지만,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았다. 속임수도 교활했고, 문체의 순도가 대단했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암투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아야메이의 정체는 독자들에게 소설을 지탱하는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그녀의 내면까지 묘사한다. 결국 타인과 타인끼리의 시선만 남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호해진다.
흥미로운 성격의 스파이 조나단은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남자다. 마치 작중 인물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그것과 닮았다. 그는 비밀리에 상대의 아파트로 침입하면서 ‘각 자물쇠는 축소형 미로, 철학자의 두뇌, 여자의 성기’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아야메이가 중국 경제 발전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작가 샨사의 입장을 반영한 듯 하다. ‘상품들로 가득찬 백화점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안마시술소와 이발소에서 매춘을 하는 소녀들의 비참함을 감추고 있어. 오염된 구름들 아래 타워들이 키재기를 하는 땅, 피상적인 쾌락을 찾아 로봇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
작가는 현실 발언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삶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가 새기게 되는 소리, 냄새, 희망의 설렘, 낙담의 한숨들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의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독자들은 마치 비누거품을 닮아 손에 잡히지않는 그런 디테일들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유전하는 이 세계의 유일한 관객”으로 남아 그것들의 순간적인 광채를 포착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