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분단의 그늘 … 사진으로 단편소설을 쓰다  
 
[중앙일보 정재숙] 사진으로 단편소설을 쓴다? 삶을 기록하는 데 사진만한 것이 없다면 단편사진집이 못 나올 까닭이 없다. 전시장 없이 사진전을 연다? 다량 복제와 인쇄가능한 사진이기에 사진집으로 관람객과 바로 만날 수 있다. 미술판의 막둥이로 뒤늦게 대중의 눈길을 받은 사진이 몸 가볍게 뛰는 현장이다.

원로 사진가 한정식(69)씨는 글과 사진을 엮은 '흔적'(눈빛 펴냄) 에 단편사진집이란 낯선 이름을 붙였다. 짧은 글을 곁들인 다섯 편의 사진 연작이 단편소설집 같다. 1970년 서울 광교 부근을 담은 '개발, 철거'부터 30여 년 남쪽 반공 정책의 현장을 담은 '분단의 그늘'까지 모두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대목을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사진 자체는 하나의 흔적이고 사진을 본다는 것은 흔적 들여다보기"라고 말한다. 그 흔적은 얼룩일 수도 있고, 급하게 몰아치던 역사의 발꿈치에서 튕긴 흙탕의 얼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사진은 발효한다는 사실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사진 스스로 발효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웅변한다.


'폭풍의 계절-1980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가 그 한 예다. 79년 11월부터 81년 2월까지 1년 여에 걸쳐 광화문 네거리에 서있던 아치형 선전탑을 같은 자리에서 찍은 연작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 국장'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 '새 연대 새 역사 새 희망' 등 선전탑에 올랐던 문구와 언저리 풍경이 시대를 증언한다. 작가는 "온 나라가 통째로 정치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했다. 사진 몇 점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서울의 봄'을 구성 탄탄한 단편소설 저리 가랄 정도로 묘사한다.


사진작가 여동완(46)씨는 수백 점 사진을 제대로 걸 전시장을 발견하지 못하자 차라리 책을 선택했다. 타클라마칸의 사막, 중국 베이징의 풍광, 한국 서울의 뒷골목이 두툼한 세 권짜리 연작 사진집(가각본 펴냄)으로 나왔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 내린 서울에서 바람부는 사막으로 오갈 때 목젖이 떨리는 감흥이 인다.


최영진씨의 사진집 '야(夜)'(JINDIGITAL.COM 펴냄)는 벽에 걸기보다 내려놓고 찬찬히 볼 때 더 매력 있다. 수묵화나 목판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은 결을 쓸어보며 그림자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종이 너머 다가오는 밤의 침묵이 보는 이를 몽환에 빠지게 한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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