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초대권’ 관객 1142만명… 유료관객 991만명 앞질러
잘나갔던 ‘노트르담 드 파리’도 알고보니 26%가 공짜 손님
“자리 채우려면 어쩔 수 없어” “시장 스스로 축소시켜” 논란도
[조선일보 김성현기자, 박돈규기자]
지난 2월 막 내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대작(大作)이 격돌한 올해 초에 수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록한 성적표도 실상은 초라했다. 전체 관객은 9만6035명. 이 가운데 2만4188명(26%)은 초대권을 갖고 들어온 ‘공짜 손님’이었다. 14만4000여 석을 팔아야 했던 전체 48회 공연 가운데, 돈을 내고 입장한 유료객석 점유율은 50%에 그쳤다. 팔아야 할 좌석 가운데 절반만 판매된 것이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의 재즈 콘서트. 관객 200여명이 초대권을 받고서도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공연의 티켓을 사전에 구입한 관객은 불과 74명. 당초 예상보다 티켓 판매율이 너무 떨어지자 공연 주최측은 초대권을 외부 협찬사와 인권 단체 회원들에게 뿌렸고, 결국 초대권을 좌석과 교환하지 못한 관객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두 사례는 2006년 한국 공연계를 둘러싸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뿌리 깊은 ‘초대권 문화’다.
문화관광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05년 공연예술 실태조사’를 보면, 2004년의 경우 클래식·뮤지컬·연극·국악·대중 가요까지 공연장을 찾은 총 관객 가운데 무료 관객이 1142만명으로, 유료 관객(991만명)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우리 공연계의 급소를 들춰낸 자료였다. 실제 공연 업계에서도 “아무리 인기가 높은 공연이라도 보통 좌석의 20% 안팎은 초대권 관객”이라고 말한다.
초대권이 공연계에 ‘독(毒)’이 되고 있는지, ‘약(藥)’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객석에 손님은 자신뿐이라는 걸 확인한 관객이 배우들에게 “그만 하시고 소주나 한잔 하러 갑시다”라고 권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남아 있는 대학로 연극 동네. 극소수 히트작을 빼면, 극장을 찾은 관객 두 명 중 하나는 ‘초대 관객’이라는 게 정설이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그렇게라도 객석을 채우지 않으면 배우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공연을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포스터 말고는 입소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초대 마케팅’은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대권은 장기적으로 유료 관객을 늘리고 공연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0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문을 연 LG아트센터. 개관 6년 만에 ‘초대권 없는 공연장’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현정 공연기획팀장은 “개관 1~2년까지는 저항이 심했다. 국회의원부터 정부 공무원까지 관행적으로 표를 요청했다”며 “공연장 운영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아 고민 끝에 ‘초대권은 없다’고 선언했는데, 관객의 집중력도 높아지고 다른 극장과의 차별성이 뚜렷해졌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일정 비율을 넘는 초대권에 대해서는 기업 접대비로 간주해 중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공연계의 초대권 논란은 가속화하고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불법 음악 파일에 길들여지면 돈을 내고 음원(音源)을 구입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관객들이 초대권에만 익숙해지면 자칫 유료 관객 부재(不在)와 공연 시장 축소라는 악순환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