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오월…대학로도 꽃핀다
[조선일보 2006-04-20 03:23]    

미리 보는 서울연극제

[조선일보 박돈규기자]

연극 ‘숙희, 돌아오다’를 보고 ‘닭집에 갔었다’. ‘엠뻬르 리베라’와 ‘아름다운 남자’가 ‘줄리엣을 위한 바이올린 소곡’을 연주했다. ‘리어왕’과 ‘지상의 모든 밤들’을 ‘여행’하며 ‘달의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올해 서울연극제(5월 2~21일 아르코예술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 공식참가작 9편의 제목으로 만든 문장들이다. 제목은 드라마를 압축하고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요즘 연극계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극단 성시어터라인의 ‘숙희, 돌아오다’(김성제 작·연출)는 아버지를 찾고 싶어 20년 만에 귀국한 숙희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겐 정신장애자인 스물한 살 딸과 6개월 된 혼혈 아들이 딸려 있다. 극단 오늘의 ‘닭집에 갔었다’(강은경 작·위성신 연출)는 남편을 지하철 사고로 잃은 것도 억울한데 아들마저 살해 용의자로 몰리게 된 닭집 주인 제천댁의 이야기다.

극단 가변의 ‘엠뻬르 리베라’(연출 송형종)는 유명한 스페인 배우 엔리케 리베라의 여동생 엠뻬르에 초점을 맞춘다. 외로움과 질투 같은 감정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삶을 해부하는 번역극. 연희단거리패의 ‘아름다운 남자’(이윤택 작·남미정 연출)는 고려시대의 세 학승(學僧)이 혼돈의 세상을 어떻게 건너갔는지 보여주고, 극단 작예모의 ‘줄리엣을…’은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 등을 만나는 코미디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극단76단은 황우석 사건 등 인간의 오만함을 ‘리어왕’(연출 기국서)으로 비판한다. 염소·노새 같은 가축도 등장시킬 계획이다. 극단 죽죽의 ‘지상의 모든 밤들’(김낙형 작·연출)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업소 아가씨들을 추적한다. 극단 파티는 친구의 장례식장에 간 40대 남자들의 허허롭고 흔들리는 모습을 작품 ‘여행’(윤영선 작·이성열 연출·사진)에 담았다. 극단 풍경의 ‘달의 소리’(김명화 작·박정희 연출)는 음악으로 세상을 견딘 마한(馬韓)의 악사들을 불러내는 시대극이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함께 즐기는 기쁨’. 그러나 18일 밤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는 침통하게 시작됐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평론가 한상철씨가 “연극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관객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극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렇다”고 개탄했기 때문. 90년대까지 수작을 내놓다 침체에 빠졌던 서울연극제가 올해는 긍정적인 예감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르코예술극장 앞에서는 월간 한국연극 30주년을 기념해 책을 열람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운영된다.

(박돈규기자 [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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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연극, 하면 떠오르는 것은 궁핍 이라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