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위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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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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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정음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유쾌한 상상이란 부제가 붙은 <저 마누라를 어쩌지?>(정음). 책을 펼치니 날개 부분에 작가들 이름이 있다. 그 중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가도 보인다.
곽의진, 구혜영, 김이연, 김정례, 김지연, 김지원, 김채원, 김향숙, 노수민, 노순자, 박완서, 서영은, 안혜숙, 오정희, 우선덕, 유안진, 이경자 이렇듯 17명의 작가들이 채 5페이지가 되지 않는 두 편씩의 짧은 단편을 실어 총 34작품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여성작가들이 펼친 유쾌한 콩트 같기도 한데, 콩트라고 해서 가벼운 듯하지만 그 안엔 삶이 있고 눈물과 감동이 있으며 용서가 있고 작은 반란도 있다. 작가들의 힘인지 보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다.
여자에게 나이란 어떤 것일까?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 진다는 말도 있지만 늙으나 젊으나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은 것이 모든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여자의 나이’를 쓴 김지원은 그런 여자의 속성을 여성 작가의 눈으로 살며시 그리고 예쁘게 풀어나갔다.
마흔이 되어서야 문단에 등장해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사소한 일상과 인간관계를 안정된 감각으로 풀어 나가는 작가 박완서는 ‘궁합’과 달나라의 꿈’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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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합’과 달나라의 꿈’을 쓴 박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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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위창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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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생각지도 않던 돈이 갑자기 생기면 무슨 횡재라도 한 기분이 된다. 중견 여류 작가 우선덕의 ‘보물찾기’에서는 그런 돈을 발견한 주인공이 남편이 몰래 비상금을 숨겨 두었을 것이라 생각해 괜스레 부아가 치민다. 또 있을까 해서 이리저리 뒤져 보는데 돈은 정말 하나씩 발견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 많던 주인공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 월급날 당신 은행에 안 가 봤구나. 당신 생일인데 해 줄게 있어야지. 그래서 월급 온라인으로 안 넣고 현금으로 받아와 숨겨 놨는데, 찾으면서 기뻐하라고 말야. 아직 못 찾았으면 이거 큰일이다. 편지함에도 넣어뒀다구! 당신 매일 거기 들여다보잖아.”
전화를 끊고 대문을 향해 달리며 아내는 남편의 그 마음에 눈물이 핑하고 돈다. ‘가난한 남편이여, 당신의 마음이 진짜 보물입니다’는 마지막 구절에 따스함이 가득하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며 유명한 중견 작가 유안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한 그녀는 소비자아동학부에서 발달심리학을 가르쳐 온 아동학 교수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개미와 베짱이’, ‘고쳐 써 본 개미와 베짱이’ 두 편을 실었다.
최근 무당에 관한 소설 <계화>를 발표했고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으로 페미니즘 소설가로도 알려진 이경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저 마누라를 어쩌지?’를 썼다.
작은 애가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환경조사표에 직업란이 있었다. 엄마의 집안 일을 두고 무직이라는 말이 나오자 엄마는 벌컥 화를 낸다. 그녀의 조심스런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직업을 가졌잖아. 시달리는 만큼 돈을 벌고 진급도 하잖아. 퇴직금도 받구. 집에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어. 그렇지만 나는 뭐야?”
“그럼 당신한테 월급 줄까? 그리고 남남으로 지내?”
나는 화가 났다. 마누라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내 말에 승복한 눈치는 아니었다. 무얼 몰라서 참고 있는 것이었다. 저 마누라가 ‘깨달으려고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골치 아픈 시대다!글 말미를 읽고 그 남자의 고민이 눈에 보이는 듯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이경자 페미니즘의 진수를 이 짧은 단편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여성들은 만족하지 않겠지만 주부가 하는 집안 일을 월급으로 따지면 111만원이란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이제 주부도 당당한 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12년 전에 초판을 찍어서인지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주부가 하는 일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도 태반이다. 이제 아이가 가져오는 엄마의 직업란에 당당히 써야한다. 주부라고.
요즘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죽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문학이 쇠퇴하였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기존의 문학이 쇠퇴했을 뿐 문학 자체가 쇠퇴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기존의 작가들이 쇠퇴한 것이지 문학의 광맥이 고갈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문학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만 확고하다면, 문학의 광맥은 얼마든지 우리들에게 그 가능성을 열어 보여줄 것입니다. 개정판이기도 한 <저 마누라를 어쩌지?>. 책의 인세는 서울 YMCA 청소년쉼터에 기부된다고 하니 좋은 일을 한 작가들을 위해서도 흔쾌히 읽어 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