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에 이르는 나이를 신비스럽게 여긴다. 마치 무슨 의무처럼,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혼자서 다짐하고 그런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오직 경제적인 측면만 신경쓰는 것 같아서. 모든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인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에 많이 몰두하는 편이다. 사실 이상한건 아니다. 원래 애늙은이였으니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 자체보다는 추구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향해서 가고 있는 방향. 반드시 그걸 이룬다, 성취한다는 확신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인은 자신 안에 이러한 추구가 회상이란 형태로 많이 쌓여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래가 그대로 쌓여가는 경우도 있다. 왜냐면 추구는 미래인데 회상은 과거이므로 그 전환과정에서 환경과 잘 반응하지 못하면 불안함이 쌓이게 된다. 언어표현에 따라서는, 본질적인 외로움이 될 수도 있고 체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이든 체념이든 자신 안에 쌓여 있는 회상들은 그것만으로도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낼 것 같다. 그 세계가 또 미래도 만들어 낸다. 자기 안에 불안정한 무언가가 너무 많을 때, 그것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내게서 나와 스스로 또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듯한 기분....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가? 그것이 미래가 되는 거다. 나만이 들어갈 미래. 자신이 겪어갈 미래. 아주 독특하게 행복할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나는 그런 생각만으로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행복사전에는 들어 있지 않은 종류의 행복이다.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