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정리를 하다보니 낡은 시집 한권이 눈에 띈다.

이게 뭐지?

아, 지난 번 사무실 이사때 챙겨둔 시집.

아마도 예전 편집장님이 남겨두고 간 책 중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골라내다 챙겨놓은 것인듯.

허수경의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의 1988년 초판본이다.

아, 이 낡은 시집을 뒤적이며.. 누런 종이를 손으로 매만지면서 가슴이 짠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시집의 표지들은 낯설었다.

초판본의 소중함은 역시나..

발문을 보니, 뜻밖에 송기원이 썼다. 허수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평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는 것일까. 단언하건대 허수경의 괴물 같은 힘은 사랑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나는 어린 나이의 그녀가 어떻게 하여 그처럼 크고 넉넉한 사랑을 획득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그렇게 크고 넉넉한 사랑을 획득하기 위한 고통과 몸부림도 알지 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크고 넉넉한 사랑은 그만큼 크고 깊은 고통과 몸부림 없이는, 또한 그만큼 크고 깊은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허수경은 누군가로부터 저주와 은총을 함께 받은 시인이다. 잔인한 일이지만 나는 이 어린 시인의 앞날에 누군가와 더불어 저주와 은총을 함께 보낸다.'

88년에 어린 시인이었던 허수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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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2-0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저 말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곤 했던, 내 어린 날들.

이리스 2006-02-0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무님.. 그러셨군요... ^^
저도 편지 쓰는것을 좋아해서 곧잘 쓰곤 했었는데, 요즘엔 휴대폰 통화, 아니면 문자, 메신저. 이런 즉흥적인 것들 뿐이네요. 편지, 다시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