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어떤 희곡의 주인공은 자신이 깔고 자는 매트리스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둔다. 그리고 5백 원짜리 동전이 생길 때마다 구멍 속에 넣어 그 안을 채워나간다. 드디어 동전 하나도 더 우겨넣을 수 없게 된 날, 그는 돈 보따리를 들고 외환은행 본점으로 간다.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나라의 화폐를 가능한 적은 액면으로 바꾼다. 이제 그는 아무런 소지품도 없이 오직 화폐와 여권만을 들고 공항으로 향한다. 가방에서 임의로 꺼낸 첫 번째 화폐가 통용되는 나라가 그의 첫 기착지. 그리고 그 나라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만 그곳에 머무른 뒤, 또 다른 화폐의 나라로 옮겨간다. 그에게는 새로운 돈이야말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여행을 아리는 가장 분명한 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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