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입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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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생 / 천양희

부판이라는 벌레가 있다는데 이 벌레는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무엇이든 등에 지려고 한다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짐을 내려주면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짐을 진다는데 짐지고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평생 짐만 지고 올라간다는데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는데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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