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절판


거짓말 한 점 안 보태고, 내가 쇠이유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순전히 <백 년 동안의 고독> 때문이었다. 나에게 그 책을 빌려준 건 프뤼니플레트였다. 아이가 사탕을 아껴 먹듯, 브르타뉴 지방에서 보낸 일주일간의 바캉스 내내 두고두고 읽었다. 나는 모래가 박혀 오톨도톨해지고 소금기가 배인, 그리고 금방 해수욕을 하고 나온 내 머리칼에서 떨어진 바닷물 때문에 들떠 일어나 그 책을 차마 돌려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하나뿐인 자신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나에게 양보하고 내가 사준 새 책을 받아들였다.

나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내가 갖고 있던 돈이 몽땅 거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봉급은 얼마 안되지만 직원에게 책값을 사십 퍼센트나(다른 출판사는 삼십 퍼센트다) 할인해주는 쇠이유 출판사에서 급사 겸 타자수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나는 봉급도 받고 책값도 아끼고 이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 -50-51쪽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나는 새 책보다는 샀던 책을 더 많이 산다. 나의 저인 나간 행동에 서점 주인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 그들도 나와 엇비슷하다. 동시에 또는 차례로, 투덜거리고, 쾌활하고, 까다롭고, 친절하고, 무디고, 광신적이고, 폭넓고, 한가하고, 바쁘다. 따뜻하든, 차갑든, 나는 그들의 기질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적응해나가면 된다. 그들 역시 그렇겠지.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책이니까. -58쪽

잠시 후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떠 다시 보았다. 방은 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마루가 무너져 책꽂이가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재난을 앞당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뒷걸음질쳐 그 방에서 나왔다. 결국 우리는 책들을 한 권씩 들어내고 양탄자를 뜯어낸 다음, 마루 오리목을 더 튼튼한 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장장 2주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책꽂이를 다시 들여놓을 수 있었다. 프랑수아는 그 부분에는 부담을 덜 주기 위해 새로 산 지그재그 형 책꽂이를 놓았다. 지금 그의 서제는 암흑으로 둘러싸인 미로로 변했다. -100쪽

열정적인 책 읽기는 나름대로 위험도 있고 일상생활에 장애를 주기도 한다. 그것은 귀를 약간 멀게 만든다. ("그거 다 읽고 나서 샐러드 좀 사다줄래?" "....."). 끓기 시작한 주전자의 분노에 찬 날카로운 외침만이 독서광을 선택적 청각 장애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당근이야 타든 말든 그는 아무 냄새도 못 맡는다.(일시적 후각상실증).

독서는 잠을 못 자게 만든다. 독서광은 읽고 있던 책을 덮기 보다는 '잠의 열차'(두 시간 마다 지나가는)를 고의적으로 놓치고 만다. 배우자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변기다 비데 뚜껑에 앉아(개인적으로는 욕실에 안락의자를 갖다 놓았다) 시간을 잊고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날아드느라 밤을 홀딱 샌다. 그는 언제나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책을 읽느라 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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