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 말해줘를 보고나서, 불새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사실 사랑한다 말해줘도 거의 빼놓지 않고 본 건 아니었고 60% 정도 본 것에 불과하지만.. 불새도 앞부분은 거의 놓치고 4부부터 본것이지만... 하여간 불새는 앞으로 웬만하면 빼놓지 않고 보고싶어졌다.
난 이서진이란 배우는 별로지만(팬들에겐 죄송), 그 드라마 주제가 맘에 들었고(사랑에는 타이밍이 있다는) 나머지 배우들은 좋은 편이라 자연스레 그 시간이면 티비 앞에 가 앉게 된다. (에릭은 연기는 좀 그렇긴 해도 기대 이상으로 화면에서 멋지게 나오니 용서!)
사랑한다 말해줘의 마지막회를 보고 나서 꺽꺽 울었던 나를 불새는 또 다른 이유로 울리려고 한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사랑에는 타이밍이 있다는 그 주제를 드라마 안에서 풀어나가겠다고 되어 있었다. 아마도 가끔씩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 그 때 그 사람과 함께라면 어떨까. 꼭 그 때 사랑하지 않아서 아니면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때는 그게 안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할 것이다.
스물에 할 수 있는 것과 서른에 할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나간 인연을 불새에서처럼 다시 돌리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인생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뛸 수 있는 경마와는 다른 것이니까.
난 연애지상주의자.. 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둘이 있고 그들은 다 남자다. 사랑이면 안되는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부럽고 때로는 싫다.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무서운 곳인데 생존이 커다란 짐인 사람에게는 사랑은 사치일텐데 말이다.
사랑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어제 본 영화 (전주영화제 상영작) <타나토스와 에로스>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의 끔찍한 일들을 경험한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사랑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생존을 생각했노라고 이야기한다.
한 때 나도 연애지상주의자였다. 열 다섯 살 부터 스물, 그리고 스물 둘 까지도.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사랑을 보내면서 세상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댓가로 지금까지도 지독한 죄책감에, 사실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다. 모든 일에 댓가가 따르는 법이고 그 편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불새..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