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라는 숫자를 한 참 쳐다본다. 그렇다 이제 30 인 것이다. 29도 아니고 31도 아닌 딱 30. 어머니는 종종 내가 12월 21일 생인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신다. 조금 더 있다가 태어났으면 한 살 더 어렸을 텐데 아깝다고 말씀하신다. 조금 늦게 출생신고를 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시지도 못한 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그런 말을 자주 들었지만 아무려나 법적으로 나는 30 인 것이다.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할 때, 무엇에든 분명한 이유, 명분이 없을 때이며 휘청거리는 내 자신을 느낄 때가 가장 극명하게 불안정하다. 심각하게도 나는 그런 상태를 꽤 오래 지속해 왔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임시방편으로 무너져가는 집 담벼락에 각목 하나씩 그 때 그 때 받쳐두는 식으로 버텨왔다. 혼자 조용히 집중해서 무언가에 빠져보지 못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아니 이제는 그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유용하게 쓸 수 없어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고 생각이란 살다보면 바뀌게 마련이다. 전에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도 어느 순간 간절히 열망하게 되기도 하고, 전에는 하찮게 여겼던 일들이 인생에서 꽤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변화에 있어서 그 중심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그 때 마다 휘청거리지 않고 자신의 무게 중심을 두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나도 컸다. 여기와 저기를 함께 딛고 있으면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었고 한 발은 여기에 두었다가 다른 한 발은 저기에 두었다가 껑충거리며 허덕이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충격과 상처는 오래 갔다. 일어서기 위한 노력도 꽤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 까지 왔다는 점이다. 그 모든 과정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데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상을 위한 허덕임으로 타는 갈증을 간신히 맹물로 입술만 적시며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나의 소설도 쓰고 싶고 영화도 만들고 싶으며 사진도 잘 찍고 싶지 않은가. 여행도 많이 다니며 그 풍경과 감상을 담아 펴내고 싶지 않던가. 공부도 폭넓게 두루두루 하여 학문에 대한 갈증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발에 꽁꽁 묶인 저 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매단채로 나는 극기 훈련을 하듯이 해변가를 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 돌들이 언제 나에게서 떨어져나갈지는 오직 신만이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따금 나는 그 돌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돌들이 떨어져 나가면 견디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모든 돌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내 20은 찬란하게 빛났으나 긴 그림자를 드리웠었고 23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던 시기였으며 24에서 26은 몸서리쳐지게 아팠고 27에서 29는 살기 위해 힘겹게 싸우고 또 싸우던 피투성이 전쟁터였다. 그리고 30이 되어, 이제 막 상처를 붕대로 동여매고 다시 일어섰다. 돌아보니 참 많은 것을 잃었으며 또 그 반 정도를 얻었던 것 같다. 잃은 것들, 다시는 못 가질 것들, 또 다시 못 올 것 들이 망령처럼 내 주위를 떠돌다가 어느 한 순간 큰 바람을 일으켜 나를 넘어뜨리지만 그래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난다.

 

밝은 색의 옷을 고르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2년째다. 그 전의 나는 온통 검은색, 회색, 기껏해야 갈색의 옷들만을 골랐다. 밝은 색들은 너무나 어색했고 낯설었으며 손이 가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만 어색할 따름이다. 낯간지러웠던 핑크와 꽃무늬를 제법 익숙하게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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