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던 방식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변화를 꾀하려면 계기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삶의 방향성을 틀어도 괜찮을 만한 근거여야 한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갈 때가 된거라는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 처럼 두려워질만큼 나는 굉장히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 그 근거는 상실이다.  

상실을 자각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윈드서핑을 하던 사람이 사고로 배의 스크류에 한 팔 전체가  잘려나가게 되었을 때 자신의 팔이 잘렸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주변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팔이 잘리는 엄청난 고통을 자각하지 못한 것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고통이라서였을지도 모른다. 어깨 아래 달려 있어야 할 팔이 눈 앞 몇미터에서 붉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저것이 내 팔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그 상황의 심각성과 고통의 깊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만화를 보다가 문득 팔이 잘린 그 윈드 서퍼가 생각났다. 내게서 잘려나간 소중한 것이 마치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것처럼 지독하게 아프고 그 상실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어지면서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고통이 극대화 되어 온몸을 뒤흔들면서 동시에 치유가 시작되고 있다. 

욕망에 지배 당하지 않고, 욕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지점에 올라서고 보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한 희열을 맛보게 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끌려다닌 삶을 자유로운 삶과 치환해 놓고 스스로를 방기하는 어리석음에 조의를.  

 

이제, 가벼워지는 것만 남았다.  

가볍고도 가벼운 존재가 되어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수 있고 

그 언제라도 가뿐히 떠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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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반에 들으셨으니 이제 남은 건 공중부양 뿐입니다.

이리스 2009-02-28 15:37   좋아요 0 | URL
아직 번뇌가 너무 많아서 공중부양이 안되고 있;;;

Mephistopheles 2009-02-28 17:0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헬륨을 들이키진 마십시요..어용입니다 그건.

이리스 2009-03-01 20:29   좋아요 0 | URL
요상스런 목소리로 메피님 귓가에 꽥꽥거리진 않을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