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생을 바꾸는 건 한번의 행동…여행작가 유성용


기사입력 2009-01-31 11:00 기사원문보기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기차는 서울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역 광장 곳곳에는 때묻은 잔설이 배설물처럼 쌓여있었다. 숱하게 찾았던 서울이지만 바람도 풍경도 유달리 낯설다. 지구상 외딴 도시에 남겨진 이방인의 느낌. 광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노래하는 한 '지하철 예술가수'의 목소리만큼이나 낯설다. 일상적인 인터뷰 출장이 '여행'이 돼버린 지난 16일 오후, 서울 홍대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여행작가 유성용(38)을 만났다. 연봉 400만원의 10년차 백수가 그의 '직업'. 평소 너무 한가하다는 그는 이날 하루에만 5개의 약속이 잡혀있다고 했다. 인생관과 삶의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냉큼 머리 속에서 풀리지 않았다. "결심과 의도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그의 말. 기자도 고작 '마음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식의 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은 사람'일 뿐인가 싶었다.

◆끝내 꿈꾸지 않고 살기 위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지리산으로 갔는데 귀농이었나요?

"아니었어요. 젊을 때는 관념적이잖아요. 당시 저는 '끝내 꿈꾸지 않고, 하나도 희망하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지겹고 밋밋한 99%의 일상 속에서 아무 꿈도 없이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보겠다'는 마음이었죠. 어떤 꿈이나 희망, 자꾸 무언가를 지향하고 다음 단계로 가는 삶의 방식들을 구태의연하게 느꼈거든요. 1999년 지리산 남쪽 자락으로 터전을 옮겼어요. 교사를 그만두고 바로 내려가진 않았고 북한산 자락에서 살았는데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도시 생활에서 제가 누릴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와 첫 아이와 함께 지리산에 갔고 4년 정도 머물다 서울로 다시 왔어요.”

-시골에서 밋밋한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 지루했을 법 한데 뭘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소소한 일들을 하면서 보냈죠. 똥을 치우기도 하고 밭 매고 땔감 구하고, 매일 산책하고. 특별한 성과도 없고 GNP에 해당되는 일도 아녜요. 전문성에 매달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도록 밖에서 일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세탁·청소·빨래·요리 같은 한 사람 몫의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거의 돌보지 못해요. 저는 그런 일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서울에는 어떻게 돌아온 겁니까?

"어떤 관계 속에서 큰 상처를 받고 강원도 깊은 산골로 쌀 한가마니와 김치 한 통을 들고 들어갔어요. 무릎까지 쌓이는 눈에 지붕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 매일 밥하고 김치만 먹고 살았어요. 거의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수많은 상념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파서 그냥 걸었어요. 걷다보니 동해를 거쳐 통일전망대까지 3박4일을 걸은 거예요.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더니 마침 서울행 버스가 첫 차더군요. 너무 힘들었고 쉬고 싶어서 그냥 버스에 올라탔고, 눈을 떠보니 서울이었어요. 눈이 펑펑 오는 중에 배가 너무 고파 어묵을 사먹었는데 옷에 간장 국물이 뚝 떨어지더라고. 그 순간 우연히 친구의 연락이 왔고, 일년쯤 서울 친구 부부 집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여행을 떠났죠"

◆여행은 나의 바깥을 산책하는 일

-1년 6개월 동안 떠돌았는데 어느 곳을 여행했습니까?

"처음 갔던 곳이 태국이었죠. 동남아를 돌다가 중국 운남성에서 티베트를 거쳐 네팔과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어요. 일년반동안 진행된 여행은 나보다 더 거대한 무엇이 되어서 나를 볼품없는 물건처럼 막 굴리고 다녔어요. 일년이 지나니까 마치 나의 바깥으로 나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상념도 없이 그냥 타박타박 걷고 있더라고요. 여행이 끝난 계기도 너무 코믹해요. 중국 신장 자치구 우루무치 지역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얼음호수와 사막, 설산을 배경으로 전봇대가 박혀 있는 그림이 있는 거대한 간판이 보이는 거예요. 우연히 동행하게 된 일행이 '저기에 다시 가고 싶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별로 안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곧장 귀국을 했죠. 여행이 문득 시작된 것처럼 문득 끝났어요."

-여행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매달 월간지에 기고를 하고 원고료 19만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가져간 돈 중에서 250만원 정도를 쓴 것 같아요. 돈을 아끼면서 다니지 않았아요. 물건을 파는 곳이 거의 없으니 쓸 곳이 없었죠. 또 어떤 여행자 식당에 가면 김치 담그는 법도 가르쳐 드리고 내 돈으로 페인트도 좀 사서 칠하고, 어떤 아침식사를 여행자들이 좋아하는지도 가르쳐주고 여행자 식당을 꾸며 주며 한두달씩 머물곤 했죠. 남들이 다 가는 곳은 저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고작 여행 상품을 소비하는 대상일 뿐 사람으로 대우를 못받는거죠. 그래서 조금 덜 아름다워도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좋더군요."

-여행 후 가장 뇌리에 남은 것은 뭐였습니까?

"우리가 너무 당연시하는 인간의 품성이 당연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행복, 꿈, 희망, 사랑 같은 것들이 각박한 세상의 반작용으로 너무 과대포장돼 있고 귀신처럼 도시를 떠돌고 다니는 것 같아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꿈이나 희망 등에 대한 강박이 별로 없었어요. 멕시코에서 어떤 원주민 할아버지께 '당신 꿈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니 '꿈이란 게 뭐냐'고 반문을 해요. 꿈에 대한 강박없이 그냥 일상을 사는 거예요. 거대한 꿈이나 성과주의로 자신을 몰아치지 않고 살아가는 거죠."

-자신에게 여행이란 의미입니까?

"바깥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바깥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얼핏 나를 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바로 타자성이잖아요. 나에 대한 관심만 가지면 거울방에 갇혀 자기만 보는 거예요. 하지만 바깥에 집중할때 그 때 얼핏 내가 보이는 거고, 참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을 접고 바깥을 충실하고 극진하게 임할때 그때 참된 나의 기미라도 볼 수 있는게 아닌 가 싶어요. 답이 자기 안에 없으면 밖에서 구해야될텐데 왜 끊임없이 자문자답만 하는 걸까요."


◆나는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여행생활자' 혹은 '생활여행자'란 어떤 의미입니까?

"여행 중에 자신이 떠나온 생활 자리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몽중몽'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생활자'라 하면 여행을 생활처럼 많이 하는 인간으로 해석하는데요, 저는 여행 정보가 많거나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생활이라는 개념을 여행과 엮어갔다는 게 유일한 의미죠. 사람들은 여행을 사회 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 정도로 보는데,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어요. 동네 바깥을 산책하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죠."

-왜 하필 다방이었어요? (그는 지난해 8개월간 전국의 다방을 유람다니며 '스쿠터 다방기행'을 한 일간지에 연재했다.)

"다방은 사라진 것들을 찾아가는 이정표 같은 곳이었죠. 스쿠터를 타고 여행을 떠났는데 다방 간판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들어갈 곳도 생기고, 아무 목적도 방향도 없는 인생에서 다방을 관심있게 쳐다보게 되고. 다방 아가씨들은 의지나 결심을 오래 지속하지도 않죠. 가령 내일부터 일 안하고 싶으면 문자메시지로 '사장님 저 내일부터 안 나가요' 하고 끝이더라고요. 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거야. 그들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노력을 모질게 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특이한 사람일 뿐'이라는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돈벌이를 따로 하지 않고, 24시간을 오로지 혼자 쓰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죠. '피가 자유로운 인간이네' 혹은 '기인이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그저 생활에서 나름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고 이게 진실성을 획득하는 방식일 뿐이죠. 정말 가난하고 온갖 불편들을 겪었어요. 그런데 왜 고작 '자유로운 인간' 따위로 취급을 하죠? 세상 사람들은 고작 '아름다운 패배자'쯤으로 여기는데 패배자가 아니거든. 새는 높이 떠서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것 같지만 막상 새한테는 귀가 찢어질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요. 당신이 보는 새의 아름다움은 당신과 새 사이의 거리만큼인거죠.

◆행복하지 않아도 돼

-홈페이지를 보니 본인을 '맹물(孟物)'이라고 소개했던데 무슨 뜻입니까?

"아는 스님이 지어주신건데요.'물건처럼 살고 싶다'는 제 꿈이죠. 나를 끊임없이 증폭시키고, 피워 올리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단말기처럼 세상에 반응하며 살고 싶다는 거예요. 가령 탁자에 음식을 놓으면 식탁이 되고, 앉으면 의자가 되잖아요. 탁자가 자신은 탁자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나'를 주장하는 꼴이 꼭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일과 밥벌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에요. 결심과 의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나를 진실하게 만들어줄거예요. 삶은 결심과 의도로 되는게 아니에요. 월화수목금토는 남의 골을 열심히 빼먹고, 주말에 때때로 진지해져서 술 마시고 집에서 잠자기 전에 '아, 인생은 뭔가' 잠깐 생각해보는 것 따위로는 인생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난 이렇게 살아야겠어'라는 결심과 마음으로는 수천번 결정해도 안돼요. 마음을 먹는게 아니라 생활양식을 바꿔야 해요."

-본인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진실성을 계속 확보하려고 노력하는게 행복인 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나를 소외시켰다고 하지 않는 것. 스스로 한번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돼'라고 되뇌어 볼 필요가 있어요. 행복이라는 것이 어쩌면 유령 같은 것이어서 우리를 너무 짓누르고 있다면 행복은 이미 관념 덩어리가 된 거예요. 행복하지 않아도 돼. 이건 진짜 행복한 길을 가자는 얘기죠. 죽으려는 자 살고 살려는 자 죽는다는 말 처럼 행복하지 않을 각오쯤은 해야 조금 행복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어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유성용은=1971년 전주 출생. 연세대 교육학과 졸업. 방대한 세상의 공해 속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어가고 싶은 사람. 고교 국어교사 생활을 3년 만에 접고 지리산에서 4년간 지냈다. 세상에 뺨을 맞는 심정으로 여행을 떠나 1년 6개월간 동남아와 티베트, 중국, 네팔, 인도, 파키스탄 등을 떠돌며 자신의 바깥을 유랑했다. 물건처럼 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EBS 세계테마기행' 멕시코 편과 이란 편의 큐레이터로 참여했고, 월간 'Paper'와 '한겨레신문'에 '스쿠터 전국 다방 기행'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 '생활여행자-일상에 안착하지 못하여 생활이 곧 여행이 되어버린 자의 이야기' 등을 냈다. 

 

* 목줄에 질질 끌려 벌건 눈으로 출근한 월요일 오전에 읽은 인터뷰 기사, 이것 참....  

생활양식 바꾸기 프로젝트, 슬슬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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