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현실과는 다르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설마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현실을 닮았으면서도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눈 앞에 펼쳐 놓고
관객들에게 유혹하는 영화라는 세계.
그것 참 매력적입니다.
한데,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삐딱합니다. 영화는 영화다.
그 뒤의 말 줄임표를 가정해 본다면 아마 이런 말들이 있을 테지요.
영화는 영화니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이 현실에서도 그런 것인 양 착각하지 말아라.

영화와 현실이 거침없이 섞여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연기를 하는 건지, 진짜인 건지 헷갈리고
배우의 매니저는 배우 뺨 치고도 남을 명연기를 펼쳐 배우 뒤통수를 치지요.
그런가 하면 영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주인공들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끝까지 철저하게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한 남자는
어색하게나마 이기심을 내려 놓고
자기만을 위해 오래도록 기다려주는 한 여자에게 손을 내밀지요.
사랑을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없이 그저 거칠기만 했던 한 남자는
그 동안의 거친 표현을 접어두고
보드랍고 포근하고 따스한 여자를 보며
다른 사람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피 엔딩을 향해 달리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살려줬던 적에게 다시 끌려갔다가 죽을 만큼 맞고 겨우 풀려난 주인공.
노자 돈 하라고 쥐어준 2만원은 여전히 주머니에 꽂혀 있는데
피범벅이 되어서도 굳이 기를 쓰고 걸어가는 건 영화라서 그렇겠지요.
현실에서였다면 주머니의 2만원을 빼 택시 타고 돌아갔을 겁니다.
현실과 영화를 잠깐 혼동한 대가로 죽음의 위기에 몰리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 주인공은
영화를 다 촬영하자마자 곧바로 현실로 뛰어들어갑니다.
한낮 길 한복판에서 사람을 쳐 죽이면서 말입니다.
그에겐 그것이 현실이면서 동시에 영화입니다.

카메라를 의식하느라 한 템포씩 느리다 보면
주먹에 얻어 맞게 됩니다.
영화처럼 살려면 현실은 엉망이 된다는 것일 테지요.
허세부리며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치욕적으로 맞다가
상대가 손을 치켜 들면 본능적으로 겁먹고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현실입니다.

자, 삶은 계속 됩니다. 살아 있는 한.
영화도 계속되지요. 삶이 계속 되는 한.
수없이 많은 가면을 필요로 하는 이 현실에서
나는 연기를 펼칩니다.
사람들은 묻지요.
이봐, 카메라도 없는데 무슨 영화를 찍어?

나는 답합니다.
내 카메라는 당신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