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두 개의 삶>
각본,감독: 연상호 (2006년작)


<지옥, 두 개의 삶> 1편과 2편 중 2편에 무게를 둔 가볍고 긴 리뷰.


'지옥1'. 어느 날 주인공에게 친절하거나 사려 깊음과는 거리가 먼, 용역회사 직원 같은 태도의 천사가 나타나 죽을 날과 시간을 알려주며 지옥행을 통보해준다. 등급과 함께. 거기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오로지 결과에 대한 통보만 있을 뿐이다. 지옥1에서의 주인공은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다. 당연한 일. 죽을 때를 알게 된 것도 미칠 노릇인데 죽고 나서 갈 곳이 생생한 고통을 영원히 느끼게 될 지옥이라니. 결국 주인공은 천사의 배려 혹은 잔머리 덕분에 지옥행을 면하였으나 도망자의 삶을 살면서 지쳐간다. 불안에 떨며 지옥의 사자들을 피해 다닌다. 지옥의 고통이나 늘 도망 다니는 고통이나 근본은 같지 않을까.




'지옥2'에서의 주인공은 천국에 간다는 판정을 받는다. 역시 설명은 없다. 주인공은 자신이 갈 곳이 지옥이 아닌 천국이라는 것에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현재의 삶에 행복을 느끼고 있기에 왜 이렇게 갑자기, 빨리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억울해 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천국에 가게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또한 천국에서의 삶이 지금의 삶보다 더 행복할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료한 생활의 변화 없는 반복의 연속일거라 여긴다.


우리는 회사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인사고과 조차도 수긍하기 힘들다. 자기와 친한 자기 사람들에게는 높은 점수를 매기고 뻔뻔하게 앉아서 히죽거리는 한심한 상사를 향해 가위를 높이 치켜들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았나? 누구를 평가한다는 것은 평가자가 사람이건 신이건 평가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옥은 지옥이라서, 천국은 천국이라도.  

주인공은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 와중에 엄마는 자살하고 동네 사람들은 집값 떨어질까 걱정이나 하고 있다. 믿었던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군다. 여자친구의 죽음에 오버해서 난리 부르스를 떠는 남자친구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자고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 않던가. 군대 갈 때 울며불며 요란한 여자친구가 제일먼저 고무신 거꾸로 신고, 사귈 때 동네방네 소문내며 질척대는 애정행각을 드러내는 커플치고 오래 가는 경우 별로 못 봤다. 결국 오버하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죽음을 맞이할 무렵 다른 여자와 함께 쾌락의 절정으로 마구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주인공을 보며, 너 아직 안 죽었어? 라고 물어보는 이런노무시키. 어쩌면 이게 정말 현실 아니었을까. 주인공이 느꼈던 행복은 착각이었을까. 이런노무시키랑 지옥행의 두려움을 무릎 쓰고 도망치려고 했던 걸까. 그렇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이에 여주인공의 분노는 극에 달해 가위를 들고 남자친구와 그 옆의 여자를 난도질한다. 나는 여자가 남자를 흉기로 난도질해 죽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나 공포영화나 고어 영화 마니아 아닌데).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영화 <우나기>에서 남편이 아내를 칼로 난도질해서 죽이는 장면이 머릿속에 오버랩 되었다. 그건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로 인식되어 남자들이 행해온 바람피우는 여자에 대한 처단을 너무 신물 나게 봐왔기 때문일 거다. 이로써 주인공은 천국행에서 지옥행으로 진로가 바뀐다.


내가 '지옥2'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1편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옥가기 무서워 도망치는 것은 어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2편의 주인공은 천국행이 보장되었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뒤엎고 지옥에 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망치려고 한다. 살기 위해서.

주인공에게 현재는 행복이다. 그래서 그 행복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것이다. 죽은 뒤 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죽음의 순간을 알게 되는 순간 느끼게 되는 공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죽을 날과 시간을 받아놓는 순간 이미 삶은 지옥으로 변해간다. 이후의 행선지가 천국이라도 이건 예외가 아닌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의 공포,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자기 존재가 소멸될 것을 예감하는 순간의 공포.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증발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에 어떻게든 지난날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사소한 에피소드를 잊지 않으려 애쓰던 주인공의 마지막 날들이 내 속을 울렸다.

 


덧1) 내가 지옥2의 주인공이었더라도 마찬가지로 잡히면 지옥행을 감수하고 도망치려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가 너무 행복해서만은 아니다. 주인공과 비슷하기도 하다. 아직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단순하게 본능에 따라서도 살고 싶다는 욕망은 강렬하다.

 

덧2) 위의 내용과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다른 차원의 곳이다. 그래서 고통이나 반복이라는 표현으로는 그곳을 묘사할 수 없다.

 

덧3) ‘지옥 연상호’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할 감독. 뛰어넘어야 할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인 예술가들의 숙명이라 여기고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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