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 우도의 길은 무엇인가? ‘독만권서와 행만리로’의 길이다. 만 권의 독서를 하고 그 다음에 만 리의 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독서와 여행, 이 두 가지가 인간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만 하고 여행을 안 하면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다. 여행만 많이 하고 독서가 적으면 머리가 적을 수 있다. 머리에 뭐가 좀 들어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 새로운 장면과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통찰이 오고 스파크가 튄다. - P320

① 적선 : 선행으로 복과 운을 저축하다
적선을 해야 팔자가 바뀐다.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실천이 어렵다. 적선이란 다른 사람 가슴에 저금을 해놓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 가슴에도 저금을 해놓는 일이다. 보다 차원 높은 적선은 자기 가슴에는 저금하지 않는 일이다. 적선하고도 다 잊어버리는 게 수준 높은 삶이다. 그러나 수준 높기 어렵다. 적선을 하면 자기 무의식에 기록을 하는 것과 같다. 마치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다.
무의식은 자기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해도 블랙박스에 기록된 비행기록은 남는다. 육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의 무의식에 기록된 정보는 남는다. 정보는 후손들에게 계좌이체 된다. 계좌이체 되는 장면은 꿈으로 나타난다. 태몽으로 나타난다. 죽은 조상들의 영혼은 후손의 뱃속으로 들어가 잉태된다. 잉태되는 순간의 꿈이 태몽이다. 태몽을 보면 그 조상들의 삶 전체가 농축된 데이터가 후손의 뱃속이라는 저장고에 입력되는 장면이다. 나는 태몽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래서 태몽을 무시할 수 없다. 사주팔자가 디지털이라고 한다면 태몽은 아날로그에 해당한다. 전자시계나 시계바늘 시계나 시간 가리키는 것은 동일하다. 태몽과 팔자는 대개 같이 간다.
적선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전쟁이다. 난리가 나면 평소에 쌓인 개인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한국전쟁 때 전남 영광에서는 4만 명 이상이 죽었다. 당시 영광 인구가 12만 정도였다고 하는데, 4만 명 이상이면 웬만한 성인 남자 328 는 거의 죽었다고 봐야 한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2만 명 남짓 죽었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좌익이 우익을 죽인 숫자이다. 우익이 좌익을 죽인 숫자도 현지인들의 중언에 따르면 대개 2만 명 남짓이다. 이 후자의 2만 명은 공식 기록에서 빠져 있다. 얼마나 처절한 기록인가. 작년에 영광에 답사를 갔다가 산비탈의 밭에서 일하는 노인을 만났다. 82세였다.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3년생이었다고 한다.
"어르신 6.25 때 사람 많이 죽었죠? 어르신 동창들도 많이 죽었습니까?"
"많이 죽었지. 나만 빼고 다 죽었어."
"어르신 혼자 살았단 말입니까."
"응.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살아남고 모두 다 죽었어."
어린 학생이 무엇을 안다고 죽였을까. 아이에게 무슨 이념이 있고 사상이 있었겠는가. 그만큼 전쟁은 처절하고 한편으로 인간의 무식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영광 읍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대선당 약방은 살아남았어."
"살아남은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양반은 인심이 좋았어. 당시 약방을 했으니까 돈도 있었지. 집에 머슴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 머슴들에게 잘 했어요. 머습들과 밥도 같이 먹었지. 겸상을 했어. 자기가 밥 먹다가 머슴이 옆에 보이면 ‘이리와 같이 먹게.’ 하면서 겸상을 했어. 담배도 나눠 피웠지. 자기 담배는 궐련 담배였고, 머슴들은 대개 봉초 담배를 피웠는데, 머슴들을 보면 자기 궐련 담배를 피우라고 건네주고, 머습들 피우던 봉초 담배를 자기가 피우곤 했지."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이 내려와 머슴들 8명을 한 조로 만들었다. 8명 뒤에는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한 명이 총을 들고 뒤따랐다. 8명의 머슴들이 읍내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그 집주인에 대하여 품평을 하였다. 평소에 인심 잃었던 사람들은 ‘이 놈 나쁜 놈 329 이다.’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면 즉결처분이었다. 대선장 약방 주인은 평소에도 덕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 참혹한 즉결처분의 상황에서 평소 적선해놓은 대선당 약방 주인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담배 바꿔 피운’ 적선이다.
지난 탄핵과정도 혁명적인 상황이었다. 탄핵정국에서 불려나가 곤욕을 치렀던 고위 인사 A씨. 검찰조사에서도 여러 번 불려 다녔다. 최근에 얼굴 볼 기회가 있어서 관상을 보니 의외로 찰색이 좋다.
"팍 늙은 줄로 알았는데 어찌 이리 혈색이 좋습니까?"
"아내 공덕입니다. 사건이 나 보니까 집사람이 적선해놓은 공덕이 작용한다는 걸 알았어요. 조 선생님 이론대로 팔자 바꾸려면 적선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는 계기였어요."
A씨의 부인은 충청도 양반집안의 딸이었다. 평소에 차분하면서도 겸손한 인상이었다. 명절이 닥치면 아파트 관리인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씩 돌렸다. 더운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해둔 수박을 두세 통씩 1층 관리실에 가져다주곤 하였다. 겨울에는 선물로 들어온 인삼차 박스라도 관리실에 건넸다. 아파트 관리인이 다른 동으로 옮기면 일부러 찾아가서 3~4명 정도의 저녁식사 값을 봉투에 넣어 쥐여주곤 하였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도 마주치면 그냥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주변의 과일가게에서 과일 살 때도 물건 값을 절대 깎지 않았고, 약간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모른 체하고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하였다. ‘남들 보기에 나는 상류층인데 이렇게라도 적선한다고 생각해야지’가 부인의 생각이었다.
탄핵이 터졌다. 기자들이 아파트 입구에 몰려들면 관리인 한 명은 기자들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고, 다른 관리인은 A씨가 평소 모르고 있었던 지하 이동통로를 통해 다른 동으로 몰래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퇴근 시간 무렵에 방송중계차가 아파트 입구에 대기하고 있으면 관리인들이 부인에게 전화해서 ‘상황이 이렇습니 330 다.’하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A씨는 그날 집에 오지 않고 호텔에서 숙박하였다. 검찰조사 받으러 가는 날, 새벽에 부인이 꿈을 꿨다. ‘펄펄 끓는 물에 계란을 삶는데,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꿈이었다. 그래서 걱정이 안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가 후덕하여 남편이 덕을 본 경우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이라고 말하지만,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전생은 조상에 해당한다. 윗대 조상들(특히 증조대나 고조대)이 적선을 많이 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아우라가 있다. 대개 성격도 차분하면서 겸손한 편이고 얼굴색이나 머리 뒤쪽에 밝은 빛이 감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는 일이 잘 풀린다. 뒤로 넘어져도 돈 있는 데로 넘어진다고나 할까. 친가나 외가 쪽에 적선을 많이 해놓은 조상들이 있는 집안의 후손들 팔자를 보면 대개 재복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게 참 신기하다. 팔자에 재복이 있으면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붙는다. 조상들이 뿌려놓은 재물을 갑절로 이자를 쳐서 후손이 받는 것 같다.
적선을 많이 해야 팔자를 바꾸고 집안이 잘된다는 명제는 이론이 아니라 500년 임상실험 결과(?)다. 적선은 재물로도 하고 마음으로도 한다. 평소 성질 안 내는 것도 적선이고, 고통을 들어주는 것도 적선이다. 강한 적선도 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다. 죽일 사람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적선이다.
적선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투자하는 이치와 같다. 주변이 우호적인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덕이 있다는 것은 자기 둘레에 우호적인 사람의 층이 두껍게 쌓여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를 보호하는 ‘외호’가 두텁다는 말이다.

② 스승 : 눈 밝은 스승이 대낮의 어둠을 밝힌다
주유천하라는 말이 있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다. 왜 주유천하를 하는가?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냥 앉아만 있어서는 선생을 만나기 어려우니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나를 지도해줄 선생님이 어디 계시는가 찾으러 다니는 것이 주유천하의 개념이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필요를 느껴야지 선생도 찾는다. 왜 선생을 찾아야 할까? 그냥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선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뭔가 갈급한 게 있는 사람들이다. 갈증이 없는 사람은 선생이 필요 없다. - P327

④ 독서 : 강한 날에는 경전을,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

운이 나쁠 때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어떻게 집에 있느냐, 독서를 하면서 지내야 한다. 운이 안 좋을 때는 독서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되도록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좋다. 만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운이 좋을 때는 길에서도 자기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지만, 운이 좋지 않을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해가 되기 쉽다.
독서는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 무협지라도 읽는 것이 안 읽는 것보다는 낫다. 옛날 사람들은 ‘유일독사, 강일독경’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편안한 날에는 역사책을 읽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종교 경전을 읽는다는 말이다.
편안하면 나태해지기 쉽다. 이때는 역사책을 본다. 역사에는 고비가 기록되어 있다.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고 어떻게 대처했는가가 역사책에 나온다. 해이해진 마음에 긴장과 경각심이 생겨난다. 또 판단 사례를 많이 읽다 보면 실전에 부딪혀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가늠이 된다.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할 때는 경전을 읽는 게 역시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넘치지 않게 한다. 경전은 사서삼경과 같은 책들이다. 기독교로 치면 성경이고, 불교로 치면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과 같은 경전들이다. 도교로 치면 도덕경이나 장자도 된다. 경전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좋다. 자기 소리를 자기가 귀를 통하여 듣는 게 더 효과가 있 338 다. 서라운드 효과이다. 큰 소리로 읽으면 정신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어서 마음속에 쌓여 있는 근심 걱정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긴다. 중세 시대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뎌낸 인물이다. 서기관으로 일하던 마흔셋 나이에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0년 치 봉급의 벌금을 물고 감옥에 갔다.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구석에서 처자식을 데리고 생계를 이어야 했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독서를 해서 팔자를 바꾼 또 하나의 사례는 고 신영복 선생 이야기다. 그는 소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간 옥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었다. 보통 사람이 20년간 감옥살이를 하면 대개 폐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신 선생은 20년간 수많은 독서와 사색을 하면서 거듭나게 된 것 같다. 그의 저서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강의》 등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달관이 행간마다 배어 있다. - P337

⑥ 지명 : 내 삶의 지도는 스스로 읽을 줄 안다
내가 밴텀급인가, 미들급인가, 헤비급인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크게 헛손질을 하지 않는다. 신의 섭리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지분, 지지, 지족이다. 자기 분수를 알고, 그칠 줄을 알고, 만족할 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지명이다. 팔자를 알고 있으면 이 세 가지가 어느 정도는 된다. 인생의 시행착오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는 데서 온다. 과욕을 부리는 것을 ‘적극적’이라고 착각하고, 분수를 지키려는 노력을 ‘소극적’인 태도로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팔자의 핵심은 때를 아는 것이다. 내 인생이 지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눈 내리는 한겨울에 씨 뿌리려고 덤벼드는 사람은 때를 모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자기 팔자를 아는 일이다. 자기가 직접 사주명리학을 공부해서 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게 안 되면 잘 보는 전문가를 만나서 아는 방법이다.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 팔자와 그릇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숙지하고 있는 게 인생의 지혜이다.
관운이 없고 선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돈 좀 있다고 선거판에 나가서 몸 축나고 돈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기 팔자를 모르다 보니 수업료를 많이 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인생은 수업료를 내고 배워야 하지만, 자기 팔자를 안다는 것은 수업료를 좀 덜 내고 알자는 노선이다. - P340

나의 팔자는 글 쓰는 일이다. 쓰기 싫다는 생각도 더러 많았지만 팔자이다 보니 쓰는 것이다.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운전도 못 한다. 자기 팔자를 대강 안다는 것은 ‘오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수를 알아 넘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어디 용하다는데 가서 아들 팔자를 보니까, ‘이 아들은 붓으로 먹고 살겠소.’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40년을 지나 보니까 그 말이 맞다. 글 쓰는 팔자에서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내면 안 된다고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인생에서 오버만 하지 않아도 큰 지혜를 터득한 셈 아니겠는가.
이상 팔자 바꾸는 방법 여섯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30여 년 동안 고금의 문헌들을 보고 수없이 여행하고 만난 사례들을 정리한 결과이다. 이 여섯 가지를 염두에 두고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실천하며 꿋꿋이 걷다 보면, 인생길 어디쯤에서 변화된 ‘나’와 맞닥뜨리지 않겠는가.​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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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선택적포용
임수는 바다나 큰 강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바다처럼 넓게 포용하고, 강물처럼 유유하게 흐르되 거침이 없다. 이런 이미지는 임수의 대인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임수는 사람들을 폭넓게 사귀고, 부드럽게 리드한다. 그 스케일은 무토를 연상케 한다. 다른 점은 무토 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것. 무토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어 내고 적응하는 스타일이라면, 임수는 상대의 성향 중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취해서 관계의 교집합으로 삼는다. 어떤 사람과도 교집합은 형성될 수 있는 법, 그래서 임수는 매우 광범위하게 대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그 교집합을 넘어 자신에게 침투해 오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 예상을 넘어서는 세력에 대해선 처음엔 느긋하게, 때론 좀 음흉하게 눙치고 넘기려 하다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제법 강하게 되받아친다. 그런 점에서 임수의 포용력이란 선택적 포용이라 할 수 있다.

2교감과 과감한 도전
임수의 포용력이 선택적이라고 하지만 그 역치의 범위는 넓다. 수의 특징인 유연성 혹은 융통성과 양(陽)성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계수가 가랑비처럼 상대에게 서서히 젖어들며 교감하고 포용한다면 임수는 소나기처럼 한번에 온몸을 적시면서 교감하고 포용한다. 한마디로 통이 크고 속도가 빠르고 넓은 교감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교감으로 임수는 즉흥적으로 자신의 실존적 선택을 바꾸기도 한다.
흥보 아내가 한시도 쉬지 않고 품을 팔아도 늘 굶는 처지를 비관하여 목을 매려고 했다. 그때 흥보가 말리며 자기가 죽겠다고 하자 흥 181 보 아내가 겁이 나서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둘이 서로 통곡하며 울고 있을 때, 한 스님이 나타나 연유를 물었다. 사연을 들은 스님은 탄식을 하고는, 집터 한곳을 알려주고 "이 터에 집을 짓고 편안하게 지내오면 가세 빨리 일어나고 자손이 영화롭고 만세까지 이어지리다" 하였다. 그리고 기둥 자리가 될 네 곳에 막대기를 박아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흥보는 있던 집을 헐고 스님이 일러 준 자리에 다시 집을 지었다. 여전히 배는 주리고 입을 옷은 없었지만 모진 겨울을 죽지 않고 살아났다. 봄이 되자 그 집에 제비가 찾아와 집을 짓게 되었고, 큰 뱀이 제비 새끼들을 잡아먹고 있는 걸 흥보가 발견하고 마지막 남은 제비를 구해주게 된다. 그 제비가 어느 날 비행 연습을 하다가 다리를 다치게 되자 흥보는 제비 다리를 치료해 준다. 나중에 그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준다는 뒷얘기는 다 아는 스토리일 것이다.
양상은 좀 다르지만 어떤 천간의 성질이건 약한 존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다 가지고 있다. 그런 측은지심이 비단 임수만의 교감 능력은 아닐 것이다. 임수의 특성은 그보단 스님과 만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무리 측은한 상황이라도 누군가의 손길이 도움이 되려면 극복하려는 자기 힘이 있어야 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가 밖에서 쪼고 안에선 새끼가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한다.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機)라 한다. 사제지간에서 스승의 자극과 자기 한계를 깨려는 제자의 노력이 맞물려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마찬가지로 복도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극복의 힘이 있을 때 그 복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스님의 제안은 복을 받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어허, 신세 가련하오. 부귀 주인 따로 없어 적선하면 따라오니 무지한 중의 말을 만일 듣고 믿을 테면, 집터 하나 알려줄 터 소승 뒤 182 를 따르시오." 흥보는 "크게 기뻐 천 번 만 번 감사하며 중의 뒤를 따라가니, 개국해도 좋을 배산임수 형국이요, 무성한 나무들과 빼어난 대나무밭 빙 둘러 싸인 곳에 집터를 가늠하니 명당자리 분명"하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장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일거리를 주는 것도 아닌데 흥보는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수고로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스님의 제안을 수동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발판을 통해 능동적인 자기 극복 의지를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다.
임수의 태도가 이와 닮았다. 임수는 위기의 전환점에서 어떤 기회와 빠르게 교감하고 단호하게 방향을 바꾼다. 계수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고민하고 결정하는 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 임수는 어떤 것에 꽂히면 과감하게 도전한다. 또한 그 결정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성실하고 꿋꿋하게 운명을 다시 시작한다. 그것은 시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운명으로 가져갈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다. 물론 같은 이유에서 임수의 결정은 너무 즉흥적이고 시행착오를 많이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와 맞지 않는 시류의 흐름을 탔다가 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번 직감적인 교감이 일어나면 답답할 만큼 의심하지 않으며 결국 끝장을 보고 나서야 후회하기도 한다.

3자기 통제
임수는 자기 통제력이 강하다. 다만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교감되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느낄 때 스스로를 통제한다.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통제될 때는 오히려 뛰쳐나간다. 누구도 임수를 통제하진 못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183 일에 대한 사명감 혹은 책임감, 즐거움, 목적의식 등이 있을 때 강하게 동기부여가 되며, 조금 힘들어도 오래 버틸 수 있다.

4유연한 리더십
임수의 리더십은 처음부터 강하게 제압하는 타입이 아니다. 항상 유연하고 부드럽게 사람을 이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거칠게 밀어붙인다. 유연하게 이끌어 가건, 거칠게 밀어붙이건, 모두 물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벼락을 맞는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그렇게 치명적이라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에선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 일어난다. 그러나 급류에 휩쓸리면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것처럼 임수의 리더십이 강하게 치고 들어오면 저항할 틈도 없이 일단 휩쓸려 버린다. - P180

자오묘유는 도화살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연지나 일지에 상관없이 글자 각각이 도화살로 작용한다고 보면 된다. - P194

대체로 천간은 욕망과 사유의 방향성, 지지는 현실적 조건과 환경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한마디로 천간은 욕망, 지지는 현장이라 할 200 수 있다. 물론 이 둘을 명확하게 나눌 순 없다. 욕망은 현장을 만들고, 현장은 욕망을 낳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도서관을 찾게 되고, 반대로 도서관에 가 보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천간과 지지를 욕망과 현장이라는 구도로 나누면 사주를 해석하는 데 더욱 입체적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지지를 해석할 때는 현장의 운세라는 측면을 염두하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 - P199

인목의 기호
호랑이
역동성 : 활발, 추진력, 의욕, 리더십, 폭발적 기운, 급한 성정, 반항적 기질, 자존심, 명예, 의협심, 유능, 자유, 고독
큰 것에 대한 욕망 : 큰 꿈, 모험심
떠돌이 : 독립, 도전, 예측 불허
큰 나무
갑목의 성향 공유, 극단적 승부욕, 인간 중심, 따뜻한 마음, 항상성, 성공 기회
겨울 나무
인월(입춘, 우수), 봄의 시작, 순수함, 노련함 부족, 유아적 도발
지천태 삼양(三陽), 서투름, 이질성과의 교류

1호랑이
ㅇ역동성 인목은 계절로는 봄의 시작이다. 입춘부터 인월이 시작 211 되므로 좀 추운 봄이다. 그러나 그 운기(運氣)는 이미 사람이 체감하기 전에 생동하며 바람을 일으켜 땅과 동물을 깨우기 시작한다. 축월 땅속 얕은 곳에서 준비하고 있던 만물의 기운이 인월이 되면서 땅 위로 튀어나와 대지로 솟아오른다. 이런 역동적인 기운을 12지 동물 중에 가장 용맹한 호랑이에 빗댈 수 있다.
호랑이는 하나의 목표물만 노리고 추격한다. 맹렬한 기세로 질주하는 모습이 천간의 양목인 갑목과도 닮았다.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올 때도 이런 기세가 필요하다. 인목의 운명은 강하게 하나의 장애물[土]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하늘하늘한 새싹이 때론 아스팔트까지 뚫고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인목의 맹렬함이다.
그래서 인목은 역동적인 힘과 활발함, 그리고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활발한 성격은 의욕을 부추기고, 추진력으로는 장애물을 치고 나간다. 그런 기운은 리더십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폭발적이고 급한 성격이나 반항적 기질로 드러나기도 한다. 자존심도 강하고 명예를 중시하며 의협심도 강하다. 일을 할 때도 현장을 빠르게 이해하고 일처리도 정확하게 해내는 편이다. 그러나 그런 유능함에 비해서 협동하는 능력은 좀 약하다. 인목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홀로 질주하고 홀로 능력을 발휘하는 점이 한편으론 자유롭고 한편으론 고독해 보인다.

ㅇ큰 것에 대한 욕망 호랑이는 큰 사냥감을 좋아한다. 호랑이가 좋아하는 먹잇감 중 하나인 들소는 몸무게가 1톤이 넘는다. 이 거대한 동물과 싸우면서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 호랑이가 상처가 깊어서 사냥이 어려우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호랑이의 사냥 성공률 212 은 낮다. 호랑이 연구가 "조지 쉘러는 호랑이가 13번 중 1번 사냥에 성공한다"스티븐 밀스, <<호랑이>>, 이상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14쪽는 기록을 남겼다. 위험하고 사냥의 성공률도 낮은 큰 먹이를 노리는 성향은 인목도 비슷하다. 인목은 비교적 큰 것에 대한 욕망이 있다. 꿈의 스케일도 크고 또 그것을 단번에 이루려 한다. 그런데 호랑이의 사냥 성공률이 낮듯이 인목의 도전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인목 특유의 모험심으로 도전이 계속되면 어쩌다 한방에 크게 이루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꿈이 클수록 현실의 결핍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작은 것으로 주린 배를 채워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ㅇ떠돌이 호랑이 "어미가 발정기에 이르고 다시 짝짓기를 하게 되면, 새끼들에게는 더 이상의 가족생활이란 없다. 특히, 새끼들이 수컷일 경우 더욱 그렇다. 20~24개월쯤 되면 새끼들은 독립하여 정글을 떠돌아다닌다."같은 책, 68쪽 인목도 떠돌이 인생이다. 청년이 되면 독립하여 삶을 실험하며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닌다. 익숙한 업무를 떠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하고, 편한 직장을 벗어나 벤처 등의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남들이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일수록 도전하고 싶어 한다. 호랑이 중에는 "예측불허에다가 심지어 무모하기까지 한 녀석들도 있다."같은 책, 25쪽 인목의 도전도 비슷하다. 인목은 예측 불허의 상황을 자주 만들어 낸다. 그런 도전들이 인목에게 짜릿함을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인목에게 가장 답답한 상황은 의존적 환경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정형행동을 한다. "정형행동이란, 판에 박힌 듯 의미 없는 행동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일종의 213 정신적 문제라 볼 수 있다. 일정 구간을 끊임없이 오간다든가, 몸을 앞뒤로 춤을 추듯 움직인다든가, 먹은 것을 토하고 다시 먹는다든가, 심지어 털을 물어뜯어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야생의 삶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행동을 지니고 있는 동물들이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살게 되면 얻게 되는 병이다."박하재홍,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슬로비, 2013, 64~65쪽
맹수인 호랑이는 그런 환경이 더욱 답답할 것이다. 인목도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한곳에 갇혀서 의존적으로 살아가면 정형행동을 보인다. 그런 인목에게 나타나는 정형행동은 자주 답답함을 느끼며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화불량, 신경쇠약, 두통, 피로함 등의 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사유와 창의력이 생기지 않고 변화와 갈등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병증은 더욱 심해진다.
새끼들이 독립하여 정글을 떠돌아다니는 "이때가 호랑이 일생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시기이다. 카란스에 의하면, 이 떠돌이 호랑이들의 연간 사망률은 30~35퍼센트에 이른다"스티븐 밀스, 앞의 책, 68쪽 그런데도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맹수의 자유본능이다. 그 본능을 억제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동물이건 사람이건 다 비슷하다. 특히 인목에게 모험은 매우 중요한 삶의 추동력이 된다.

2큰 나무
큰 나무의 이미지는 갑목과 같다. 인목의 많은 부분이 갑목과 닮았다. 인간 중심적이고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가졌으나, 예측 불허의 욕망으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한방에 승부를 걸려 하지만, 214 뜻대로 안 된다. 관건은 항상성이다. 꾸준하게 도전하는 인목은 성공에 이르게 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 기회가 많으면 성공 확률도 높다. 그러나 큰 나무는 강한 폭풍에 쉽게 쓰러진다. 이 점도 갑목과 비슷하다. 조금 멀리 보고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3겨울 나무(월지 인목) 생략

4지천태
태괘는 땅과 하늘이 위아래로 만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음양의 형상으로 보자면 세 개의 양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다. 이양이 새싹이 땅을 뚫기 직전의 상태라면 삼양은 이제 막 땅을 뚫고 올라온 상태다. 그래서 아직 서툴고 순수한 기운이지만 그만큼 밝고 계산적이지 않으며 낯선 것을 잘 가리지 않는 용기가 있다. 어쩌면 이런 기운이 소통의 첫 문턱을 넘는 데는 가장 유리한 조건이 아닐까 싶다.
<단전>(彖傳)에서는 "하늘과 땅이 교류하여 만물이 소통한다"(天 215 地交而萬物通也)고 했다. 위가 땅이고 아래가 하늘이니, 제자리를 찾기 위해 땅을 내려가려 하고 하늘을 오르려 한다. 이질적인 것들 간의 이러한 동적 교류야말로 음양이 섞이고 만물이 소통되는 길이다. 인목은 낯선 것들에 무심하듯 강하게 접속하는 능력이 있다. 큰 저항 없이 이질성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그 힘은 태괘의 괘사(卦辭)에서 말한 것처럼 "길하고 형통하다"(吉亭). 다만 힘 조절이 필요하다. 소통의 첫 관문을 연 이후의 관계는 또 다른 자세가 필요하다. 인목의 기운으로만 소통하려 하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런 관계는 서로 피곤하다. 관계를 지속시키려면 편안하고 느긋한 기운이 요구된다. - P210

사화의 기호

끌림과 꺼림 : 독성, 열기
맹렬한 에너지 : 명석함, 용의주도, 승진, 지략 혹은 권모술수
용광로, 폭탄
급한 성질, 분노조절장애, 만남과 이별의 속도가 빠름, 좁은 대인 관계, 감정적
중천건
육양, 사월(입하, 소만), 양의 절정, 배수진, 추동력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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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역사가 ‘모두가 다 잘사는’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간다는 관념은 ‘지금, 여기’는 물론, 이전의 모든 시대를 과도기요 이행기로 간주하는 사유를 낳게 된다. 이거야말로 소외의 극치가 아닐까.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우주의 끝을 향해 가다 보면 결국 자신이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이다. 역사적 실천의 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 99 키는 것ㅡ이보다 더 혁명적인 실천은 없다!
개인의 경우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주팔자를 뽑아 보면 오행상 어느 쪽으로든 다 기울어져 있다. 심한 경우 한 오행이 고립이거나 아니면 아예 없기도 하다. 한두 개의 오행만으로 된 경우도 있다.(윽!) 고스톱으로 치면 한두 종류의 패만 들어온 셈이다. 그럼 판을 포기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좀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또 패가 골고루 들어온 경우에는 누릴 수 없는 스릴이 있다. 그 스릴이 오히려 인생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불급의 극단인 고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립은 다른 오행에 가로막혀서 순환이 불가능한 경우다. 하지만 그 카드는 존재의 무게중심이 된다. 엉? 어떻게?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손가락이건 발톱이건(자식이 깊은 병이 들면 그 자식을 인생의 축으로 삼는 부모가 그런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 카드들이 야기하는 파장은 크다. 즉, 가장 문제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구원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문제와 사건의 중심이 된 건 다른 일곱 개의 카드 때문이다. 즉, 그것 자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카드와의 관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카드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이것만 쏙 뽑아 버리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무지의 산물이다. 만약 어떤 비책을 동원하여 그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 순간, 나머지 일곱 개의 카드도 다 위치를 바꾸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카드가 고립이나 태과에 처하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 P98

팔자가 차별상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조건과 통념으로 인해서다. 무엇보다 ‘부귀는 당연히 누리고 빈천은 무조건 피하고 싶은’ 욕망이 가장 큰 장벽이다. 원초적 간극에다 이런 식의 탐욕이 중첩되면서 차별이 이중 삼중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찰하지 못하면 마치 모든 차별상이 타고난 운명 탓이거나 아니면 외적 조건 탓이라는 전도가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태과불급을 더더욱 심화시키는 셈이다. 승가원 꼬마와는 정반대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 P101

그 이름도 섬뜩한 공망살도 그렇다. 공망(空亡)이란 천간의 짝이 없이 지지만 있는 오행을 말하는데, 예전에는 독수공방하는 살이라 여겨 아주 꺼렸지만 이것도 운용하기 나름이다. 때론 공망살이 훨씬 유리한 경우도 많다. 또 공망이 다른 오행과 충을 하면 엉뚱한 리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사항을 알게 되면 살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을 벗어날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살(殺)이 있어 행복해요!^^" 실제로 그렇다. 명리의 기초를 배우다 보면 처음엔 살이 있을까봐 겁내지만 나중엔 살이 없는 걸 좀 서운해한다. 살이 없으면 안정감(혹은 지루함)은 있겠지만 대신 삶의 역동성을 맛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상식적 통념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보다는 변화를 원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9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면 뭘 하겠느냐고 물었다.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모험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인생이다. 변화는 고생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서만이 ‘살 떨리는’(^^) ‘미친 존재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 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걸 즐기는 훈련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P108

모든 사람의 대운이 십 년마다 변한다는 건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인생또한 그러하다. 생리학적으로 몸을 이루는 세포들도 최소 7년이면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주 다른 존재다. 그렇다면 대운이 달라진다는 건 외부적 조건이기도 하지만 내 113 존재의 주름 하나가 펼쳐지는 내부적 변용이기도 하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하긴 생로병사는 늙고 병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몸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주름을 펼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운의 변화 또한 존재가 밟아 가는 단계의 표현일 수 있다. 여덟 개의 카드 위에 겹쳐진 변화의 리듬, 그것이 곧 대운이다. (…)
대운을 주욱 뽑아 놓으면 자신이 밟아 갈 시공의 리듬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기에서 핵심은 상승과 하강의 변주다. 즉, 지금이 아주 만족스럽다면 분명 다음 혹은 다다음 단계는 반드시 불만족의 양상이 펼쳐질 것이다. 부와 권세를 누리는 경우라면 그 진폭은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원국을 좋게 타고날 수는 있지만, 평생에 걸쳐 대운의 흐름이 계속 좋기란 불가능하다. 당연히 부침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상승할 때는 더욱 몸을 낮추고, 하강할 때는 결코 낙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 나의 리듬이 좋다고 해서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서로 대립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대신 누군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내가 기운이 넘치는 대신 누군가는 지금 탈진하고 있을 것이다. 114 이것이 오면 저것이 가고, 저것이 생기면 이것이 사라진다. 공동체 생활을 해보면 그 점이 아주 확연히 드러난다. 작년에는 사건사고의 주역이었다가 올해는 사고를 수습하는 역할을 하고, 도무지 공부가 늘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어느 해가 되면 전혀 예상 밖의 성취를 이루고…… 이런 식의 변전이 실로 무쌍하게 벌어진다. 이걸 알면 누구든지 저절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운이라는 것이 결국 ‘우주적 인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운에도 강밀도의 차이가 있다. 특히 아주 기운이 센 간지가 있다. 갑목, 자수, 진술축미 등이 그렇다. 이들은 오행 중에서도 시작점이나 변화의 마디를 짓는 글자들이기 때문에 이 대운이 들어서면 인생이 그야말로 크게 국면전환을 한다. 상상도 못한 일을 하거나 전혀 예측불가능했던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위에 등장한 Y의 경우 병자(丙子)대운이 들어왔는데, 여기서 자수는 남편운이다. 거기다 해외역마까지 함께 들어섰으니 그야말로 기막히게 적중한 셈이다. C의 경우 갑신(甲申)대운이 들어왔는데 이걸 풀이하면 동료들과 조직운이 된다. P는 경진(庚辰) 대운이 들어왔다. 앞의 경우에 비해 115 서는 변화가 약한 편이지만, 진(辰)토 역시 환절기의 마디에 해당한다. 이처럼 셋 다 상식의 차원에선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명리상으론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은 셈이다. - P112

어린 시절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 자신이 실제로 거기에 있는 듯이 보고 느끼고 나아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것, 어쨌거나 당신은 당시에 실제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 116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에 깜짝 놀랄 일이 있다.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당신의 몸에 있는 원자는 단 하나도 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거기에 없었다…… 물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르며 순간적으로 모여서 당신이 된다. 따라서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당신이 아니다. 그것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쭈뼛 일어서게 하지 않는다면, 그럴 때까지 다시 읽어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 570쪽)

머리카락이 쭈뼛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싹 소름이 돋는 건 사실이다. 내가 뭔가를 기억하는 순간, 나는 이미 그 기억 속의 내가 아니라니. 양자역학적으로 말하면, 나는 오직 지금, 여기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들이 무수히 모여 나라고 하는 것이 구성될 뿐이다. "‘나’의 정체성은 수많은 ‘너’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일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89쪽)이다.
대운의 이치도 그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너는 이전의 시공간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말해 주는 것이 바로 대운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그것에 끄달릴 이유가 없다. 과거의 어떤 상태를 자신의 진정한(혹은 순수한, 혹은 행복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한, 지금의 나는 늘 거기에 미달하거나 부족할 뿐이다. 그게 이어지다 보면 결국 나의 팔자는 온통 결핍으로 채워지고 만다. 117 대운이라는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나의 의식의 물결은 어느 한 모퉁이에 들러붙어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식은 웅동이나 늪이 될 것이다.
대운을 알면 전략을 짜기 쉽다. 시절인연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이 잠수를 타야 하는 시기라면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면 되고, 잠수가 끝나고 막 떠오를 때라면 흥분할 필요 없이 여유있게 즐기면 된다. 물론 거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 일이 잘될 때는 대개 자기의 능력 덕분이라 여긴다. 그래서 자만심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식의 행운이 계속 뒤따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대운이 바뀌어 만사가 막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탓하기 시작한다.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자신은 빠져 있다. 모든 것의 원인과 책임은 세상과 타인들의 몫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인데, 따지고 보면 그게 더 심각한 일 아닌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 그것이 곧 상처의 원천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팁 하나. 혹시 지금 실연을 당했으면 딱 5년만 기다리시라. 나를 버리고 간 그 사람의 연애도 5년 안에 끝장이 난다. 대운 10년은 천간과 지지로 5년씩 마디가 지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의 세운에 의해서도 완전 딴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 사이에 자기 자신도 전혀 다른 인연의 장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은근히 감사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떠난 옛 연인에게. 그가 아니었다면 어떻 118 게 새로운 삶이 가능했겠는가. 더 나아가 누가 누구를 버리고 버림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서로 인연이 엇갈렸을 뿐임을,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진통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있을 수 없다. 원인도 주체도 없다. 다만 내 몸을 지배하는 시공간의 조건이 달라졌을 뿐이다. 요컨대, 모든 것은 지나간다. 대운이란 이 무상성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명리학적 키워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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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문하에서 친구 사귀는 도리는
학문을 매개로 사귀고 친구의 인격을
고양시켜주는 관계가 되어야 하며
시장바닥의 사귐과는 다른 것이다
시장바닥의 친구관계는 서로 이익이 다하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된다

마지막 구절인 ‘이진성로인’이 가슴에 묵직하게 남았다. 옛날에도 그랬었구나! 퇴계 선생이 친구 사귀는 법에서 가장 핵심으로 강조한 대목은 역시 ‘이문잉보인’이라는 대목이다. 학문을 매개로 해서 사귀고, 서로 인격을 도야하는 관계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 때문에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261 하지만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사농공상의 서열이 아닌 세상이다. 상이 가장 위에 있는 세상이다. 한국사회는 재벌이 주인이고, 재벌이 양반이고, 재벌이 왕이다. 상은 무엇인가? 이끗과 돈을 추구하는 계층이다. 손해를 본다 싶으면 피눈물도 없이 사람을 버려야 하는 게 상의 정신이다. 피눈물이 있으면 사업 망한다. 이런 세상에서 학문과 인격도야를 매개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조선조 선비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지금은 대부분 ‘이진성로인’의 관계이다. 그러니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들 외로움을 느끼며 산다. 학문과 인격을 매개로 사귈 만한 친구를 만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우선 내 자신부터가 자본주의적 습관에 물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인간세계는 친구 맺기가 쉽지 않고 오직 말없는 자연과 청산이 친구가 되는 세상이다. 허교라! 허교도 쉽지 않다. 돈이 되면 허교하고 돈이 안 되면 절교를 정답으로 알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P260

물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미국의 대학 도서관 앞에는 대부분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머리에서 열이 난다. 이 열을 식히라고 도서관 앞에 분수대가 있는 것이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물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 물은 연못이나 호수가 될 수 있고, 강물과 바닷물도 해당된다. 대도시일수록 강이나 호수가 보이는 곳의 집값이 비싸다. 전망 값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물을 바라보면 알게 모르게 머리로 올라온 열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P277

중국의 오악 가운데 가장 바위 기세가 험한 산이 서악인 화산이다. 북한 284 산 인수봉 같은 화강암 바위 봉우리가 그보다 2~3배 높이로 쭉쭉 뻗어 있다고 보면 된다. 화산 밑에는 수련 장소로 유명한 도관이 하나 있다. 수공법(석 달씩 잠을 자면서 하는 수련)을 했다고 전해진 도사 진단이 공부했던 곳이다. 진단은 도가의 호흡법인 내단 수련 체계를 세운 장본인으로, 수공법은 그가 도통했음을 보여준다. 육신은 정신을 담는 그릇일 뿐, 한 번 잠이 들면 몇 달씩 깨어나지 않을 정도였다. - P283

돈을 쓰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적선이다. 적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좋은 데쓰는 것이다. 쓰고 나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차원 높은 방식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무상보시’라고 부른다. 무상보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어렵다. 우리나라 500년 된 명문가를 조사해보니 공통적인 가훈이 ‘적선지가필유여경’이었다. 적선을 많이 한 집에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정말 있을까? 있다. 있으니까 500년을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 자기 마음속의 무의식에 기억되고 저장된다. 사람이 죽어도, 육신이 없어져도 이 무의식은 다음 생으로 이월된다. 조상의 무의식 정보가 후손에게 유전자로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적선을 많이 한 집안 자식들의 사주팔자가 좋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권력을 휘두르며 재물을 축적해놓은 사람들의 집안을 보면 손자 대에 이르러 그 많던 돈이 다 사라져 버린 경우를 여럿 봤다. 이상하게도 마가 낀다. 일이 될 만하다가 이상하게도 어떤 변수가 튀어나와 고춧가루를 뿌려 버린다. - P302

공부하는 학자가 큰돈을 바라면 학문이 무너진다. 이를 사주명리학에서는 ‘탐재괴인’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인은 도장이라는 의미이지만 과거에는 학문을 뜻했다. 그래서 학자는 부자에게 너무 붙어도 문제가 생긴다. 학자가 재벌.부자 옆에 장식품처럼 붙었다가 신세 망친 사람을 여러 명 보았다. 비자금 세탁하는 데 이용당하거나 명분 없는 일에 들러리 섰다가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재벌에게 달라붙으면 돈 좀 나올 줄 알고 100미터 전방에서부터 낮은 포복으로 기어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착각이다. 재벌들은 피눈물도 없다. 절대로 후하게 돈 주는 법이 없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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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을 이야기할 때, 도대체 ‘행(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는 쉽지 않다. 현대에는 잘 안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두암은 이를 왕래로 규정한다.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뜻으로 본다. 예를 들어 ‘은행(銀行)’이나 ‘양행(洋行)’처럼 돈이나 화물이 모였다 흩어지거나 또는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하던 설명이다.

화기(火氣)라고 하는 것은 분산(分散)을 위주로 하는 기운이다. 모든 분산작용은 바로 화기의 성질을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최초에는 목(木)의 형태로서 출발하지만 그 목기가 다하려고 할 때에 싹은 가지를 발하게 되는 것인즉, 그 기운의 변환을 가리켜서 화기의 계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작용을 화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변화작용의 제2단계인 것이다. 그런데 화기가 분열하면서 자라나는 작용은 그 기반을 목에 두고 있는 것이므로 목이 정상적인 발전을 했을 때는 화기도 또한 정상적으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이지만, 만일 목의 발전이 비정상적일 경우에는 화도 역시 불균형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99 이것은 비단 화기가 발전하는 경우에서뿐만이 아니라 목화토금수의 어느 것이 발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화(火)라는 것은 이와 같이 그 상(象)이나 본질이 목에서 분가(分家)한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것을 인생 일대에서 보면 청년기에 접어드는 때다. 그러므로 진용(眞勇)은 허세로 변해가기 시작하고 의욕은 차츰 정욕(情慾)에서 색욕(色慾)으로 변해가는 때인 것이다……. 색욕이라는 것은 내용에 대한 욕심이 아니고 외세에 대한 욕심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목의 경우는 이면에 응결되었던 양기(陽氣)가 오로지 외면(外面)을 향해서 머리를 든 정도였지만, 화기의 때에 이르게 되면 그것이 상당한 부분의 표면까지 분열하고 있으므로 그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관찰해보면 이것은 꽃이 피고 가지가 벌어지는 때인즉 이때는 만화방창(萬化方暢)한 아름다움의 위세를 최고도로 뽐내는 때이지만 그 내용은 이미 공허하기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여름은 외형은 무성하지만 내면은 공허해지는 때이므로 생장의 역원(力源)은 끝나고 노쇠의 바탕이 시작되는 때다.
- 『우주변화의 원리』, 66~67쪽 - P98

여기서 보면 화(火)의 성질을 분산작용으로 규정한다. 그 분산작용이 인간의 욕망으로 나타나면 색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 색욕이 100 란 내용에 대한 욕심이 아니고 외세에 대한 욕심이다"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탁견이다. 색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바깥의 색깔이다. 색욕의 본질을 분석하면 바깥 색깔에 대한 욕심이다. 이것을 바로 화기의 작용이라고 본 것이다.
화기는 마음껏 발산하는 힘이다. 역대 어떤 도사가 이처럼 화기와 색욕을 이렇게 연결시켜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단 말인가! 이와 같이 분명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근래에 없었다. 한동석 선생의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도 사주에 화가 많은 사람은 기분파가 많다. 배짱이 맞으면 시원시원하게 ‘오케이’ 하는 경향이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화기가 많은 팔자들은 그날 처음 만났어도 이야기가 통하면 곧바로 호텔로 직행하는 경우도 보았다. - P99

"목기와 화기를 지닌 이의 기질이나 성격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형님 지론에 따르면 대통령은 목.화 기운이 되는 게 국가에 이롭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목.화는 밖으로 분출하는 형이라서,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운이 밖으로 팽창한다는 것이죠. 반대로 금.수는 수렴형이어서 안으로 저장하고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무부장관이나 중앙정보부장 같은 자리에는 금.수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하고, 상공부나 생산하는 분야에는 목.화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금융분야는 토기(土氣)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적당하다는 거죠. 금융은 양심적이고 공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토는 중립이어서 공정하죠. 이게 오행에 맞춘 인재 배치법이자 용병술이죠. 국가적인 차원의 인재 관리는 오행을 참고해야 한다는 게 형님 생각이었습니다." - P105

불가나 도가나 유가의 공부방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지사지 귀신통지(思之思之 鬼神通之)’라는 말이다. ‘밤낮으로 생각해 게을리하지 않으면 활연(豁然)하게 깨닫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에서도 낮에 생각한 마음과 같음)가 바로 이 경지다. 조선 후기 유가의 도인이었던 이서구(李書九)가 『서경(書經)』 서문을 9천 번 읽어서 이름을 ‘서구(書九)’라고 지었다는 말이 전해져오고, 황진이 묘를 지나면서 ‘잔 잡아 권할 사람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고 절창을 읊었던 임백호(林白湖)가 속리산 정상의 암자에서 중용을 5천 번 읽고 나서 한 경지 보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같은 맥락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한동석이 보여주었던 파워의 진원지는 『황제내경』 일만 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 P115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차마 말 못할 고민을 정신과의사에게 가서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점쟁이를 찾아가서 속을 털어놓는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아야 정신병에도 안 걸리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자살도 방지할 수 있다. 그 털어놓고 상의할 만한 최적의 상대가 바로 점쟁이, 역술가, 명리학자다. 점쟁이가 몇 만 원의 복채를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담료니까 그까짓 복채 몇 푼 너무 아까워하지 마라! 점쟁이도 공돈은 안 받는 셈이다. 점쟁이도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순기능도 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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