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레-노이만은 우리 인간에겐 눈(시각), 귀(소리), 혀(맛), 코(냄새), 피부(접촉) 이외에 ‘제6의 감각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건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회적 분위기의 모든 이동을 감지하는 안테나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인즉슨, "환경을 관찰하는 데 소모되는 노력은 확실히 누구로부터 배척받거나 혼자 남게 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노엘레-노이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소외당하는 것을 영원히 두려워하면서 산다. 그리고 어떤 의견이 커지고 어떤 의견이 줄어드는지를 알기 위해 환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만약 자기의 생각이 지배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견해가 지지 기반을 잃고 있다고 판단되면 의견을 감추고 조용해지게 된다. 한 집단은 자신 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반면 다른 집단은 입을 다물기 때문에 전자는 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후자는 숫자보다 약해지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만들며, 나선형의 과정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노엘레-노이만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립의 두려움‘때문에 ‘침묵의 소용돌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침묵의 소용돌이‘ 또는 ‘침묵의 나선‘은 사람들이 소수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의견을 감추어야 한다고 느끼는 점차적인 압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자기의 의견이 확산되고 다른 사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따고 느끼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그 의견을 말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의견이 터전을 잃고 있다고 느끼는 개인들은 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할 것이다." - P251

역사적 시련을 많이 겪은 한국인은 적어도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와 그에 따라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실정에 더 잘 맞는 이론은 아닐까? 침묵의 나선 이론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여론이란 것이 허깨비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는 않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우리의 견해 표명이란 것이 늘 주변을 살피는 가운데 나오는 것이라면 여론이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달라지는 ‘티핑포인트‘가 작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 P254

공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 공공적 이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고 부유한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를 외치면서 자신의 삶을 좀더 유쾌하게 보내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 그 중간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심리적인 불안 또는 탐욕의 포로가 되어 자신을 양 극단의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 상황에서 공공적 이슈에 관심을 갖자는 외침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곳이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게 사는 한국인들의 기존 삶은 이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거나 정점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염은 무서운 것이다. 냉소주의와 패배주의의 전염이 위력적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전염도 가능하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전염의 무서운 가능성을 단순 산술로 평가해선 안 된다. - P260

사람들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자신이 계몽이나 훈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하라고 하면 더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는 청개구리 심보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텍사스 주 당국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인기 풋볼팀인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선수들을 참여시켜 그들이 쓰레기를 줍고 맨손으로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텍사스를 더럽히지 마!Don‘t mess with Texas!"라고 으르렁대는 텔레비전 광고를 제작했다. 캠페인 1년 만에 쓰레기는 29퍼센트나 줄었고, 6년 후에는 72퍼센트나 감소했다. 텍사스 주민의 95퍼센트가 이 표어를 알고 있으며, 2006년에는 이 표어가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표어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뉴욕 시 메디슨 거리를 행진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집필한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2008)에 나오는 이야기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이 단어를 격상시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정의를 새로 내리고, 그들이 역설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간판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좌파적인 것도 우파적인 것도 아니며, 민주당적인 것도 공화당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넛지는 초당파적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실천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넛지는 구체적으로 선택 설계에 적용될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다. 투표 용지를 디자인하는 사람, 환자에게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을 설명해줘야 하는 의사, 직원들이 회사의 의료보험 플랜에 등록할 때 서류 양식을 만드는 사람, 자녀에게 선택 가능한 교육 방식들을 설명해주는 부모,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세일즈맨 등이 바로 선택 설계자들이다.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라 해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 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 P263

버네이스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었다. "때때로 수백만 명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존경 받는 권위자를 내세우거나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리적 틀을 설명하고 전통을 고려하여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도록 하는 것이 더 쉽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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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 ‘해야 한다‘가 아무런 효과도 없을 때가 있다. 사람의 인생이 자기 성미를 거슬러 가기 때문이다. - P85

나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희망이라는 미국의 유산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불가능은 없다‘라는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길이 닫힐 때 일어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자꾸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 P87

미국적 신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자명한 이치가 분명한데도 우리는 종종 그것을 거부한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본성은 우리를 생태계에 존재하는 유기체처럼 만들어 놓았다.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어떤 관계에서는 번성하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생기를 잃고 말라 죽는다. - P90

만약 내가 그 자리를 맡았더라면 나에게나 그 학교에게나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 것이다. - P94

능력과 한계를 지닌 우리 본성의 실체에 맞추어 살려는 노력이야말로 매우 도덕적인 삶의 방식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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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사람은 주로 이기심 때문에 행동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옳은 일은 나쁜 이유 때문에 행해지며, 나쁜 일은 좋은 이유 때문에 행해진다. (중략)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타협‘은 추한 단어가 아니라 고상한 단어다. (중략)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이른바 도덕성은 대부분 특정 시점의 권력관계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 Saul D. Alinsky, Afterword to the Vintage Edition, Reveille for Radicals(New York: Vintage Books, 1946/1989), pp.224~225. - P110

이들이 알린스키의 운동 방식이야말로 퇴폐적이고 타락하고 물질주의적인 부르주아 가치를 전복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과 거리가 멀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알린스키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 가난한 사람들이 원하는 게 ‘퇴폐적이고 타락하고 물질주의적인 부르주아 가치‘의 향유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가?" - P111

"인권, 민주주의, 언론 자유, 환경 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물질 위에 설 수 있는 것이지, 물질과 무관하게 생겨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물질과 더불어 경쟁에 대해서도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나름대로 한국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 열 명을 뽑아 그들이 경쟁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확인해보자. 내가 나름대로 분석해보면 경쟁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넘어서 저주 일변도다. 물론 아름답긴 하다. 그런데 영 불편하다. 그들 역시 경쟁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닌가? 국가와 민족을 타도해야 할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것도 역시 경쟁의 덕을 본 게 아닌가? 보수적인 세상을 넘어서 진보적인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 또한 경쟁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경쟁을 저주하는 걸까? 물론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저주하는 것이겠지만, 경쟁이라는 단어까지 쓰레기통에 내버리면 도대체 무엇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일까? 경쟁을 보수에 헌납한 사람들에게 유권자들이 무슨 믿음으로 표를 줄 수 있을까?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가 진정한 경쟁인가? 학벌 간판을 놓고 싸우는 입시 전쟁이 진정한 경쟁인가? 정글의 법칙을 따르는 약육강식이 진정한 경쟁이란 말인가? 진보는 경쟁을 부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경쟁을 해보자며 경쟁을 선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진보가 기존의 경쟁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약육강식형 경쟁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P113

안철수의 정의 · 공정 메시지는 공생을 강조하는 것으로 완결된다. "사업을 해보니 그래요. 성공이라는 결과를 봤을 때, 내가 공헌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회가 내게 허락해준 것이더라고요. 그런 성공의 결과는 100퍼센트 내 것이 아니에요. 그것을 독식하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약탈하고 그런 식으로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게 제 생각의 출발이었어요." - P120

서경호는 "생각해보자. 우리의 공적 제도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가? 규범을 토대로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높은가? 사회적 갈등이 ‘떼법‘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해결되는가?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는 이가 많다면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탄탄한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다들 불안해 혈연 · 지연 · 학연 등 온갖 인연을 애써 따지고 맺는 것이다. 재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중하위권으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니 누구의 동생 · 친구라고 혹은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하나 때문에 주가가 뛰는 일까지 벌어졌다. ‘옷깃만 스쳐도 상한가‘, ‘사돈의 팔촌주‘란 우스개까지 나돈다. 테마주가 대선 주자 탓은 아니다. 그렇다고 못 말리는 일부 투자자 얘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중략) 대선 후보 시절에, 나아가 선거에서 이겨 청와대의 주인이 돼도 테마주를 앞에 놓고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회초리로 삼았으면 한다. (중략)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자기 이름이 붙은 테마주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더 이상 테마주 따위가 설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겨야 한다. 정치 테마주의 존재는 대선 주자의 수치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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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을 때 <손석희의 미국탐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당시 전직 방송기자 출신인 시민운동가를 만났는데, ‘왜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기자는 양쪽 입장의 균형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쪽의 입장을 견지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다.‘ 저 역시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방송인으로 있는 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 P91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신념‘이나 ‘확신‘이란 말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도 문제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엔 확신은 물론 ‘광신‘마저 투쟁의 동력으로 필요했고 긍정 평가할 수 있었겠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게다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선, 그 어느 쪽을 막론하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잔인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 P104

원래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그렇듯이 가혹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평가, 아니 비판은 이른바 위선에 대한 혐오가 지나친 나머지 나타나는 ‘반위선 근본주의‘ 구호라 할 수 있는 "성인이 아니면 입 닥쳐Saint or shut up"를 연상케 한다. "투사가 되어라, 아니면 비판받아 마땅하다"라는 식의 이분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투사도 변절하길 밥 먹듯이 하는 세상에서 그런 요구는 가혹한 정도를 넘어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 P139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박구용도 「변절의 흑백논리」라는 『경향신문』(2013년 6월 1일) 칼럼에서 "마음이 변해서 떠난 것이라면 배신이 아니다. 지나간 사랑을 부인한 것도 아니라면 모욕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종편이 현실이 되었으니 배척하는 것보다는 수준을 높이는게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명백한 현실 왜곡이자 이상의 교란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현실은 모두가 인정해야 할 불변의 과학적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비추어 자의적으로 구성한 그의 세계일 뿐이다. 그처럼 야만적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현실론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팔았고 이광수가 문학을 팔았다. 그리고 또 흑과 백을 뒤집으며 수많은 변절자들이 흑백논리의 저편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나도 끝없이 변절하지만 그 변절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기는 못 친다." - P146

"무엇을 얻겠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잃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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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어둠은 드물지 않게 매혹을 발산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신은 더 많은 기쁨을 생산하기 위해 은유를 동원하여 성서를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은 비유의 외투로 덮인다. 경건한 신념으로 탐구하는 인간의 이성이 계속 훈련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들이 벗겨져 공개적으로 제시될 때 무가치하게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내놓고 명백하게 말해진 것도 우리의 인식 속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워진다. 너무나 새로워져서, 그것을 숨겨진 상태에서 밖으로 끄집어낼 때 달콤한 맛이 날 정도다.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숨겨두는 것은 배움의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이를테면 자기한테 감추어져 있는 것을 더 뜨겁게 동경하며, 그렇게 동경하던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만큼 더 큰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비유의 외투는 말을 에로틱하게 만든다. 비유의 외투는 말을 갈망의 대상으로 고양시킨다. 말은 비유의 옷을 입었을 떄 더욱 유혹적이 된다. 감추어져 있다는 부정적 특성은 해석학을 에로티즘으로 만든다. 발견과 해독은 벗기는 쾌감을 일으킨다. 반면 정보는 적나라하다. 벌거벗은 말은 매력을 상실하고 평범해진다. 비밀의 해석학은 투명성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폐기해야만 하는 악마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술, 다시 말해 설사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뭔가 깊이를 창출하는 문화적 기술이다. - P46

투명성은 아름다움의 매체가 아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미는 가리는 것과 가려지는 것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베일도 아니고, 가려진 대상 자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베일 속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대상은 베일이 걷히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궁극적으로 베일을 본질로 하는 저 대상을 다르게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즉 비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ㅡ옮긴이). 오직 아름다움만이 가림과 가려짐 속에서 본질적이고, 아름다움 외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의 신적인 존재 근거는 비밀에 있다. 미는 필연적으로 베일과 가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노출시킬 수 없는 것이다. 가려진 것은 오직 가려져 있을 때만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 폭로는 가려진 것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벌거벗은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으로도 가리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에서 본질적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인간의 벗은 몸 속에서 모든 미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 즉 숭고한 것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모든 형상을 뛰어넘는 어떤 작품, 즉 창조주의 작품이다." 오직 어떤 형식이나 형상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반면 숭고한 것은 형식이나 형상이 없는 벌거벗음이며, 여기에는 미를 구성하는 비밀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숭고함은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하지만 피조물로서의 벌거벗음은 전혀 포르노적이지 않다. 그것은 참으로 숭고하며 창조주의 업적을 환기한다. 칸트 역시 모든 재현,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대상에 대해 숭고하다고 말한다. 숭고함은 상상력을 초월한다. - P48

포르노적으로 자기를 전시하며 맞은편 상대를 향해 "교태를 부리는" 얼굴만큼 숭고함과 거리가 먼 것도 없다. - P51

에로틱한 암시는 지시적이지 않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에로틱한 유혹의 힘은 "타자 자신에게조차 영원히 비밀로 남아 있게 될 어떤 것에 관한 예감, 내가 결코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봉인 속에서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타자의 어떤 부분"과의 유희 속에서 발휘된다. 포르노적인 것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암시적이지도 않다. 포르노적인 것은 전염시키고 자극할 뿐이다. 여기에는 유혹을 위해 필요한 거리가 없는 것이다. 에로틱한 매력에는 박탈의 부정성이 필수적이다. - P56

바르트는 사진의 두 가지 요소를 구분한다. 첫번째 요소를 그는 "스투디움 studium"이라고 부른다. 탐구해야 할 광대한 정보들의 영역과 "시름없는 소망, 방향 없는 관심, 일관성 없는 기호ㅡ좋다/싫다ㅡ의 영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스투디움은 ‘사랑하다‘가 아니라 ‘좋아하다‘의 범주에 들어간다. ‘좋아요/싫어요‘가 스투디움의 판단 형식이다. 스투디움에서 격렬함이나 열정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두번째 요소인 "푼크툼 punctum"은 "스투디움"을 깨뜨린다. 그것은 호감이 아니라 어떤 상처, 격한 감동, 당혹감을 낳는다. 단조로운 사진은 푼크툼이 없는 사진이다. 그것은 스투디움의 대상일 뿐이다. "보도 사진들은 대체로 단조로운 사진에 속한다(단조로운 사진이 반드시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들 중에는 푼크툼이 없다. 충격은 있을지언정ㅡ평범한 것도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ㅡ당혹감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울부짖는‘ 사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진도 상처를 입히지는 못한다. 이와 같은 보도 사진들은 (한눈에) 분류되고 정리된다. 그 이상은 아니다." 푼크툼은 연속적인 정보들의 행렬을 단시킨다. 그것은 균열, 단층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푼크툼은 극도의 강렬함과 응축의 장소이며, 그 속에는 뭔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내재한다. 푼크툼에는 스투디움에 특징적인 투명성과 명백성이 전혀 없다. "무엇인지 이름을 대지 못하는 무능함은 내적인 불안의 확실한 징표다. [......] 작용은 느껴지지만 작용이 나타나는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것에는 기호도 이름도 없다. 그것은 꿰뚫고 들어오지만 나의 내면 어딘가 불특정한 지대에 내려앉는다. [......]"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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