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A형 2017.3
허스트중앙(Hearst-Joongang)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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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완료


출산 후 불어난 뱃살에 경악하여 심기일전코자 집어들었으나 이제는 정녕 이 잡지와 작별할 때가 되었나 페이지를 넘기는데 예전 만큼의 깊고 진한 감명이 하나도 없고 그저 포스모폴리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는 탄식만 나온다. 기저귀 치우는 게 일과인 셀프 감금 생활 속에서 코스모폴리탄을 펼쳐드는 발상 자체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단 방증인가. 이제는 나보다 띠동갑 아래인 애들이 코스모 표지를 장식한다. 2535 여성들이 어쩌구 하는 표제도 눈에 띈다. 슬프다. 열렬히 애독했으나 끝내 코스모폴리탄은 커녕 코스모폴리탄 옷자락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로 이 잡지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오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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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나니 유방이 터질 듯이 부풀고 거기서 따스하고 말간 젖이 흘러나오고 그것을 내 아기가 쪽쪽 빨아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 커간다. 그러니까 서른여섯 해 만에 내 유방의 진짜 용도를 발견한 것이다. 유방은, 혹은 가슴은 외설인가? 부끄러운 것인가? 금기인가? 희롱의 대상인가? 희롱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대상인가? 그전에, 찧고 빻는 말들의 세계 속으로 호출되기 전에, 가슴에 관한 각종 사회문화적이고 타자적인 언설들을 걷어내면- 유방은 그저 생명을 살찌우는 지극히 실제적인 쓸모를 지닌 하나의 무구한 신체기관에 다름 아니었더라. 말간 젖이 흘러나오는 내 부푼 유방을 보면서, 이것을 아들에게 빨리면서, 이 신체 부위를 둘러싼 그 모든 시끄러운 말들을 읍소하는 유방의 육중한 실제성을 실감한다. 가슴과 유방과 젖꼭지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 치열하게 젖 빠는 세상 모든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것들이 떠오르고 그러면 문득 목울대가 저리다. 젖 줘본 사람은 안다. 유방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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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기가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하는 찬사는 아기한테 퍽이나 무례한 표현 같다. 실제로 보니까 아기는 충격적일 정도로 용맹스럽다. 젖꼭지를 매서운 기세로 낚아챌 때 아기는 마치 설치류를 사냥하는 어린 맹수 같다. 침 묻은 젖꼭지가 미끄러워 생각대로 잘 안 물리면 성난 짐승이 따로 없다. 그때의 울음은 거의 포효에 가깝다. 그리고 젖빠는 아기 눈빛은... 아, 이 눈빛은 정녕코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이 눈빛! <여명의 눈동자>에서 목숨걸고 다급하게 도주하던 최대치가 습지에서 꿈틀대는 뱀을 산채로 건져올려 껍질을 벗겨먹을 때, 그 이글대던 눈빛과 똑같다. 줄거리도 가물가물한 수십 년 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난데없이 떠오를 정도로 꼭 닮았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열심히 빨다가 배가 불러오면 속도가 점차 느려지면서 눈에 힘이 풀리는데 이건 또 <동물의 왕국>에서 저멀리 지평선 노을을 응시하며 얼룩말 넓적다리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아프리카 숫사자의 그 담담하고도 신산한 표정과 다를 게 뭔지? 최대치와 아프리카 숫사자를 감히 어찌 귀엽다고 할 수 있을까. 생에 대한 비장하고도 숭고한 열정 앞에서 그런 말은 차라리 모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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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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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경험들이 누나가 쓴 소설보다 훨씬 재밌어요. 누나는 왜 소설을 써요?" 대학후배 제훈이가 던졌다는 그 질문을 나도 하고 싶다. 실패자라고 자학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그 어떤 소설과도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거침없는) 인생을 살아오셨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여정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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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나의 힘 - 첫3년을 둘러싼 모든 것
윤재영 지음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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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동학자가 펴낸 육아서이지만 학문적이고 실용적인 정보 전달만을 위해 딱딱하게 쓰인 책이 아니다. 페이지마다 실려있는 자작시들 덕분에 잔잔한 육아일지 같기도 하다. "빠꼼이 눈을 뜨고 두리번거린다 / 무엇이 보일까, 무슨 생각을 할까 / 하품하고 트림하고 방귀도 뀐다 / 응가 하려나 / 얼굴이 빨개지며 힘을 준다 / 눈을 감은 채 / 찡그리고 미소짓고 소리 내 웃는다 / 무슨 꿈을 꾸는 걸까 / 누구와 대화하는 걸까"(19쪽) 이런 시들이 실려있는데, 아이 낳기 전에 읽었더라면 이런 맨숭맨숭한 시들한테서 과연 이렇게까지 큰 감동을 느꼈을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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