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온톨로지 -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
조중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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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이다. 사랑을 논하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고, 사랑으로 위장되거나 오인되는 ‘사랑 아닌 것들’을 걷어내고, 또 그 외 이것저것 결벽에 가깝게 “환각을 벗겨”내느라 품을 너무 많이 들였지만(지나치게 냉소적이고 엄밀한 저자의 성격이 이 책을 장황하게 만든 데 일조한 듯), 결론부에선 ‘세계에 대한 태도’로서의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

 

“사랑은 하나의 심적 경향이다. 세계와 하나가 되는 가운데 우주 만물이 모두 인연으로 얽힌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심적 경향. 사랑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나는 있다. 죽음은 없고 죽어가는 나만 있고 삶은 없고 살아가는 나만 있듯이. 따라서 사랑은 희구와 열망이지 손에 쥐어지는 어떤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아를 세계 속에서 소멸시키는 것을 전제한다. 무엇인가와 하나가 되려는 열망으로. 소멸은 수양이고 열망은 사랑에의 충동이다. 이 둘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아슬아슬하게 사랑의 희끄무레한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227)

 

“사랑은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 자체를 향한다.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윤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단지 신앙을 위한 신앙, 미를 위한 미, 윤리를 위한 윤리를 추구할 뿐이다. 거기에는 이유도 목적도 없다. 단지 그것을 향한 나의 충동만 있을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단지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에 대한 나의 충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대상을 향하지도 목적을 지니지도 않는다. 우리는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뿐이기 때문이다.”(237)

 

“세계는 단일하다. 그리고 그 단일자는 거미줄을 가진다. 수없이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우리는 그 거미줄 어딘가에 걸쳐 있다. 나의 연인, 나의 아내, 나의 아이 등은 이 수많은 거미줄에 같이 걸쳐졌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거나 결단이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선택은 없다. 수많은 우연 가운데 그 우연이 있게 되었다.

 

(...) 그 관계에서 최선을 다할 일만 남는다. 말한 것처럼 선택 자체가 우연이었다. 이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우연에 대해 우연 자체를 살자는 얘기이다. 이것이 사랑을 위한 사랑이다. 그가 필연적으로 나의 남편일 이유도, 아이가 나의 아이일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이 우연이다. 그렇게 우연히 우리는 해체될 것이다. 따라서 이 관계는 배타적일 수가 없다. 어디에도 운명이나 필연은 없기 때문이다.

 

창밖을 보라. 수없이 많은 영혼이 질주한다. 누군가 당신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고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특별한가? 모든 것이 전체를 이룬다. 이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어떤 인연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인연은 전체에서 돌출한 것이 아니다. 그 인연은 바로 나 자신의 나와의 인연이다. 거기에 타자는 없다. 모든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거미줄에 걸쳐진다면 나는 그가 누구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보살필 것이다. 그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이기 때문이고,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여기에서 사랑의 배타성이 사라진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을 위한 사랑’이다. (...) 당신은 누구라도 사랑할 것이다.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더 특별할 이유도 없고 다른 누가 덜 특별할 이유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세계에 만연하다. 만남은 만남일 뿐이다. 사랑은 당신 마음속에 있지 상대편의 사랑받을 특질이나 성취에 있지 않다. 당신은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들이 다른 특질, 다른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사랑했을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이 그랬다 해도 그들 역시 사랑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마도 이 사랑에 대한 추구 가운데 죽을 것이다. 무엇도 좋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나, 사랑의 노력 가운데 죽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획득은 권태 이외에 무엇이겠는가?“(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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