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정치학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3
홍성민 지음 / 현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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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디외의 이론에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경직된 계급 환원론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 책 후반부에 간략히 소개된 질 리포베츠키의 부르디외 비판에 눈길이 간다. 리포베츠키는 <행복의 역설>이라는 책에서 소비사회를 3단계로 구분한 뒤 구별짓기 효과는 2단계에서만 국지적으로 유효한 개념일 뿐이며 소비사회 이후에는 '과소비사회'가 도래한다고 했다 한다. 과소비사회에 대한 리포베츠키의 이론을 통해서 오늘날의 덕후 문화를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3단계는 개인의 취향이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소비의 패턴이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과소비사회(hyperconsumer society)의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과거의 상징적 투쟁의식이 부차적인 것이 되고, 극도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그래서 오락적인 가치가 명예보다 중요해지고, 자아의 행복감이 계급적 ‘구별짓기’보다 우월하게 여겨지며, 감각적인 안락함이 과시적인 기호의 효과를 누르게 된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상품의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지만, 이것은 계급적 구분을 위한 기능보다는 각자가 원하는 욕구에 걸맞은 정체성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소비사회에 팽배한 불안감을 극복하고 동족의식을 느끼게 된다. 특히 젊은 층이 브랜드를 선택할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기호와 취향을 확인하며, 이를 근거로 사회적 코드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처럼 물려받은 소속감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174쪽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심화되고 공고해져 갈수록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내면의 중심축과 자기언어 같은 게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계급 논리에 전적으로 수렴되지만은 않는 고유의 자기미학을 구축해 나가는 인간은, 끊임없이 독자적인 삶의 양식과 철학을 마련하고자 애쓰는 인간은 (비록 그것이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미완으로 끝날 지라도) 적어도 자기소외의 상황에 매몰되지는 않을 것 같다. 덕후질이란 것도 계급 논리를 초월하여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창조함으로써 고유한 자기미학을 정립해나가려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2 부르디외가 말하는 상징자본이나 문화자본이라는 것은,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적 경험이 전혀 없고 한 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철학이 온전히 보존되어온, 그 사회가 자긍심을 갖고 일구어온 정통적인 문화 가치 체계가 올곧게 살아있는 유럽 국가한테나 적용 가능한 개념인 것 같다. 서구 열강과 달리 식민통치에서 뒤늦게 벗어나 졸속성장한 한국사회는 오백 년 조선왕조의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이 깨끗하게 증발해버리고 대신 그 빈자리에 개도국 특유의 천민자본주의 정신과 졸부정신만 들어앉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거야말로 문화적 유아기 상태로의 전국민적 재부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왕조 오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일구어낸 클래식하고 귀족적인 문화와 가치와 정신이 식민지배 체제 속에서 말끔하게 전소되어버린 덕택에 전국민이 정신적 문화적으로 다 같이 평등해져버린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영국처럼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가 세분화되어 있다거나 국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무한경쟁의식을 장착하고 쾌락의 평등주의를 외치면 외쳤지.  

 

경제자본의 격차에 비해 문화자본의 격차는 고만고만한 우리나라와 같은 이런 환경에서는, 경제자본의 축적이 언감생심인 처지일지라도 감히 문화자본 축적에의 야망은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급문화자본의 축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문화자본의 습득이라는 것이 돈보다는 시간을 더 요구하는 특성이 있지 않나. 문화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므로. 내 생각은, 경제적 계급 상승이 구조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도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계급전복 만큼은 본인의 역량과 의지와 관심도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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