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철학사
F. C. 코플스턴 지음, 김보현 옮김 / 철학과현실사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헤라클레이토스는 흔히 '만물은 유전한다'는 명제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코플스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에 대한 주장은 그의 철학의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측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양성이나 변화'에 대해 말했다기보다, '다양성과 변화 속에서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는 단일성'에 대해서 말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본질로 '불'을 꼽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불'은 탈레스의 '물'이나 아낙시메네스의 '공기'와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있어서 불은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물질적 원소'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였다. 불이 이질적인 물체를 태우고 그것을 그 자신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듯이, 유전하는 세계 역시 존재자들의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을 '연료'로 삼아 지속된다고 본 것이다. 그의 '불'은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정도에 따라 타올랐다가 정도에 따라 소멸하는[잦아드는] 영원히 살아있는 불"이다.

 

갈등과 긴장에 대해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전쟁이 만인에 공통이며, 투쟁이 정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만물은 투쟁을 통하여 생성되고 소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 시대의 호전적 분위기를 감안하여 생각해 보면, 그는 대립과 긴장, 갈등을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유전하는 세계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다양성으로서, '한데 어우러짐'으로서 보았던 것 같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있어서 만물의 대립과 갈등은 일자의 존재에 필수적이며, 대립하는 만물은 또한 상호 불가분성을 갖는다. 마치 사물이 극단에 이르면 반드시 반대로 돌아온다는 주역의 가르침처럼 그도 "선과 악은 하나"라고 말하고, "상향의 길과 하향의 길은 같다"고 말한다. 일자 속에서 모든 차이와 긴장들은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로서 역동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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