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정 문학과지성 시인선 318
최정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겨울 유리창

 

그렇게도 부드럽게 목덜미에 그렇게도 다정하게 귓불에
그러다가 갑자기 낚아채듯 날렵하게
햇빛이 발꿈치를
햇빛이 발꿈치를 쫓아와 물어 뜯어

 

몸을 피해도 쫓아오고
캄캄한 방에 갇혔는데도
햇빛이
하백의 딸 유화의 허벅지로
어찔어찔하게

 

햇빛과 자고 하백의 딸
닷 되들이만 한 알을 낳아
그 알을 내다 버려도
뭇짐승이 핥고
아지랑이의 깃털이 덮어주어
으앙하고 한 아이가 알에서 걸어 나왔듯

 

너 깜깜절벽 꽝꽝 웅덩이
적막강산에 엎드려 만 번 절해라

 

그때처럼 잉잉거리게
햇빛이 벌떼처럼 달겨들어
혼자 있는 겨울 유리창
으앙하고 또 한 아이가 걸어 나오게

 

나도 여기 깜깜절벽 꽝꽝 웅덩이 적막강산에서 만 번을 절하면, 햇빛이 내 허벅지 사이로 어찔어찔 달려드려나. 발꿈치를 물어뜯는 햇빛이랑 슬프고도 무섭게 한 잠 자고서는 나도 알 하나 점지받을 수 있으려나. 내다 버려도 뭇짐승이 핥고 아지랑이 깃털이 덮어주는 그런 믿을 수 없는 알 하나를 쑤욱. 그러나 나는 (선천적으로) 유화가 아닌데다가 (후천적으로는) 신심마저도 부족한 것 같으니 이런 애석한 일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