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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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는 복종적인 대중이 지도자의 연설을 들을 때 발생하는 흥분, 자연현상에 압도될 때 경험하는 흥분, 종교적으로 고양된 상태에서 느끼는 흥분, 이 모든 것들이 자율신경체제의 성적 흥분(오르가즘)의 변형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상 원시사회에서는 종교적인 것과 성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이 모두 하나의 통일체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성적 예식과 종교 예식의 통일성이 깨지게 된 계기는 자연법칙에 기반한 가모장제 사회조직에서 가부장적 계급사회로의 이행에 있다. 가부장적 계급사회에서 종교적 흥분은 반(反)성적인 동시에 성을 대체한다. 종교는 성을 억압하고 타락한 것으로 만들면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성적이다. 오늘날 기독교 예배의식이 그야말로 엑스터시의 도가니인 것처럼. 

종교적 신비주의로 충만한 가부장 사회에서 인간의 성은 억압된다. 라이히는 성에 대한 억압이 인간의 가학적 충동을 강화한다고 본다. 성이 억압되었을 때 나타나는 도덕적 방어력(순수에의 열망, 순결함, 정조에의 집착)은 정치적으로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행복하게 결합한 파시즘 사회의 토대를 이룬다. 

아버지의 권위, 억압으로 인한 성적 갈등, 수동적이고 피학적 인간으로의 퇴행, 종교적 신비주의와 같은 항목들이 라이히의 성경제학 이론에서는 놀라우리만치 정교하게 엮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 따라 8장에서 라이히는 다음 테제에 도달한다.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성적 갈등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억압 구조 속에서 성적 갈등에 빠져 있는 대중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에로티시즘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성적 갈등을 해소해줄 수 있는) 파시즘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 

라이히의 이론은 놀랍고도 재미있다. 그의 글을 읽어나가는 나 역시 가부장적 규율 질서의 억압 속에서 자라난 평범한 중산 계층의 전형적 신경증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1세기 현대 사회는 오히려 성적으로 무한하게 발산할 것을 (심지어) 강요받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하지 마라’가 아니라 ‘마음껏 해라’는 사회가 아닌가. 성적 억압보다는 성적 분출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는, 그야말로 섹스왕국이 아닌가. 이런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사람, 종교적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이 넘쳐나는 까닭을 라이히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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