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샤를 보들레르 전집

샤를 보들레르 전집

전7권 / 심재상 역

 

  나다르 <샤를 보들레르> 

  파리, 1855년.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 서적을 선보여 온 열화당에서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자 현대성의 창시자, 그리고 당대에 뛰어난 미술비평가로 알려진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전집(全集)을 선보인다.

그간 국내에서 보들레르 저서의 완역은 『악의 꽃』 『파리의 우울』 『내면일기』 정도였고, 그 밖에 『인공낙원』이나 문학평론·미술평론 등은 거의 소개되지 못하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전의 보들레르는 시인으로보다는 당대의 뛰어난 미술평론가로서, 문학평론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삶을 주도해 온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현대성, 즉 모데르니테(Modernité)의 창시자로서 더욱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샤를 보들레르 전집’은 보들레르를 불멸의 시인으로 만들어 준 시집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은 물론, 아포리즘·에세이·단편소설·문학평론·음악평론·미술평론·서간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방대한 작업으로, 시인·미학자·문학비평가·미술비평가로서 보들레르의 전모를 온전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심재상 교수.

고급한 장정과 완미(完美)한 편집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될 이번 전집의 번역은, 꾸준하게 보들레르 연구에 매진해 온 시인이자 불문학자인 심재상 교수(관동대)가 맡았으며, 제1권 『악의 꽃』 출간을 시작으로, 차례로 전7권의 전집이 계속해서 출간될 예정이다. 역자 심재상은 195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불어과와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석사·박사학위논문 모두를 보들레르 시 연구에 바쳤다. 한국불어불문학회 이사를 역임하고, 현재 관동대학교 문과대학 프랑스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프랑스학회 이사, 한국불어불문학회 시 부분 논문심사위원, 한국프랑스학회 시 부분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1992년 등단하여 첫 시집 『누군가 그의 잠을 빌려』(1995)를 출간했고, 저서로 보들레르 연구서인 『노장적 시각에서 본 보들레르의 시세계』(1995), 역서로 『20세기를 벗어나기 위하여』(1996)를 낸 바 있다.

 

'샤를 보들레르 전집’의 구성

 

제1권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초판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동시대적 문제의식,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육박해 오는 ‘현대적 자아’의 존재론적 고뇌와 외로움, 절망과 희망을 파헤친 불멸의 시집. 『악의 꽃』은 이 세계와 언어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진정한 현대성, 진정한 새로움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근대인(近代人) 혹은 근대적 자아의 단일성을 거부하고 ‘현대적 자아’라고 불려 마땅할 새로운 인간개념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시집을 여는 순간 우리는 15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동시대적 자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한 강렬한 정신과 마주치게 된다. 존재론적으로 둘로 찢어진 ‘현대적 자아’의 경련 섞인 고뇌를 단말마적인 리듬으로 표현하고 이다.

 

제2권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

유일한 운문시집인 『악의 꽃』과 짝을 이루는 산문시집. 몽상하는 영혼의 물처럼 흘러가는 의식, 그 유연하고 유장한 리듬을 50편의 산문시의 형태로 구현해내었다.

 

제3권 내면일기(Jourarx intime)

보들레르의 미학적·형이상학적 사유를 잘 보여주는 120여편의 아포리즘들. ‘내면일기’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예술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밀도 높은 짧은 글들이다. 잘 알려진 「나심(裸心)」 「봉화(烽火)」 「위생(衛生)」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권 인공낙원(Paradis artificiel)

보들레르가 ‘능력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상상력, 진정한 시적 창조의 원동력인 상상력의 본질을 밝혀내려는 집요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인위적인 방식으로 실현된 창조적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인공낙원’은 시인 보들레르가 평생 추구한 ‘시적 건강상태’를 가장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보들레르의 유일한 단편소설인 「라 팡파를로」, 미완성작인 「젊은 유혹자」, 짧은 이야기인 「사랑에 관한 위안적 잠언들」과 「장난감의 모럴」을 함께 묶었다.

 

제5권 문학평론

문학 전반에 걸친 성찰을 담고 있는 글들의 모음으로, 「피에르 뒤퐁」과 같은 작가론과 「보바리 부인」과 같은 작품론들, 그리고 보들레르가 자신의 ‘운명적인 정신적 형제’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그의 작품들을 번역 소개한 에드가 앨런 포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을 아우르는 문학평론집이다. 더불어 바그너에 대한 보들레르의 유일한 음악평론을 함께 실었다.

 

목차

1. 젊은 문학도들을 위한 충고    

2. 교양적인 극작품과 소설들

3. 이교도파     

4. 보바리 부인

5. 이중의 삶    

6. 위고의 『레미제라블』

7. 피에르 뒤퐁  

8. 테오필 고티에

9. 몇몇 동시대인에 대한 고찰    

10. 셰익스피어의 생일

11. 에드가 앨런 포 연구들       

12. 리하르트 바그너와 파리에 온 「탄호이저」

 

제6권 미술평론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 인정받게 해준 도전적인 평론들의 모음집으로, 보들레르는 일련의 미술비평을 통해 자신의 예술비평 이론과 상상력 이론을 거침없이 개진하고 있다. 세 차례의 살롱 평과 1855년 만국박람회 평, 현대예술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보들레르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현대적 삶의 화가」, 현대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당대 화가라고 보들레르가 극찬하고 있는 들라크르와에게 바쳐진 「외젠 들라크르와의 작품과 생애」, 풍자화와 조형예술의 희극성에 대한 고찰 등을 담고 있다.

 

목차

1. 1845년 살롱  

2. 1846년 살롱

3. 1855년 만국박람회: 회화      

4. 1859년 살롱

5. 현대적 삶의 화가     

6. 외젠 들라크르와의 작품과 생애

7. 웃음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조형예술에서의 희극성에 대하여

8. 프랑스의 몇몇 풍자화가들     

9. 외국의 몇몇 풍자화가들

10. 철학적 예술 

11. 들라크르와로부터 셍-쉴피스까지의 벽화들     

12. 바자르 본-누벨의 고전박물관 

13. 「마르티네」전

14. 에칭이 유행 중이다  

15. 화가들과 부식조각사들

 

제7권 보들레르 서간집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과 선택, 무력감과 한몸뚱이가 되어 있는 드높은 자부심, 시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암중모색을 증언해 주는 보들레르의 주요한 편지들을 묶은 서간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선언]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선언

 

 


핵문제 해결 3원칙 제시




한반도 평화실현과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선언

선언배경

북한은 지난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최초로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미국의 적대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양보를 하지 않겠다면서 본격적인 대북 제재와 봉쇄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은 기약없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한반도 정세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앞으로의 정세를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6자회담이 재개될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3월부터 한반도의 정세를 가파르게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외화수입원을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제재와 봉쇄 수단을 강구하고 있고, 북한 인권대사를 임명해 북한인권법의 시행도 예정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로 북한과 대치 중인 일본은 추가적인 경제제재에 나서는 한편, 미국에 이어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3월 하순부터는 한층 강화된 형태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될 예정이고, 남북한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군사적 대치를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미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반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한반도의 급변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엄중한 현실에 주목해 핵문제의 평화적이고 조속한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실현을 촉구하고자 다음과 같은 원칙과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3원칙

우리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이고 조속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달성 ▲한반도 주민 의사의 우선적인 존중을 3원칙으로 제시한다.

첫째, 관련국들은 핵문제를 반드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또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무력 사용이나 추가적인 제재와 봉쇄 등 압박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될 뿐더러 한반도의 위기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북미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가 심각하게 위협받아왔다는 점에서 조속한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둘째, 관련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해온 인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개발․배치․생산․사용 및 사용 위협에 반대한다. 따라서 미국은 핵 선제공격 전략을 비롯한 핵 패권주의를 버리고, 북한 또한 스스로도 밝힌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접근 과정에서 한반도 주민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는 핵문제가 단일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안일뿐더러, 그 해결 방식 역시 다양한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는 현실적․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악화될 경우, 한반도 주민들의 생존권을 총체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국제사회가 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때, 한반도 주민들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할 현실적․당위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3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핵문제는 관련국들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각 국의 우려와 요구를 동시적으로 고려해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의 철회가 상호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아울러 북미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앞세우면서 검증과 보장을 강제하기보다는 가능한 수준에서부터 합의와 이행을 달성할 수 있는 정책적 유연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와 합의 도출을 위해 관련국들이 성실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6자회담이 현시기의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의 실질적인 협상을 거부하고 국제적인 대북 압박 구도로 활용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공존 의지와 실질적인 정책 변화 의사를 밝혀야 하고, 북한은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철회도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계기로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비료 지원을 비롯한 인도적인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의 차질 없는 진행을 촉구한다. 우리는 1993-4년 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전쟁 위기를 초래한 과오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넷째, 우리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정상회담 실현이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불안 요인을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한 정부는 중단된 당국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특사파견도 적극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여야가 당리당략 차원에서 핵문제를 접근하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국난을 해결하기 위한 초당적인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우리가 선언에서 밝힌 원칙과 입장에 조응하는 국회 차원의 초당적인 결의안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국회 결의안 채택은 남북한 정부와 국제사회 모두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를 추구하는데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올해가 광복과 분단 60돌, 6.15 공동선언 5돌이 되는 해임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날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2005년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해'로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린다.

2005. 2. 25
91개 시민사회단체 일동


21세기COREA연구소/6.15공동선언실현과한반도평화를위한통일연대/corea평화연대//KYC/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기독시민사회연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노동인권회관/노동자의힘/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녹색연합/다함께/문학예술청년공동체/문화연대/민가협양심수후원회/민족문제연구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연대회의/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족화합운동연합/민족정기수호협의회/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민주개혁을위한인천시민연대/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반미여성회/백범정신/보건복지민중연대/불교평화연대/불교환경연대/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사월혁명회/사회진보연대/서울통일연대/스크린쿼터문화연대/실천승가회/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우리문화동질성연구회/인드라망생명공동체/인천통일연대/자주여성회/전국공무원노조/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중연대/전국빈민연합/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학생연대회의/전북통일연대/전태일기념사업회/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참여연대/청년통일광장/통일광장/통일후원회/평화네트워크/평화를만드는여성회/평화시민연대/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의전화연합/한국YMCA전국연맹/한민족생활문제연구회/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 (이상 91개 단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쎈연필 > 헌책방 아줌마가 연 작은 전시관

▲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 깊어가는 저녁입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진 배다리 헌책방거리 밤 모습입니다. 사진에서 오른편 가운데에 있는 곳이 바로 <아벨서점>입니다.
ⓒ2003 최종규
<1>

"어떡하든 먹고 살지 못하겠어요?" 하던 <아벨서점> 아주머니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책장사 하면서 어떻게 하든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힘들면 힘든 대로 힘듦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삼으면 언젠가는 조금 살림이 피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한 평을 겨우 넘던 자그마한 책방을 꾸리던 젊은 아가씨였던 <아벨> 사장님은 이제 스무 평이 넘는 조금 넓은 책방을 꾸리는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일을 돕는 분도 여럿 계십니다.

묻히거나 사라질 뻔한 수많은 헌 책을 건져내온 서른 해가 넘는 세월입니다. 책이 좋아 헌책방을 열었다지요. 책 사러 오는 손님이 없어도 자그마한 가게를 빼곡히 채운 책과 함께 있으면 좋았다지요.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이 없어 배를 곯아야 했어도 당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은 더없이 푸짐했다는 서른 해 넘는 세월입니다.

<2>

▲ 전시장 간판 - 전시장을 알리는 간판입니다. 전시장 문을 연 지 한 달을 조금 넘긴 뒤에 달았습니다. 낡은 사무실을 빌려서 아주머니들이 손수 공사를 다 하신 뒤 이렇게 간판까지 달았답니다.
ⓒ2003 최종규
스무 해, 서른 해 넘게 헌책방 장사를 하신 분들 가운데 `그땐 몰랐으니 그렇게 귀한 책도 그냥 헐값에 팔았다'고 `당신인들 그런 책을 왜 좀더 오래 갖고 있고프지 않았겠느냐'고, `귀하고 자료 값어치가 높은 책을 요새 팔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퍽 됩니다. <아벨서점> 아주머니는 서른 해 넘는 세월 동안 `그런 드물고 중요하다고 하는 책' 가운데 `팔지 않고 고이 모셔둔 책'이 꽤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앞으로도 팔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책이 흘러온 역사"를 "새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들이 얼마에 팔리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하는 아주머니입니다. 지난 2003년 1월 첫머리에 문을 연 `아벨 전시관'에는 세 가지 품목을 늘어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줍니다.

▲ 박정희 할머님 이야기 - 박정희 할머님은 일제 강점기 때 `한글 점자'를 만든 박두성 씨 딸이자 환갑 나이에 `새내기 화가'로 등단하여 자신이 그림을 그려 번 돈으로 시각장애인복지관 여는데 바친 분으로 알려지기도 한 분입니다. 박정희 할머님이 당신 아이들에게 그려준 `육아 그림일기'입니다.
ⓒ2003 최종규
하나는 박정희 할머님이 당신 딸아이를 가르치고 기르면서 그려서 읽어주고 보여주었던 그림책. 원본을 전시관에 놓을 수 없어 칼라복사를 한 뒤 크게 뽑아서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림책 줄거리는 이를 잘 닦지 않아 이가 검고, 손도 잘 씻지 않아 손도 검고, 옷도 잘 빨지 않아 옷도 검었던 당신 딸내미에게 지긋한 말투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 닦기, 자기 양말이나 손수건쯤은 자기가 빨래해서 입으면 더 깨끗하게 옷을 입을 수도 있고, 빗질을 잘 하는 방법과 얼굴과 손을 잘 씻는 요령을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딸내미가 깨끗하고 인기 많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를 시샘하지만, 따뜻한 어머니 보살핌에 따라 자기 모습을 찾고 느끼면서 달라져요. 참 평범하고 어디서나 흔히 있는 집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손수 그림으로 그려서 아이에게 읽어주고 보여주면서 잘 살아가는 길을 일러주는 그림책을 보니 콧등이 찡합니다.

▲ 그림이야기 가운데 - 딸아이에게 그려서 보여주던 그림이야기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2003 박정희
다음으로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동안 인천 모습을 담은 그림엽서가 볼거리입니다. 헌책방은 인천에 있습니다. <아벨> 아주머니는 인천에 있는 그 헌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인천이라는 곳이 어떻게 달라져왔는가를 보여주고파 합니다. 나이 어린 아이들은 인천 역사를 잘 모릅니다. 역사를 모른다고 꼭 알아야 하지 않겠죠. 다만 자기가 발 딛고 살아가는 터전을 알아가는 일이 자기를 바로 알아가면서 참답게 살아가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역사를 가볍게 보아넘길 수는 없습니다. 예부터 살아오고 지내온 모습을 바탕으로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지난날 우리들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치면서 그 지난날을 바탕으로 현재가 있음을 가르치면 좋아요. 그러는 가운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를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이끌면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벨서점> 아주머니가 헌책방 살림 서른 몇 해 동안 모아오신 잡지들이 볼거리예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나온 수많은 잡지 가운데 우리 역사에 굵은 자국을 남긴 잡지, 남다르거나 재미난 모습을 담은 잡지, 독재자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도 이승만과 미국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만평을 실었던 잡지, 유럽과 미국이 온 지구를 식민지로 삼고 있을 때 `지구가 병을 앓는다'는 만평을 그려서 담은 일제강점기 때 잡지, 이승만 찬가를 부르던 잡지, 미국 찬가를 부르던 잡지…. 그동안 <아벨> 아주머니가 `팔았으면 적잖은 돈을 만질 수도 있었을' 바로 그 책들입니다.

<3>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태아에게 주는 편지,동천사(1992)>라는 책을 봅니다. 이 책은 1978년에 <사과를 따지 않은 이브,새벽>라는 이름으로 박동옥 씨가 우리 말로 옮겨서 내기도 했습니다.

... 너의 아버지가 두 번째로 전화를 걸었단다. 전화 목소리는 떨리는 음성이었다. 내가 결정을 했는지 어쨌는지를 몹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얼마 정도이면 해결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여자가 법적으로 아기를 갖게 되었을 때는 모든 사람이 축하하고 선물을 보내고, 혹시 유산이나 디지 않을까 걱정하며 몸조심하라고 권유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행복한 순간이냐.
그런데 나의 경우는 말문을 막고 서로 쉬쉬하거나 낙태시키라고 노골적으로 권유한다. 나의 심정을 공범자, 아니면 동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어느 때는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또 한편으론 누가 이기는가 두고보자는 결심이 서기도 한다 ..


혼인을 하지 않은 여성이 아기를 배었을 때 세상이 그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야기합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여성이 아기를 낳아서 기르려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합니다. 일터에서는 은근히 회사를 떠나주기를 바라고 병원에서는 은근히 아기를 떼라고 부추깁니다. 아기를 배게 한 애인은 `돈을 얼마 주면 되느냐'면서 아기를 떼라고 이야기하고요.

`미혼모'라고 하는 여성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아기에게 말합니다. "누가 너를 약 한 숟갈로 없앨 수 있다고 말하느냐" 세상 사람들에게도 말합니다. "당신들도 모두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느냐"고요.

▲ 낮은 걸상 - <아벨서점> 안에는 책손님이 앉아서 책을 읽도록 놓은 걸상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책을 꽂아놓은 자그마한 방에는 아이 키에 맞는 낮은 걸상이 있어요. 손님이 뜸할 때면 꼬마들은 다른 걸상에 발을 올려놓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2002.7)
ⓒ2003 최종규
<김 재은 엮음-교사를 위한 삐아제 입문,배영사(1974)> 상하 권을 봅니다. 이 책을 가만히 보니 겉에 `대한서림' 스티커가 붙어 있고 전화번호 국번은 두 자리로 찍혀 있습니다. `대한서림'은 인천에서 가장 큰 새책방입니다. 인천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책방이래 봤자 서울에 있는 중대형 책방 만한 크기이고 교보문고 1/4도 안 되는 크기입니다. 아무튼. 1970년대 인천 책방 흔적을 살짝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는 그 책방 모습이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그곳에서 책을 산 사람 느낌이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판이 끊긴 <이지누 사진-원천봉쇄,눈빛(1991)>도 만납니다. 사진책은 글책보다 훨씬 적게 팔리고 무척 빨리 판이 끊어집니다. 도서관에서도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사진책이 많다 보니 이런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아낌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서 보아 준 분들이 내놓아서 헌책방에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가 잦습니다. 요즘 나오는 사진책은 주머닛돈이라도 털어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책은 보통 다섯 해나 열 해만 묵어도 찾아보기 힘들고 돈을 더 얹어 준다고 해도 찾기 힘들어요. 좋은 사진책들이 안 나오는 게 아닌데 `책소개(서평)'를 거의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그림책 소개를 퍽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사진책'을 제대로 소개하는 글이나 기사를 만나기 참 어렵습니다.

▲ 책 자리 잡기 - 한창 공사하던 때(2003.1). 진열장에 놓을 잡지 원본과 속 내용 칼라복사한 것들입니다. 놓일 진열장 위에 자리를 먼저 잡아둔 뒤 자리를 보아가며 하나하나 진열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2003 최종규
우리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갑고 조촐하게 담은 좋은 책이라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모두 좋습니다. 어쩌면 요즘 쉽게 만나고 들을 수 있는 책소개는 우리 삶이 녹아든 살갑고 푸진 책을 소개하지 않고 우리 삶으로 다가오는 책소개가 못 되어 살갑고 조촐한 책 이야기를 만나기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너무 가볍게만, 너무 장삿속으로만, 너무 재미로만 책을 만나고 다가가고 생각하느라 정작 우리 모습을 담은 조촐한 책은 뒤로 묻히고 헌책방에서도 묻히지 싶어요.

<4>

<아벨> 아주머니는 함께 일하는 다른 아주머니와 함께 반 해 동안 공사를 했습니다. 전시관 얻을 터를 얻기까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잘 간수하는 한편 전시관을 열 터를 알아보았다지요. 전시관 터로 쓰기에 알맞은 곳을 알아본 뒤 그곳을 치우고 장판을 새로 깔고 벽에 칠을 하고 진열장을 짤 나무를 맞추고 유리를 맞추었습니다. 진열장 또한 손수 못질 망치질을 해 가면서 짰고요. 전기공사도 아주머니 두 손으로 다했습니다. 전시관을 열기 앞서 한 달 동안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다는군요. 그러고도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함께 일하는 다른 아주머니 모두 지쳐서 나가떨어지자 전시관 문 여는 걸 한 달 미루고 다 함께 `한 달 휴가'를 내기도 했답니다.

▲ 아주머니가 망치질을 하며 진열장 손보기를 마무릅니다. 돈 좀 더 주고 일꾼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서른 해 넘는 세월 동안 당신 책방의 모든 책장과 책꽂이를 당신 두 손으로 망치질, 못질해서 만들어 오셨고 전시장도 당신 두 손으로 가꿔서 열었습니다.(2003.1)
ⓒ2003 최종규
그렇게 한 달을 쉬고 다시 달라붙어서 전시관 여는 일을 마무리했고 2003년 1월에 비로소 세 가지 볼거리를 갖추고 문을 열었습니다.

전시관 구경하는 삯은 없습니다. 전시관 구경을 하신 분 가운데 `이렇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고 1000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시관 임대료나 그동안 준비하느라 든 돈이나 품값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씀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벨> 아주머니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곳을 찾는 분들이 `책이란 게 이런 거구나. 책이 이렇게 흘러왔구나' 하고 책을 느낄 수 있다면 좋다"고, "지금은 이렇게 어려운 속에서 전시관을 열어서 내 책방을 꾸리고 책을 파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책이란 게 어떻구나 하고 느끼고 책을 좀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전체로 봐서 우리 나라 책 문화도 좀 좋아지지 않겠어요?" 하고 이야기를 하며 전시관 구경하는 삯은 안 받겠다고 하십니다.

<5>

<아벨> 사장님은 이제는 아주머니이고 머잖아 할머니 소리를 들을 겝니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아벨> 사장님이 `소녀 적에 품은 작은 꿈'을 `나이 쉰 줄을 넘긴 아줌마'가 되어서 이루었다고요. 다만 아직 다 이루지는 않았어요. 아주머니가 품었던 자그마한 꿈 여럿 가운데 겨우 하나를 서른 해만에 이뤘을 뿐이거든요. 그렇다면 그 다음 꿈은? 글쎄... 다음 꿈은 어떤 꿈일까요?

헌 책 몇 권 팔아서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 생각을 하는 일로도 힘들다는 헌책방 일입니다. 하루하루 수많은 책을 나르고 만지고 돌보고 사고파노라면 저녁엔 온몸이 쑤시고 힘들고 코를 풀면 코가 시커멓게 나온다는 헌책방 일입니다.

그렇게 몸은 고단하고 지치지만 좋아하는 책이고, 그 좋아하는 책을 여러 좋은 사람들과 즐거이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다는 헌책방 삶입니다. 그동안은 책 파는 일로 즐거이 책을 나눠왔고 이제는 `현재 파는 책'으로만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함께 흘러온 시간'으로서 책을 보여주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지 싶어요.

▲ 책방을 찾는 손님이 뜸할 때면 이렇게 낮은 걸상에 앉아서 책을 읽으십니다. 그날그날 들어온 헌 책 가운데 당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요. (2002.봄)
ⓒ2003 최종규
좋은 책은 언젠가는 누군가는 알아내서 헌책방 구석에서 찾아내기 마련이고, 두껍게 쌓인 더께를 닦아내고 가슴 벅차할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랍니다. 읽을거리로 책을 사는 일도 좋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고 되새기고 갈고 닦는 길잡이로 책을 곁에 두는 일도 좋습니다. 책 한 권에 묻어온 흐름을 읽고 우리 사회를 헤아리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내다보는 일도 좋겠죠. 아기자기하며 조용조용 이야기를 건네오는 <아벨> 전시관을 구경하면서 널찍한 책방 가득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삶을 살찌울 책 한 권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032) 766-9523

- 국철(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찾아가면 됩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찾아갈 때는 역에서 나와 십오 미터쯤 앞으로 걸어가세요. 그러면 바로 왼편 뒤에 있는 지하상가 내리막길(계단 없는 비탈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지하상가를 다 빠져나온 뒤 오른편으로 꺾습니다. 그곳은 한복과 이불을 파는 누비골목입니다. 이 누비골목을 조금 오래 걸어서 다 빠져나오면 큰 찻길 건너편에 있는 헌책방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국철(1호선) 도원역에서 내린 뒤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인천 세무서 앞과 영화여자상업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는 길입니다. 첫걸음인 분들은 길 잡고 아무에게나 여쭤 보면서 찾아가시면 좋습니다. 이 길은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뒤에서 들어가는 길입니다.

- 인천에서 살고 계신 분은 동인천 `배다리' 앞을 지나는 버스를 잡아타고 배다리 철길다리 앞에서 내린 뒤 찾아가시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nemuko > 저도 이벤트 함 해볼랍니다....긁적긁적....

로드무비 님의 꼬드김에 빠져^^ 저도 함 해볼라 맘은 먹습니다만,

실은 말 꺼내 놓고 아무도 아는 척 안해주심 소심한 저 크게 상처 받고 서재 문도 닫을 지 모릅니다.... ㅠ.ㅜ

생각해보면, 첨 서재란 걸 만든 것도 2003년 11월 경이니 참으로 질기게 오래오래 여기 퍼티고 앉았습니다만 왼쪽 방문객수를 보시면 아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하루에 소소히 아는 분 몇 분들만 놀러와 주시는 조용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제가 다른 분들 서재에 놀러가서 몰래몰래 구경만 하고 댓글조차 변변히 못 남겼던 것도 부끄럼쟁이인지라 쉽사리 말도 못 붙혀서였답니다... ㅠ.ㅜ

그럼 대체 이벤트를 할려고 맘 먹는 핑계가 뭐냐 물으신다면, 뭐 5000도 이 속도로는 한참 지나도록 못 가볼테고, 위시리스트 당첨된 책은 아직 받아 보지도 못했고..... 이벤트 핑계대면 아무래도 모르는 분들도 쉽게 인사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속셈에 저도 할랍니다.

형식은 일정치 않구요. 저에 대한 느낌이나 해주시고 싶은 말씀, 혹은 저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첨 오시는 분들도 망설이시지 말고 아무 말이라도 꼬옥 남겨주세요. 여기저기서 얼굴은 봤으나 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여러분들 환영입니다. 모른척 하시면 저 정말 울어요...

기간은 2월 28일까지구요. 다섯 분 정도 뽑아서 책 선물 드리려 합니다. 만약 그 정도도 안된다면 ㅠ.ㅜ 접어야죠 뭐.

(세 분은 만원 상당의 책 사드리구요. 두 분은 제가 올린 책 중에서 두 권을 고르시면 됩니다.)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list.aspx?MCID=915792  여기서 고르세요^^

제 서재 놀러 오시는  분들 광고 좀 많이 많이 해주세요....

* 댓글로 남겨 달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페이퍼로 남겨 주시는게 제가 담에 두고두고 보면서 고마워 하기에도 좋을거 같아요. 그러니 이 카테고리에 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첨 해보는 거라 정신이 없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교육비 '1000만 대 0', 방학은 신분대물림의 적기

[기획] 방학과 빈곤에 얽힌 함수

 

김선영 기자 bono1523@hotmail.com

 

빵 1개, 단무지 2점, 게맛살 4조각, 메추리알 5개. 튀김 2개...
캐비어, 게살 스프, 연어 구이, 등심 스테이크, 시저 샐러드, 생과일 주스, 케이크...

방학 중 사교육비가 채 5만원이 안 되는 아이와 1000만원을 호가하는 '풀 코스 교육'을 받는 아이의 교육의 양과 질의 차이는, 두 아이가 먹는 이 한 끼 점심 메뉴가 그대로 말해 준다. 사교육비 비율 '1000 : 5', 때로는 '1000 : 0' 인 대한민국의 방학.
이 처참한 비율이 양산하고 있는 것은 빈곤에 빠진 아이들이 헤어 나오기 너무나 힘든 깊디깊은 '함정'이었다.


   
가난, 가난에 의한 교육 소외, 사회적 참여 배제 그리고 또 가난... 이렇게, 한 번 빈곤에 빠진 계층이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절대 빈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상을 '빈곤의 함정'이라 한다.

이 함정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그 사회에 유토피아적인 미래는 없다. 때문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미래를 위한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역점 사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교육, 교육, 교육." '교육'이야말로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절단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 해 8월 서울대학교 김대일 교수가 쓴 '빈곤의 정의와 규모'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빈곤한 이들이 끔찍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확률이 고작 6% 에 지나지 않는 '빈곤의 함정'에 깊이 빠진 나라다. 김 교수는 이 글을 통해 "한국의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빈곤의 세습성 때문인데, 빈곤의 세습은 고소득층과 빈곤층의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7배정도 혹은 그 이상 나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5년 1월, 우리 아이들의 겨울방학 풍경 속에서 김 교수가 '빈곤의 늪'의 원인이라 주장했던 '사교육비 지출 차이 7배'라는 말은 참 우스운 모양새가 돼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7배... 7배? 700배라면 모를까. 상상을 초월하는 교육비 지출 차이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은, '빈곤의 늪'에서 익사 직전이다.

1000의 아이들

분당에 사는 11살 원준이(가명)는 지금 한국에 없다. 미국에서 열리는 영어 교육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출국했기 때문이다. 원준이 어머니는 원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엔 연간 6개월 정도는 미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초등학생이 되니 방학 두 어 달밖에 외국에 나갈 시간이 없다는 게 불만스럽다.

"원준 아빠 직장 때문에 한국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또 어린 아이만 외국에 두는 것도 맘이 편치 않아 조기 유학 보내는 것도 마음이 안 놓이고요. 그래서 방학 때 짧은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현지에 보내 언어를 배우게 하는 거예요. 근데 여름 겨울 합해도 몇 개월이 안 되요, 너무 짧잖아. 아쉬워요, 아쉬워."

원준이가 간 영어 캠프는 3주 코스다. 미국 보스턴의 -원준이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면- '명문 학원'에서 3주 동안 '고급 영어'를 기본으로 문법, 회화, 프리젠테이션 연습 등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5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하버드의 도시 보스턴에서 프레피(미국 명문 대학에 입학 할, 미 동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프레피 문화를 익힐 수 있다는 것도 그 학원의 장점 중 하나라고 한다.

겨우 11살인 원준이가 방과 후 혼자 보스턴의 문화를 익혀봤자 얼마나 익힐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즈음, 원준이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원준이가 받고 있는 '수준 높은' 학원 교육을 자랑한다.

"한국 학생들 많은 그런 학원하고는 차원이 좀 달라요. 거긴 일본 상류층 학생들이나 유럽 쪽 아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한국 학생들이 많은 타 학원과는 달리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슬랭 같은 저급한 영어도 아이들이 안 쓰고 또 한국말을 전혀 쓸 수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하버드나 MIT가 학원 앞의 강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있으니까, 아이들이 보고 느끼는 게 다를 수밖에 없고요."

이렇게 남다른 '시청각 교육'을 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학원 수강료 270만원, 기숙사비 100만원, 항공료 130만원, 기타 용돈 50만원으로 총 550만원 선. "비용이 부담되시겠어요"라는 말을 건네자, 원준이 어머니는 이내 기자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보스턴 3주 코스는 미국 동부의 혹독한 영어 교육을 받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거든요. 그래서 방학 후반기 땐 스트레스도 해소해 줄 겸 다시 3주정도 스포츠를 겸한 영어 캠프에 보낼 예정이에요. 저는 공부만 강조하는 가혹한 부모들을 혐오하거든요. 애들이 좀 놀 줄도 알아야지."

미국에서 돌아올 원준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동남아의 고급 리조트에서 승마와 골프, 스킨스쿠버 등의 레포츠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는 -다시 한 번 원준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들에게 너무나 유익한 최고급 스포츠 교육 코스'였던 것이다.

"남자아이니까 운동도 잘 해야죠. 거기다 식사시간엔 풀코스 요리로 식사 매너까지 가르쳐 주니 금상첨화에요. 거기 오는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분도 맺을 수 있으니까, 부모로서 아이의 사교 영역을 넓혀 준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고요."

   
  ▲  해외연수를 떠나는 아이들
이렇게 3주 동안 원준이가 또래 친구들과 '말도 타고, 공도 때리고, 물장구 치는데' 드는 비용은 숙식, 교육 및 항공료를 모두 포함해 총 400만원 선. 그러니까, 겨울방학 동안 11살 원준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대략 보스턴 3주 코스 550만원에 동남아 3주 코스 400만원을 합해 950만원 정도인 것이다. 운동 장비 준비 같은 여행 준비 비용을 합하면, 1000만원도 쉬이 넘어간다.

여전히 비용에 큰 관심이 없는, 원준이 어머니는 "방학 중 웬만한 아이들은 다 이렇게 해외 캠프에 가요. 그래도 나는 학교 수업을 많이 빠지는 행동은 안 해. 방학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빠지면 다른 아이들한테 얼마나 피해가 되겠어요?"한다. 꼭 필요한 교육 일정만 마치면, 학교 교육은 뒤로 한 채 바로 외국에 나가버리는 부모들이 많다는 비꼼이었다.

실제로 원준이네 반만 해도 방학이 시작되기 1주일 전부터 해외 연수를 가기 위해 학교를 빠지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고 한다. 학부모와 담임 선생님의 동의서만 있으면 1주일 정도는 '합법적'으로 결석을 할 수 있는 '체험 학습'이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

"체험학습이라는 게 꼭 1주일로만 한정 돼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게 '교장 재량껏'이라는 단서가 있어서 학교에 말만 잘 하면, 방학 전 2주 방학 후 2주정도 결석을 해도 출석으로 인정을 해 준대요."

원준이 어머니는 원준이 친구, 아름이(가명)가 지난 여름 한 달 가량 학교에 나오지 않고 해외 연수를 갔던 것을 예로 들며, 학교에 '잘만 부탁하면' 한달 정도 학교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교육 일정도 마음대로 주무르며, 외국어 공부, 사교 매너 교육, 스포츠 활동에 열을 올리는 '사교육비 1000만원'대의 사람들.

"방학 중 교육 프로그램이요? 대부분이 사적으로 교육받으니까, 특별히 학교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방학 중 학생 참여 프로그램이라면 가끔 있는 스키 대회 같은 게 있긴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바빠서 참여율이 높지 않아요. 학교에서 공부시킨다고 해도 학부모들이 싫어해요. 각자 알아서 시키겠다는 분위기죠, 뭐."

서울의 한 사립학교 선생님의 말은 이렇게 '사교육비 1000만원 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하는지를 , 그들이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잘 웅변해주고 있었다.

5의 아이들

문정동에 사는 예림이(가명) 엄마는 얼마 전 초등학생인 딸, 예림이와 심하게 다퉜다. 아니 어린 딸을 심하게 혼냈다.

"아이가 수학교습소에서 개최하는 스키 캠프에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비용이 25만원이나 하는 거예요. 스키복은 어디서 빌린다지만, 당장 25만원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친정에서 돈을 빌린다 하더라도, 아이 취미 활동 2박 3일에 25만원은 지금 경제 사정으로는 너무 사치였고요. 아이 아빠 밀린 월급이 나온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해 봤을텐데, 그것도 기약이 없고... 다른 친구들은 다 가는데 왜 자기만 못 가냐고 떼쓰는 아이를 보면서 제가 너무 무능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를 탓한다는 게 괜히 우리 불쌍한 예림이한테 소리를 쳤죠.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엄마가 자기를 혼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 챈 예림이는 쑥스러운지 엄마 뒤에 숨었고, 예림이 엄마는 아이 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예림이는 방학 중 수학 교습소 한 군데를 다닌다.

교습료는 5만원. 사실, 요즘 소위 잘 나가는 학원은 초등학생 수학 단과 학원비만 해도 10만원이 넘는데, 예림이 엄마는 비교적 저렴한 수학 교습소를 선택했다. 아이 아버지가 다니는 화장품 수입 회사가 최근의 경제 한파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지 5개월 째. 많은 월급도 아니었는데, 그 조차도 5개월 째 밀려 있어 가정의 자금 사정이 극도로 안 좋아진 것이다.

예림이 아버지는 현재, 자신의 회사에서 간간이 화장품을 빼와 거리에서 몰래 판매를 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불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의 스키캠프는커녕, 지금 다니는 산수 교습소마저도 끊어야 하는 형편. 사실 9살짜리 꼬맹이의 '산수 교실'이 부모의 도덕성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는데, 아이 아버지는 이렇게 선수를 친다.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많이 하질 못했어요. 부모님이 많이 못 배운 분들이셨고, 워낙 시골 분들이라 제가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남들 다 다니는 주산학원 한 번 다니질 못했죠. 꼭 핑계 같지만, 어쨌든 부모님의 그런 태도 때문에 제가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그래서 저는 제가 밥을 한 끼 굶는 한이 있어도 우리 예림이 산수 교실은 보내려고 합니다. 저처럼은 안 만들 거예요."

아이가 학원 가방을 들고 "열띠미 하고 오게뜸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매서운 겨울 바람도 잊은 채 신이 나서 장사를 하는 예림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에게 5만원짜리 산수 교습소는 그들을 미래로 이끌어 주는 희망의 끈이었다. 설령 밥을 굶는 상황이 와도 절대 놓고 싶지 않은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

예림이는 이렇게 자신의 손에 희망의 끈을 꼬옥 쥐어주는 부모님이 계시는 행복한 아이이다. 공부하고 싶어도, 가족들이 훼방을 놓는 연주(가명)에 비한다면 더더욱.

0의 아이들

청주에 사는 연주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장래 꿈이 비행기 승무원이라는 연주는 세계를 누비는 멋진 승무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학원? 해외연수? 연주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무료로 학생들을 가르쳐 주는 교회 공부방으로 간다.

"학교에서 컴퓨터나 영어 같은 것 가르치기도 하는데요, 그것도 돈을 내야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선생님이 이것저것 물어 보면 다 공짜로 가르쳐 주시니까 진짜 좋아요. 아빠랑 오빠가 집에 있으면, 공부해 봐야 뭐가 달라지냐고 미용 기술이라도 배워서 빨리 돈을 벌라고 소리만 지르는데, 여기에 와서 선생님한테 비행기 승무원 이야기도 듣고 하면 제가 진짜 승무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진짜 진짜 좋아요."

학교에서 제공하는 2, 3만원짜리 방학 교육도 너무 큰 부담이었던 연주. 아버지와 오빠의 성화에 맘 편히 집에서 책 한번 펴지 못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몰래, 오빠 몰래 집안 살림을 다 해 놓고 공부방으로 달려오는 아이. 14살의 나이로 집안의 어머니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연주는 '가난'이라는 버거운 삶의 무게 때문에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연주네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이고, 어머니는 연주가 5살 때 돌아가셨다. 연주 아버지는 벽돌 쌓는 일을 너무 오래 하신 탓에 오른 쪽 어깨 골절이 다 마모 돼 큰 힘을 쓰는 일을 하지 못하신다. 건설 현장에서 오른쪽 팔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큰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

연주의 아버지는 지난 가을까지, 깜깜한 새벽부터 인력 시장에 바지런히 나가보았지만, 그를 데려가 주는 고용주는 거의 없었다. 추운 겨울이라 더욱 더 일거리가 없는 요즘 연주 아버지는, 폐차 직전 누군가가 거저 준 차에 성인용 비디오 테이프를 잔뜩 싣고 도로에서 장사를 한다.

그런데 돈을 벌기는커녕 그 애물단지 자동차 때문에 연주는 이번 방학 때, 시에서 주는 무료 급식도 못 먹을 뻔했다. 방학 중 무료급식 대상자엔 '자가용이 있는 집은 제외'라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급식까지는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먹을 수 있었는데, 학교에서 하는 방학 중 컴퓨터 교육이나 영어 교육까지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 고물차 때문에...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말해 볼 수는 없었는지 연주에게 물었다.
"저희 담임 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셔서, 우리 차 때문에 무료 급식도 안 되는 건데 되게 만들어 주셨거든요. 그런데 방학 때 수업까지 공짜로 듣게 해 달라기도 죄송하고, 또 애들은 다 학원 다니느라고 방학 때 학교 안 나오는데 나만 학교 가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연주의 대답 속엔, '왜 저의 가난함을 드러내며 누군가에게 무료 수업을 '사정'을 하지 않았느냐고요? 너무 잔인하지 않으신가요?'라는 물음이 숨어있었다. 이제 곧 사춘기에 접어들 14살 연주, 그리고 학교를 일찌감치 그만 둔 연주보다 두 살 많은 오빠 연철이(가명). 한 명은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그 늪 속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빈곤의 함정에 빠진 사교육비 '0' 계층의 모습이다.

오만을 거둬내자! '교육'을 시작하자!

2005년, 한국의 교육 복지는 이와 같다. 한국교육개발원 이혜영 연구원이 '도시 저소득 지역의 교육소외 실태와 분석조사'라는 연구에서 "고소득 지역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 속에서 자라는 저소득 지역의 아이들은 (바람직한 역할 모델들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장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 성취 동기의 부재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듯이, 방학 중 사교육비 1000만원인 아이들과 5만원 정도인 아이들 그리고 0원인 아이들은 성장 환경 속의 문화적 자본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교육 환경의 차이는 더욱 심화된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아이들은 급식표를 들고 저소득층 무료 급식을 광고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거나 웬만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외면하는 방학 중 교내 수업에 쑥스럽게 끌려가 앉아있어야만 한다.

이는 교육의 '질'적 측면은 도외시한 채,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가 공급하지 않느냐'는 식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일방적인 행정 편의주의에서 비롯된다. 교육 복지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지적되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복지의 폐해'가 현재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 해 12월 교육인적자원부는‘도시 저소득지역 교육복지종합대책을 발표해 실질적 교육평등을 실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50여개의 시민단체들도 빈곤의 대물림을 끊자는 취지에서 '위 스타트(we start)'운동을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러한 운동들은 그동안 존재해 왔던 방과후 아이들 무료 교육, 무료 급식, 저소득층 소질 개발 교육 등을 중심으로 하고있어 그 형식에 있어서 기존의 교육 복지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기존의 저소득층 인적 자본 형성을 통한 경제적 경쟁력 확보라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든스가 강조하는 폭넓은‘사회적 포용’의 단계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것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지역사회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게 이끌어 주고, 교육 환경의 평등, 적극적인 복지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전 사회로 퍼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도 저소득층 무료 급식자가 누구인지 모른 채 동등한 입장에서 교육을 받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 사회에서 저소득층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가에서 미리 적극적인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그 누구 앞에서도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정'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힘 때문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1000: 0은 너무 가혹하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빈곤의 함정에서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Please Star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