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타자는 모든 타자다tout autre est tout autre
이 문장은 일차적으로 동어반복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이 때 이 문장은 "모든 타자는 모든 타자다"로 읽을 수 있다. 이 경우 이 문장은 항상 참이지만 아무런 새로운 지식도 제시해주지 못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또한 (2) "모든 타자는 전혀 다르다"로 읽을 수 있다. 곧 하나하나의 타자들 각각은 서로에게 환원될 수 없는 전적으로 다른 것들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1)이라는 외관 내지는 허상 아래 숨겨진 (2)라는 본질, 진리를 말하려는 것일까? 오히려 이 명제의 묘미는 이처럼 두 가지(또는 그 이상)의 상이한 의미들이 결합되었을 때 생기는 효과에 있다. 곧 이 명제는 (1)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동어반복을 말하는 것처럼, 따라서 전통적인 논리학 및 존재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동일율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바로 이러한 동일율의 되풀이를 통해 이 동어반복 명제를 (2)에서 드러나듯이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모든 타자들 각자의 타자성을 긍정하는 명제로 바꾸어놓고 있다.
(3) 하지만 동어반복 내에서 타자론heterologie의 드러남, 파열은 다시 동어반복의 형식으로 바뀐다. 이 때의 동어반복은 "전혀 다른 자는 전혀 다른 자이다"라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곧 신이라는 전혀 다른 자, 인간과 다르고 동물과 다르고 기타 모든 유한하고 무한한 존재와도 다른 전혀 다른 자는 전혀 다른 자이다라고 표현하는 것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전혀 다른 자가 전혀 다른 자이다라고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 때문에, 데리다가 본문 2부 마지막에서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의 서명에 대해 말하듯 서명은 실패하게 된다. 신이라는 절대적 환유, 절대적 타자성은 그것이 절대적 타자성이다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유한한) 존재자들, 모든 (유한한) 존재자들로서의 타자들과 다르면서도, 늘 이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이들에 앞서 절대적 타자, 절대적 환유의 이름으로 미리 서명했(던 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혀 다른 자는 전혀 다른 자이다"라는 동어반복 문장은 전혀 다른 자는 각각의 독특한 타자들과 전혀 다른 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전혀 다른 자와 각각의 독특한 타자들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문법적·논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4) 따라서 이 문장은 고도의 사변적sp culatif 진리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 사변적 진리를 작동시키는, 또는 이 사변적 진리에 항상 이미 따라다니는 거울반영sp culation의 법칙을 보여준다. 이 거울반영의 법칙은 사변적 진리에 항상 수반되지만 사변적 진리가 포함하지 못하는, 일종의 사변적 진리의 유령일 것이다.
이 문장은 이런 측면들로 모두 소진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장에는 이외에도 더 많은 의미, 더 많은 비의미들이 담겨있으며, 그것들을 읽어내고 전개하는 것은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이 문장에 관한 데리다 자신의 논의는 Donner la mort, Galil e, 1997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