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심심한 제목이다. 도무지 마땅한 제목 하나 없어 덜렁 요일을 적고 있으니.

비가 내린다. 많이 내린다. 많이...? ...여전히 심심하다.

 오락가락,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 또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이 나이 되도록 여전히 철이 덜 나 있으리라고 예전에 짐작이나 했을까? 여전히, 똑같은 질문, '뭘 해야 되지?' .이런 질문과 조급증으로 나를 시달리게 해야 하다니.

일없이 오늘은 이 방에 와서 놀고 있다....

달걀을 일곱 개 부쳤다. 딸이 방학했다. 학교에서 애들끼리 밥을 비벼 먹기로 했단다. 달걀 여섯개 부침과 참기름과 밥과 숟가락이 있어야 한단다.

냉장고엔 달걀이 네 개 밖에 없었다.

아침에 달걀을 사서 부쳐서 가져다 주마고 했다.

아침엔 문을 열고 있는 수퍼마켓이 드물다. 이것도 예전과는 다르다. 우리 어렸을 땐, 새벽같이 문을 여는 동네 하꼬방들이 있었다. 제일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덜커덩거리는 양철 덧문을 열고 먼지를 털어내는 새벽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아침 일찍 애들 도시락 찬이라도 챙겨줄라치면 마땅히 문 열고 있는 가게를 찾을 수가 없어 곤혹스럽다. 한번은 김밥에 넣을 쏘세지를 사려고 차까지 몰고 나가 몇 블럭을 돌아다닌 적도 있다.

아, 이젠 24시 편의점을 찾으면 되려나? 가까운 편의점이 어디더라...?

상가 지하의 큰 마트에 비해 초라한 1층의 구멍가게가 마침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혹시... 달걀 있어요?"  조심스레 물었다.

계산대에 소설책을 펴놓고 보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고갯짓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마침 무슨 상자곽들 위에 달갈 한 줄이 덜렁 놓여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집어왔다. 다행히도 유통기한은 24일까지이다.

께름함이 없진 않다. 생협에서 유정란을 사 멕였는데, 학교에 가져갈 거라고 그냥 동네 가게에서, 냉장고도 아닌 노상에 그냥 놓인 달걀을 '유통기한'만 믿는 척(!)하며 가져다주려니 다소 양심에 걸리적거림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누? 3일전 주문이어야 하는데, 이건 갑작스런 요구가 아니었나말이다, 하며 양심을 달래본다.

달걀을 여섯 개 부치고 일곱 개째 부치며, 요 하나를 먹어버릴까말까 하다가 그냥 일곱 개 가져가기로 했다. "우수리다!"

학교 담벼락을 타고 슬슬 걸어갔다. 어디쯤에서 담 위로 넘겨줄까...? 무심히 걷다보니 점점 울타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뿔싸, 안되겠군. 다시 몸을 돌려 어슬렁거렸다.

딸애가 친구들이랑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낼름 받아간다.

달칵, 10여분 나갔다 왔을 참인데 콩콩이 녀석이 또 온몸을 들썩이며 덤벼들 듯 나를 반긴다.

"저리 가, 이눔아"  '나, 너 무쟈게 부담스러워...인석아'

사람사이의 스킨쉽도 어색해하는 주제에 개새끼의 스킨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무쟈게 스트레스다.

모른 척 하려는데, 갑작스레 지축을 울리는 요란한 천둥 소리에 녀석도 기겁을 하고 놀래서 "컹!" "컹!" 두 번 짖는다.  하는 수 없이 안아서 쓸어줬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내려놨더니, 녀석은 대강 눈치를 보다가 또 어느 틈에 아들놈 침대 위로 올라가서 포근히 잠들어 있다.

오늘 첨으로 묵주를 잡았다. 책에 나온 대로 9일 기도를 해보기로 했다. 모르지. 간당거리는 신심이 좀 힘을 좀 받으려나?  청원기도라...

비는 계속 온다.

오늘은 꼭 단학원에 가야지. 이번 일주일 내내 하루도 못갔다. 오늘 가면, 일주일 끝이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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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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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와 같이 본 책입니다. 같은 사람이 쓴 책이네요.
<..혜원의 그림...> 책은, 신윤복의 풍속화를 꼼꼼이 살펴볼 수 있게 합니다. 그저 국어책이나 국사책에서 잠깐 흘려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림 속의 풍경들이 실제 사람 사는 풍경으로 생생하게 살아나옵니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는 것이 새삼 중요하구나싶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봅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 비슷합니다. 약간 중복된 내용도 있네요. 글쓴이의 '이면의 역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조선시대가 왕의 역사, 양반의 역사로만 보여져 왔다면 표면의 그런 역사 뒤에 또다른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것같습니다.
관점을 달리 해서 주변을 살피면 정말이지 그런 흔적도 적지 않을 듯 합니다.  스스로 너무 도식화된 틀의 역사교육에만 길들여져 있었구나 깨닫게 되구요.
이런 책들을 볼 때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서 다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느낌과, 어울림.

역사에 관한 책같지만 딱딱하기 보다는 사람 살이에 관한 얘기들이라 편안하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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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
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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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내용이 궁금했던 책인데, 참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미암 유희춘의 개인일기를 바탕으로 16세기 조선시대 풍경을 풀어 쓴 책입니다.
엮은 이의 말마따나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로만 인상지워진 조선시대에 관한 인식을 가볍게 튕겨버리는 상큼하고 유쾌한 책입니다.
소소한 일상이나 사회적 풍경을 통해 보이는 모습들이, 지금 우리 시대나 마찬가지거나 오히려 더 당당한 남녀 평등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양반 사회에 한정지어진 것이긴 하지만요.(책속에서)
미암과 그의 아내 덕봉이 지닌 각각의 재산과 노비 등은 말로만 부부개별채산이니 뭐니 떠드는 현대인의 농담 따위를 도리어 무색케 합니다.
덕봉의 노비를 미암이 첩에게 보내주자, 자신의 뜻을 묻지도 않고 줘버렸다고 (첩에게 주었다는 것보다, 자신의 노비를 미암이 맘대로 보내버렸다는 것에 대해) 노여워하는 덕봉에게 '옳으신 말씀!' 하는 의미로 미안해하는 미암의 모습이 과거 속의 인물이 아니라, 그냥 주변에서 친숙하게 보여지는 그런 인물처럼 살갑게까지 느껴집니다.

그 시절에는 양반이라면 의례껏 수십칸 집에 모든 가족이 같이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미암은 벼슬하느라 혼자서 한양에서 집을 얻어(빌려) 따로 살고, 아내인 덕봉 혼자서 고향에서(담양, 장성 등지) 식솔 거느리고, 가산 늘리며 살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숱한 주말부부들처럼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아내를 불러올려 같이 살게 되기도 하구요. 올라와 엉망인 살림을 보며 덕봉은 남편에게 아무리 무심하기로 살림이 이게 뭐냐는 식의 잔소리를 해댑니다. 영 옛날 얘기같지가 않습니다.

한양생활을 혼자 하던 미암이 수개월 동안 여색을 멀리하였음을 자랑하는 서신을 덕봉에게 보내자, 덕봉은 그게 어찌 아내에게 자랑할 일이냐고,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으려는 자의 당연한 처신이 아니느냐고 준엄하게 꾸짖고, 그렇다면 자신 또한 미암에게 자랑할 일이 어찌 없겠느냐, 당신 어머니 돌아가실 때 수발을 내 혼자 지성으로 다 하지 않았느냐,.....모쪼록 잡념을 끊고 기운이나 보양해라, 는 단호한 답장을 보냅니다.
지하철에서 이 대목을 읽다가 유쾌하고 재밌어서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답장들이 구구절절 옳은 소리라며 써놓은 미암의 일기가 소박하고 순진하게 보입니다. 
남편의 부모(시부모)를 내 부모보다 공경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신 부모 내가 이렇게 받들지 않았느냐고 아내가 남편에게 내세울 정도였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만 시대적 배경을 조금씩 달리할 뿐 그 안에 들어 있는 자잘한 부대낌 따위는 결국 모두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연히 고리타분할 것같은 조선시대에 관한 책, 이란 이미지를 떨쳐주는 재밌는 책이네요.

줄지어 나온, 조선시대 풍경 이야기들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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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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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황석영.
소설을 따라가며 빠지기보다 자꾸만 작가한테 생각이 머문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야겠지? 이렇게...동남아를 아우르는 소설을 쓰려면...자료는 또
얼마나 열심히 모으고 살펴야 했던 것이람?....이 사람은 중국어, 일본어 등등을 얼만큼 하는 것일까?.....심청, 이라니...고정관념, 이미지가 고정된 고유명사, 인물을 재생산 해내는 능력이라니...

책을 덮을 무렵 평론가의 글을 보자니, '심청'을 새롭게 해석한 게 또 황석영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채만식, 이청준...아, 나같은 독자의 무식이라니.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져 연꽃 위에 다시 피어난 아리따운 효녀였던 심청이 황해를 건너고, 중국에서 싱가포르, 일본 등 동남아를 팔려다녀야 했던 매춘녀로서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소설 속에 다시 태어났다.

매춘으로서의 성 묘사가 거북하다기보다는 마치 일상의 행위처럼 자연스럽다.
매춘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행해지게 된, 그저..삶으로서의 묘사로 받아들여진다. 사이사이 무력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가슴 먹먹하게 서글프기도 하고
매몰되지 않고 살아 있는 작중 인물의 강인한 의지에 탄복하면서 읽어냈다.
약간의 거부감도 없진 않다. 역시나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인가?
인물도 탁월하고 재주도 탁월하며 의지 또한 남다른 인물. 나름대로의 주어진 상황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할 줄 아는 그런 능력 있는 인물로 그려진 심청,이다.

2권째 후반부에서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은 작가의 욕심이 다급하게 몰아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부에 비해 흐름이 끊기는 부분들이 없지 않은 듯하다.

어쨌거나, 대단한 작가다. 나이들 수록 더 호감이 가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끼'가 넘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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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범우 사르비아 총서 209
박지원 지음, 전규태 옮김 / 범우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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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녀석이랑 '국사'를 공부하다가 조선말기 북학파니 뭐니 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호기심이 부쩍 일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열하일기' 범우사 문고판이 작은 가방에도 쏙쏙 들어가기에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보았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가 무려 26권으로 쓰여진 책이란다.
그러니 내 손에 들린 책은 아주 간략한 축약본에 지나지 않아 도무지 '열하일기'의 본맛을 어찌 알 수 있겠나 싶지만 이 간략한 책만으로도 박지원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끌림이 만만치가 않다.
막연히 국사책에 덜렁 이름만 올려져있던 때의 이미지가, 구체적인 한 존재로 내 옆에 서 있는 듯 하다.
'고전'같은 맛이 덜하다. 그만큼 생동감이 있다는 의미이다.
곳곳에 박지원이라는 인물의 '사람냄새'가 난다.
고리타분한 유교경전에 갇히지 않은 자유롭고 호방한 지식인의 모습.
압록강에서 요양까지 보름간, 십리하에서 소흑산까지 닷새간, 신광녕에서 산해관까지 아흐레 동안,....이런 식으로 26권이 쓰여져 있단다.
청나라를 살펴보는 박지원의 관심은 크게 틀에 매이지 않았으나 무심하지도 않으며 ,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관찰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세심한 그의 탐구력과 지적 호기심, 특정 문물에 뒤쳐진 내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건물, 도로, 사람들을 살피는 박지원의 세밀한 시선, 수시로 자유롭게 청족들을 접하며 필담을 나누는, 격의 없는 자유인의 호방함 등이 200여년 전의 인물 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현실감을 주며 옆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실용적 과학이나, 공상적 과학(이런 말도 있나?)이나, 철학, 유학,...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이 만만치 않다.
천천히 읽으며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새삼 탄복하고, 열하일기 全文에 대한 호기심이 한참 이는 동안, 어느 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다. 아니, 누가 그새 박지원을 훔쳐갔담?
마치 남모르게 혼자 좋아하던 숨은 스타를 다른 누가 덜컥 알아채버린 듯한 그런 느낌.  하긴 나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쨌건 하는 수 없이 '열하일기' 원문 볼 재주는 없고 해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앞 몇 장을 보았는데 어쩐지 선뜻 계속 읽어지지가 않는다. 왠지 망설여지는 이 기분은 뭘까? 내가 가진 느낌을 잃어버릴 것같은...? 빼앗길 것같은...? 저자의 통통거리는 글이 과연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의구스러움?
하여간 책 제목의 '유쾌'를 따오자면 박지원은 참 '유쾌한 인물'이다.

한문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가 직접 보게 될 날이 있게 되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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