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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209
박지원 지음, 전규태 옮김 / 범우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작은 녀석이랑 '국사'를 공부하다가 조선말기 북학파니 뭐니 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호기심이 부쩍 일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열하일기' 범우사 문고판이 작은 가방에도 쏙쏙 들어가기에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보았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가 무려 26권으로 쓰여진 책이란다.
그러니 내 손에 들린 책은 아주 간략한 축약본에 지나지 않아 도무지 '열하일기'의 본맛을 어찌 알 수 있겠나 싶지만 이 간략한 책만으로도 박지원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끌림이 만만치가 않다.
막연히 국사책에 덜렁 이름만 올려져있던 때의 이미지가, 구체적인 한 존재로 내 옆에 서 있는 듯 하다.
'고전'같은 맛이 덜하다. 그만큼 생동감이 있다는 의미이다.
곳곳에 박지원이라는 인물의 '사람냄새'가 난다.
고리타분한 유교경전에 갇히지 않은 자유롭고 호방한 지식인의 모습.
압록강에서 요양까지 보름간, 십리하에서 소흑산까지 닷새간, 신광녕에서 산해관까지 아흐레 동안,....이런 식으로 26권이 쓰여져 있단다.
청나라를 살펴보는 박지원의 관심은 크게 틀에 매이지 않았으나 무심하지도 않으며 ,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관찰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세심한 그의 탐구력과 지적 호기심, 특정 문물에 뒤쳐진 내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건물, 도로, 사람들을 살피는 박지원의 세밀한 시선, 수시로 자유롭게 청족들을 접하며 필담을 나누는, 격의 없는 자유인의 호방함 등이 200여년 전의 인물 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현실감을 주며 옆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실용적 과학이나, 공상적 과학(이런 말도 있나?)이나, 철학, 유학,...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이 만만치 않다.
천천히 읽으며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새삼 탄복하고, 열하일기 全文에 대한 호기심이 한참 이는 동안, 어느 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다. 아니, 누가 그새 박지원을 훔쳐갔담?
마치 남모르게 혼자 좋아하던 숨은 스타를 다른 누가 덜컥 알아채버린 듯한 그런 느낌. 하긴 나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쨌건 하는 수 없이 '열하일기' 원문 볼 재주는 없고 해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앞 몇 장을 보았는데 어쩐지 선뜻 계속 읽어지지가 않는다. 왠지 망설여지는 이 기분은 뭘까? 내가 가진 느낌을 잃어버릴 것같은...? 빼앗길 것같은...? 저자의 통통거리는 글이 과연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의구스러움?
하여간 책 제목의 '유쾌'를 따오자면 박지원은 참 '유쾌한 인물'이다.
한문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가 직접 보게 될 날이 있게 되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