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여자에게 - 스무 살이 되는 당신
장영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가 자라서 언젠가는 부모 품을 벗어나리라 막연하게라도 상상을 했던 때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스스로 원하는 전공을 택하다보니, 불현듯 딸이 내 품을 떠나게 되었다. 최소한 6년은 떨어져 살아야 할 세월이 눈앞에 닥쳐왔다.

아, 이런. 아직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였을까, 자연스러운 사춘기를 겪으며 아이가 부모보다는 친구와 더 가깝게 지내게 되던 시절.

 하루 온종일 자율학습까지 포함한 시간들을 학교에서만 보내다가, 한 번의 입시 실패를 겪고 역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과 도서관으로만 돌던 아이, 그런 아이를 아예 다른 지방으로 떠나보내야 하게 되었으니 한동안은 겉잡을 수 없이 마음이 착잡하고 불안정해졌다.

아침 밥상에서, 저녁 식후에, 그렇게 느긋하게 잠깐씩이라도 TV뉴스를 보며, 혹은 신문에서 읽은 내용들을 떠올리며 세상 얘기도 나누고, 자잘한 일상에 대해 가려진 가치관들을 살짝 두드려 살펴보기도 하면서, 더 긍정적인, 온전한 존재로 키우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미처 그런 틈을 주지도 않고 훌쩍 떠나보내야 하다니.

스무 살.

내가 스무 살 무렵에 어땠을까?

결국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잔소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겠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아이에게 무언가를 일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은, 지난 세월 겪었던 무수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이리라.

그랬다. 욕심이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아이가 다시 겪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었고, 혹여 내가 미리 일러주었다고 해서 별다르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도 할 수 없을 것이며, 내가 잘못 겪어낸 시간들이 있었다고 해서 내 아이도 똑같이 그렇게 지내지도 않을 것인데,

미리서 조바심 내는 것은 그야말로 '노파심'인 것이다.

그래, 주어진 것은 네 삶이고, 네 길이다.

부딪고 깨지면서, 아파하면서 극복해내겠지.

어쩌면 훨씬 더 강하고 슬기롭게 잘 살아낼 텐데, 소심한 엄마의 쓸데없는 걱정만 앞서는 것이다.

그러다가,  신문 광고에서 이 책을 보았다. 몇 명의 낯익은 이름만 보고서 썩 실패(?)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로 구입했다.

딸 손에 들려주기 전에 훑어보면서, 피식 웃기도 했다.

그래, 우리 때는 그런 말도 했었지. "왜 전에 우리한테 이런 걸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지?"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며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다소 약할 지라도,

충분히 현실적인 조언이 될 수 있을 그런 내용들이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앉아 잔소리를 해주고픈 엄마의 조바심들을 이 책으로 살짝 덜어본다. 이미 개학을 해서 일주일을 보낸 딸이 다니러오면 건네줄 책들을 고르고 있다. 그 위에 한 권 더 얹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생 소설입니다.
중학생 소설, 이라고 하니까 고등학생 딸아이가 "중학생이 썼어?" 하네요.
"아~니."

워낙 뛰어 노는 데 정신을 쏟는 중학교 1학년 아들 녀석 손에 어떻게든 책이라도 쥐어줘보려고,
중학생 권장도서 중 몇 권을 골라 보여주었습니다.
한나절 꼬박 녀석이 맛나게 읽었습니다.
"엄마, 재밌어. 친구들한테 다 보여주고 싶어." 이러네요.
어랍쇼? 저 녀석이 저런 말을 다 하네.
친구들한테 다 보여주고 싶어?
"그래? 무슨 내용인데?"
바쁘게 김치거리 씻느라 오가면서 어떻게 아들녀석에게 한 마디라도 건설적인(?) 표현을 얻어들어보려고 귀를 쫑긋했는데
"..머...우정?...." 이러고 맙니다.

전에, 녀석에게 '열네 살' 시리즈를 몇 권 사준 적이 있습니다.
멋모르고 덥썩 일본에서 무슨 상도 받았다는 소설을 한 권 사줬다가 좀 데인 적이 있습니다.
녀석이 먼저 읽으면서 내내 "엄마, 이 책 이상해" 하는 말을 야릇하게 하면서도 다 읽더니만
뒤이어 제 누나가 읽고 "엄마, 이  책 봤어? 쟤, 읽기에 좀 그랬을 것같은데?" 하더라구요.
뭐야, 대체. 하면서 읽었는데
완전히 일본 틴에이저와 우리 아이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더라구요.
지금은 내용도 잊었지만 아무튼 아이보다 늦게 읽으면서 '아뿔싸'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설마 이 책은 아니겠지 하면서 뒤늦게 점검하자는 기분으로, 녀석이 읽고 놓아둔 책을 펴 보았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열여섯 살 재준이와, 그 여자 친구 유미와의 얘기입니다.
정말 '우정'이라고 할 만 하네요.
엄마가 읽기에 좀 시시하다싶게 읽어갔는데,
그 밋밋하고 평범함이 오히려 중학생 아이들에게는 훨씬 현실감있게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읽혀질 것같습니다.
의례히 기대하는 어떤 그럴싸한 사건이 없어도,
마지막엔 재준이와 유미의 평범하고 돈독한 우정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들 녀석이 독후 느낌을 덥썩 한 마디 "우정?" 이라고 하던데 그럴 법하다 싶네요.
혹시 또래의 아이들이 기대하는 우정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그런 친구가 갖고 싶은 게 아닐까,
친구라해도 서로 완전히 털어놓을 수 없는 저만의 비밀을 또 갖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잠깐, 아이들 속에 같이 어울려 있는 듯,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 듯,
귀 쫑긋 했다가 책 덮었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편하게 잘 읽을 것같네요.
주변의 중학생 아이들에게 보여줘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생 딸 때문에 작년 말쯤엔가 읽어둬야 한다고 샀던 책들 중 하나가,  이 책입니다.
아아...정말 이렇게 맛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어려서 읽던 맛하고 정말 다르네요.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나도향,최서해,김유정,채만식,이상,이효석,이태준,정비석,염상섭.
감자,.. 운수 좋은 날,..무명, 물레방아, 동백꽃...등등.
너무나 탁월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단편들 중에 어디 이 단편들에 비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의구스럽습니다.
짧은 소설 하나에 집약된 수많은 이야기들, 그 사회적 배경, 자연 풍경의 묘사,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어린 날, 모호하고 낯설면서도 경이롭게 느껴졌던 첫 문장, 이상의 '날개'도 새삼스럽구요.

게다가 그들은 왜 그렇게 다들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는지.
이미 스무살, 서른 젊은 나이에 충분히 제 몫을 다해버렸다는 것인지.
한편으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2편은 5,60년대 소설,김동리, 황순원, 오영수, 손창섭, 박경리, 강신재,..등등의 소설인데 아무래도 1편만큼의 감동은 덜하네요.

2003년에 읽는 1920년대 소설들이 어느 하나 고리타분하거나 구태의연함 없이 생생하게 감겨오는 게 너무나 살갑기까지 합니다.

나이 들어 다시 읽는 옛 단편들의 맛, 다른 어떤 맛에 비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 맛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리버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18세기 초에 쓰여진 소설이라기엔 도리어 아연할 만큼의 예리하고 신랄한 사회비평서 같습니다.
물론 소설이니 흥미롭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설에 담겨진 비판적 작가의 시각이 지금 이 시점의 인간사에 대입시킨다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신랄하고, 반면 아직도 똑같은 비판이 가능한 인간사라는 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참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역사란 어쩔 수 없는 오류들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소인국과 거인국을 넘나들고 하늘을 나는 섬나라와 그 주변국, 말이 다스리는 세상인 준마종족의 나라까지,작가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준마종족의 나라에서 그려진 '야후'라는 이름의 지극히 야만적인 존재로의 인간. '야후'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네요. 
소설을 덮고 나니, 사람 살이에 대한 과거, 현재,미래...에 대해서 막연한 심난함이 생겨납니다.
과연 '발전'이나 '진보'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고등학생 딸이 먼저 읽었는데, 재미있다네요. 고등학생 정도, 교양삼아 읽으면 좋을 것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사계절 1318 문고 2 사계절 1318 교양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지독한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라고 썼다가 고쳤다. 가난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읽다가 엉뚱하게 '성향'에 관한 잡념들만 피어올랐다.
대물림하는 가난에 찌들린 사람들이 갖게 되는 그악스러움과 악착, 생존을 위한 몰염치 등에 대해, 그 가난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따위의.

누군가 씁쓸하게 써놓았던, 부자들에 대한 단상.
부자, 그들은 모두 어느만큼 거만하고 보잘 것 없는 인격을 가진데다,  졸부다운 모자람과 빈약한 교양을 가지고 있을 거야 하며 가볍게 치부해버리고 싶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그러한 바람을 지닌 자의 치기를 가볍게 눌러버리는 가진 자의 여유와 너그러움, 풍성한 교양, 나눔의 미덕, 온화한 표정에 대해서도, 가지지 못한 자의 다친 자존심만 다독거리게 된다.

그저, 막연히 심정적으로...가난한 사람들을 쉽게 욕하지 말라, 당장 눈 앞의 것들을 쥐지 않으면 다시는 갖지 못할 것에 대한 절박함이, 지금 누군가에게 모두 주어버려도 뒤돌아서서 다시 장만할 수 있는 넉넉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갖는 여유에 빗대서 쉽게 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싶은 심정.

물론 책 속의 소년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가난'에 대해서 그런 잡념이 들었던 것 뿐이다.
문자도 몰라서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고, 돼지백정 노릇을 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가장이고,
소년 또한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그런 아빠를 따라다니며 상당한 노동을 감당해내는 열 세 살 아이이다.
어쩌면 책 속의 소년은 정말 긍정적으로 가난을 이겨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웃에게 선물 받은 돼지를 애지중지 키우고 그 돼지를 데리고 더 번화한 도시의 동물 전시회에 나가기도 하며, 어쩔 수 없이 어느 날 그 돼지를 아버지 손에 의해 죽여야 했고, 매일 꾸준히 반복되던 노동 후에 기어이 외양간에서 숨진 아버지의 장례를 의연히 치러야 했던 소년.

...그렇게 책은 끝났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란다.
나는 가슴 뜨듯하게 읽어내며 속으로 '힘겹지 않은 10대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었는데
운동장에서 축구공 차며 뛰어노는 게 최고인 줄 아는 발랄한 열 세 살 내 아들은 "뭐야, 이거?" 한다.       특별한 이야기도, 갈등도, 대단한 결말도 없는 이야기가 '뭐야, 이거?' 정도로만 느껴지나보다.  네 녀석이랑 나랑은, 자라는 세상이 너무 다른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